[논평] 늙으면 일하지 말라는 나라

"국민연금·국민건강보험은 공짜로 시혜베푸는 제도 아니다"

김영호 연론연대 공동대표 | 기사입력 2007/02/22 [22:03]

[논평] 늙으면 일하지 말라는 나라

"국민연금·국민건강보험은 공짜로 시혜베푸는 제도 아니다"

김영호 연론연대 공동대표 | 입력 : 2007/02/22 [22:03]
김영호 언론연대 공동대표.
이 나라에서는 나이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 싶다. IMF 사태가 나자 직장마다 나이순으로 직원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마흔 살만 되어도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하다. 이른바 386세대가 집권세력에 포진하더니 수직적 세대교체가 이뤄져 ‘흰머리’는 더욱 오갈 데가 없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나 교원이 아니면 쉰 살만 되면 백수신세를 면키 어렵다. 어디 잡일이라도 해서 푼돈이라도 벌었다 하면 국민연금을 안 준다, 국민건강보험 자격이 없다며 괴롭힌다.

국민연금에는 조기노령연금이라 게 있다. 국민연금에 10년 이상 가입했고 55세가 되었는데 실직으로 인해 월 소득이 없으면 지급한다. 개인별로 불입한 등급에 따라 연금액이 차이 난다. 그런데 작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42만원 이상 벌면 연금지급이 정지됐다. 또 재직자노령연금이란 것도 있다. 10년 이상 가입했고 60세가 되어 푼돈을 벌더라도 월 42만원을 넘지 않으면 지급액을 소득액에 따라 깎아서 줬다.  

월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을 보면 노동현실을 조금 아는 모양이다. 젊은이도 실업자가 수두룩한데 고령자가 고정직을 얻기 어렵다고 말이다. 문제는 42만원이다. 그 돈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가입자에 따라서는 수령액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차라리 일하지 않고 노는 게 더 이익이다. 또 다른 문제는 어쩌다 두서너 달 일했고 또 그런 일이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귀하는 소득이 있어 연금지급이 정지된다고 통지가 왔다. 지금은 아무런 일도 없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한 학기 시간강사로 강의했다고 치자. 한 학기라고 하지만 실제 강의는 넉 달뿐이다. 강사료는 대체로 월 30만원 전후이다. 그런데 그것이 소득으로 잡혀서 연금을 안 준다고 통지가 왔다. 대부분 가입자가 42만원을 넘으면 연금을 안 준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다. 왜 안 주느냐고 항의하면 연간 소득이 500만원을 넘으면 지급이 정지된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불만과 항의가 있었을까 싶다. 1년 동안 500만원을 못 벌었는데 왜 안 주느냐고 따지면 소득증명서를 가져오라고 되받았다. 넉 달 동안 120만원을 벌었는데 그것도 소득이라고 그 대학에 가서 서류를 떼 오라는 식이었다. 얼마나 많은 퇴직자들이 분통을 터트렸을지 눈에 선하다. 직원들도 많이 시달렸는지 작년 3월 시행령을 고쳤다. 월 42만이라는 기준금을 월 156만원으로 현실성 있게 올린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미뤄왔다는 것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은 아직도 그 짓을 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 두면 지역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소득이 없어도 집과 자동차 등을 따져 지역보험료를 물리니 부담이 여간 크지 않다. 그러나 직장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면 그 부모는 피부양자 자격을 얻는다. 아들딸이 내는 직장보험의 혜택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은 2002년 6월부터 연간소득이 500만원을 넘으면 바로 그 피부양자 자격을 주지 않는다.  

부모의 연간소득이 파악되면 자격상실이라는 통지가 온다. 이와 함께 지역보험료를 계산해 언제까지 내라는 고지서가 날라 온다. 월 42만원은 용돈이라면 용돈이다. 그 돈을 벌었다는 이유로 한 가구에서 자녀는 직장보험료를 내고 부모는 지역보험료를 내는 이중부담을 강요한다. 이 정도 수입이라면 고정직으로 보기 어렵다. 가끔 가다 잡일이나 했다고 지역보험에 따로 가입하라니 차라리 일하지 말고 놀라는 게 낫다.

강연을 했거나 원고를 썼다고 치자. 이런 소득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으로 일어난다. 부정기적이어서 지속적-안정적으로 소득이 발생한다는 보장이 없다. 나이가 많다고 숱하게 직장에서 쫓겨난다. 어렵게 지역보험료를 내다 자식이 겨우 직장에 마련하여 한 부담 덜었구나 싶었더니 날벼락을 맞는 꼴이다. 젊어서는 병날 일도 드물지만 바빠서 병원 가기도 쉽지 않다. 이제 병원 찾을 일이 생길만하니 이 모양이다.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은 결코 공짜로 국민에게 시혜를 베푸는 제도가 아니다. 노후보장을 핑계로 국민에게 강제로 물린 돈이다. 그런데 근로소득세도 제대로 내보지 않은 사람들이 벼락출세해서 주느니 못 주느니 한다. 그러니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평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나란히 꽁치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령화 사회의 대책인지 자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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