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그 산처럼, 남도의 지리산처럼"[녹색반가사유29] 연무 속 겹겹 마루금의 일렁이는 애절함...기나긴 백두대간의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남도의 지리산. 남도의 가람에게는 또 다른 에필로그가 되고 있는 민족의 성산이지요.
지평선을 이리저리 굽이도는 가람의 맑은 줄기가 비롯되는 골짜기마다 마다에 안개처럼 서려있는 애절한 핏빛 사연들, 그때 불었던 바람은 아직도 구천을 에돌고 있을까. 곰비임비 밀려왔다 돌아서면 밀려가는 겹겹 마루금의 물결은 스쳐가는 연무 속에 그렇게 일렁거립니다.
낙조 드리운 장엄한 산 노을 속에 끝도 없이 펼쳐지는 바다의 교향곡! 격정과 고요가 쉴 사이 없이 교차하는 숨 막히는 이 평화의 숲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지점이 지평선의 중심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의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지점이 미리내 바닥 중에서도 가장 깊은 하상(河床)일수도 있다는 뒤늦은 깨달음과 뭇 생명들 중에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학대가 차라리 더 어울릴 것만 같습니다.
숲으로 안겨 들어가는 산책길은 그런 점에서 지리산의 진면모에 다가가는 지름길인지도 모르겠어요. 안겨 살면서도 늘 그리운, 그래서 언제나 처음으로 되돌리게 만드는 매혹의 숲길입니다. 고막을 울리는 낮은 진동은 그것이 곧 창생의 소리이며, 번져가는 숲향은 간절하고 애절한 희구라는 사실 앞에 나는 다만 그냥 그대로 넋을 놓을 수밖에 도무지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나’를 버릴 수 있어 비로소 ‘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애초부터 걸치지 않았던 그 자유가 애당초 없었던 ‘나’로부터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이 숲길에 들어서면 나는 다만 한 그루의 나무, 한 마리의 나비일 뿐입니다. 간절한 그리움이 배어있는 초탈한 일상의 아리아입니다. 그러므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에는 산짐승의 길이 있을 뿐이지요. 논도 다랑이 논, 길은 외길, 범상치 않은 구름도 이곳을 한참이나 그리워하면서 햇살에게 자리를 물려줍니다. 다 모아 놓고, 생성과 소멸을 거듭해도 자신을 한줌마저 다 내어 줄때까지 자신은 변하지 않는 지리산의 삼매는 그래서 서늘한 바람과도 같습니다. 산처럼, 남도의 지리산처럼 그렇게 자락을 늘어뜨리고 있어요.
그래서 그렇던가. 기억에서 조차 가물거리는 이별의 상처도, 기억에서 마저 지워진 그것이 느닷없이 낯익은 그것으로 마주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언제나 동행했던 반려처럼 곁에 와있는 내 속살의 향처럼 자리 잡고 있으니,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세파에 시달리다 절망의 끝에서 찾았다 한들, 선택한 도피로 모든 이 에게 잊혀졌다 한들 결국 그것이 그것입니다. 설령 속절없이 흔들리는 상념에 사로 잡혀있었다 하더라도 남는 것은 지리산 뿐! 그리고 빨치산의 초심만이 더해졌을 뿐.
지리산의 바람은 언제나 새로운 바람, 흘러가는 구름도 언제나 새로운 구름, 내려가는 골짝물도 언제나 새로운 계류수입니다. 한 번도 같아본 적이 없는 마루금의 파도는 다른 은하를 향한 그리움의 춤사위입니다. 밤조차 한 번도 같아 본 적이 없는 별들의 고향입니다. 지리산 길에는 모든 것이 청초할 뿐입니다. 생경하고 낯선 우리 모두의 고향입니다. 비로소 존재는 서늘한 바람처럼, 흔들리는 꽃처럼 창생이전의 기억 속으로 접혀 들어갑니다. 빨려 들어갑니다.
낯선 것이 익숙한 것으로, 익숙한 것이 낯선 것으로 와닿는 원초의 어우러짐, 바로 그것이지요. 따라서 지리산은 정신입니다. 차마 눈 감을 수 없는 시린 정신입니다. 이 묵직함이 나를 끌어당깁니다. 산처럼, 남도의 지리산처럼 살라고 말입니다. 지리산에 후드득 별비가 내립니다. 안개처럼 에워쌉니다. 침묵하는 유혹, 그곳은 원생의 자연입니다.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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