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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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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향한 부끄러운 봄날의 회환
[녹색반가사유 25] 갯버들 물차 오르고 겨울은 굼뜬 뒷걸음질
 
정미경
기념처럼 남겨두려 했던 미련마저 휑하니 쓸어가 버리고, 늦둥이 가을마저 내차버리고, 홀로 산으로 올랐던 겨울이 봄의 첫딸을 데리고 이제야 갑니다. 쓸쓸하게 와서 화려하게 돌아가는 겨울은, 그래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해에 데리고 갔던 첫딸은 벌써 아리따운 처녀가 되었을 터. 제 딸의 어미는 어디에 있을까. 

눈발을 흩뜨리며 골짜기를 휘돌던 미치광이 남정네가 홀로 보냈던 무덤만 같았던 지난겨울. 필살의 증오로 길길이 날뛰며 때로는 신음을 토해냈을 아픔, 물관조차 얼고 바람에 꺾인 가지가 파르르 떨고 있을 때, 나무는 도대체 몇 번이나 휘청거렸던가. 
 
▲ 지난 겨울, 삭풍부는 겨울숲.     © 정미경

숲을 감싸고돌았던 을씨년스럽던 적막은 도무지 가까이할 수 없었던 우리들의 먼 기억입니다. 나뒹구는 낙엽과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가지는 가슴 한 켠에 남아있던 온기마저 앗아가 버렸었지요. 기억에서 떨쳐내고픈 지독한 외로움이었습니다.

그 빈자리에 내리던 눈! 세상의 소리가 죄다 없어져버린 적멸의 고독. 얼어붙은 빙벽의 수인처럼 곧추선 서릿발의 긴장이 온 숲을 뒤덮던 겨울이었어요. 혹간 날개 짓에 후두둑 떨어지는 눈발과 대낮의 반사광만이 정적을 깨는 유일한 손님, 그마저 사라지고 나면 맹수조차 등 돌리는 빈숲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목(裸木)에 쌓였던 눈은 바람에 흩날리고 잔설은 녹아 흙속으로 스며듭니다. 빙벽은 안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지요. 비로소 골짜기가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 나목(裸木)에 쌓였던 눈은 바람에 흩날리고...(태백산 주목)     ©정미경


갈까 말까 망설이다, 주춤하길 몇 번이던가. 얼다, 녹다를 반복하는 그 조심스러운 행보를 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비에서부터 풀리는 긴장 그리고 안으로부터 녹기 시작하는 해빙의 음모를 정말이지 나는 이해할 수 있어요. 
 
겨우내 남긴 것이라곤 빨간 동아(冬芽) 몇과 뿐. 그나마 허기진 새들의 먹이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빈털터리의 삶을 어떻게 내보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미치광이가 온몸으로 품어 지켜왔던 한과(果) 한과, 한 땀 한 땀의 아픈 보람을 뒤로한 채 서둘러 떠나야만 하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 얼어붙은 빙벽의 수인처럼 곧추선 서릿발의 긴장이 온 숲을 뒤덮던 겨울.     ©정미경

갯버들이 몽실, 물차 오르고 로제트식물들의 호흡열에 얼어붙은 겨울은 여지없이 녹아 번질 수밖에 없어요. 호수의 얼음판은 그 운명의 내력을 투명한 무늬로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요! 겨울의 미치광이 그 행보는 유복녀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 경이로움, 우리 모두가 찬탄해 마지않아야 할 부성애(父性愛)의 위장막이었습니다. 청정한 한 모금 물을 먹이려는 아버지의 사랑 말이에요.
 

▲ 녹아내려 소리를 내는 골짜기.     ©정미경

새근새근 숨 쉬는 아기의 숨결에 긴장이 녹고, 굼뜬 뒷걸음질과 그리고 부리나케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사려 깊음을 이제껏 우리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애써 눈감고 지내온 것이지요. 터질듯 물오른 가지와 재잘거리는 꽃다지의 무리지은 소생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봄날의 여식(女息)은 그래서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는 유복녀일 수밖에 없습니다. 객(客)처럼 왔다가 객처럼 사라져가는 우리 아버지. 새벽 찬이슬로 찾아왔다가 강가의 아침 안개처럼 밀려가는 아슴한 아버지의 등 뒤, 그 풍상어린 어깨가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오늘입니다.
 

▲ 호흡열에 얼어붙은 겨울은 여지없이 녹아번지고...     ©정미경


과묵 속에 숨겨둔 살뜰하기 짝이 없는 배려가 이토록 가슴을 쓸어내릴 줄을 나는 왜 지금껏 몰랐던 것인가. 지난해 내내 몹쓸 병이 대지를 휘감았을 때 시달렸을 언니들을 생각해서 온몸으로 맞섰던 당신의 외로운 사투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앓아누워 신음하는 어미를 되살리려는 당신의 고군분투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홀로 숲에 들어가 간난신고를 마다 않고 고진감래하셨던 아버지는 봄날의 첫딸을 데리고 기억 속으로 떠나셨습니다. 뚜벅뚜벅 사라져갔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당신이 서야할 자리가 점점 사라져만 갑니다. 매서움 속에 감춘 정감이 배척당하는 사태가 안타깝게도 되돌릴 수 없는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어머니는 갈수록 수척해져가고 있어요. 신열 뒤에 차례진 올망 촐망한 눈빛이 점점 우울해져가는 이유를 당신은 홀로 짊어지고 가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더더욱 그립습니다. 
 

▲ 회환의 부끄러움으로 피어난 꽃다지.     © 정미경

아비 없는 편모의 여식들은 이제 누구를 의지하며 꽃을 피울까! 병든 어미의 침상에서 도대체 무슨 노래를 읊조려야 할까!

가는 겨울을 보내 드리며 그래도 부끄러움의 꽃은 아장아장 남녘들을 따라 당신을 쫓으렵니다. 당신을 쫓아갑니다.

정말이지 봄날의 꽃은 회환의 부끄러움입니다. 그 숲에 물오르는 날, 나는 아버지 당신을 바라보며 배례의 인사를 꼭 올리겠습니다.



 
기사입력: 2008/03/03 [10:14]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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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리 08/03/10 [12:03] 수정 삭제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라"는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서릿발의 겨울이 가고, 곷피는 봄이 오는데.....
그런 애처로운 스토리를 연상할 수도 있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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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개
정미경님은 생태숲 해설가입니다. 환경단체인 풀빛문화연대의 기획위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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