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숭례문이나 운하수장 문화재나

[기획] 72개 지정문화재와 177개 매장문화제 파괴 불보듯

김병기 기자 | 기사입력 2008/02/13 [07:44]

불탄 숭례문이나 운하수장 문화재나

[기획] 72개 지정문화재와 177개 매장문화제 파괴 불보듯

김병기 기자 | 입력 : 2008/02/13 [07:44]
국보 1호가 불에 타거나, '이명박 운하'에 수장되거나...
 
기왓장이 떨어져나갈 때마다 가슴 한 켠이 무너져내리는 듯 했다. 수십대의 소방차가 동원돼 물을 뿌려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한참동안 입을 벌린 채 TV에서 생중계되는 숭례문의 이그러진 모습을 쳐다보았다. 새벽녘, 가까스로 눈을 감았지만 한참동안 눈 앞에서는 600년된 목조 건축물 속의 성난 불기둥이 어른거렸다.
 
그런데 지나친 역설일까? 난 그 순간 성난 불길에 어이없이 사그러지는 숭례문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이명박 운하'가 건설될 경우 수장될 수많은 문화재를 떠올렸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불로 태우거나, 물로 수장하거나. 다른 것이 있다면 숭례문은 우리의 눈 앞에서 벌어진 참혹한 현실이고, 이명박 운하로 수장될 문화재는 예측가능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목도하는 불행'과 '예측되는 불행' 사이
 
지난 1월7일 경부운하 저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한반도 운하는 역사문화를 파괴하는 불도저 운하' 제하의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힌 바 있다.  
 
"지난 1월 3일 문화재청이 인수위에 보고한 '한반도 대운하' 예정지 주변의 지정문화재(국가, 시도지정)는 72곳(한강·낙동강 주변 반경 500m 이내 지역), 매장문화재는 177여곳(한강, 낙동강 유역 반경 100m 이내 지역)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번 인수위 보고 내용은 한반도운하 전체의 문화 유적이 아닌 한강, 낙동강 등 경부운하 주변에 있는 지정 및 매장 문화재 분포이며 실제 한반도 운하 2100km(북한 운하 제외)에는 수천-수만의 문화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경부운하 예정지 주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도 막대한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라면서 "현재 인력구조로는 몇 십 년이 걸려도 정밀문화재 조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제 막 5년동안 권력을 잡은 한나라당이 몇만년, 몇천년 켜켜히 내려온 우리의 역사를 무작위로 밀어낼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4년 만에 운하를 완성하겠다는 이 당선인의 '오만'을 질책한 말이다.
 
조계종단의 금강회와 보림회도 지난 1월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령터널 구간만 자체조사한 문화재 실태를 공개했다. 충주, 괴산, 문경, 제천, 단양 등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조령터널 구간 부근 지역의 문화재와 역사유적지는 총 314점.
 
물 속에 무슨 문화재가 있냐고?
 
이와 관련 법응 스님(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은 "이 구간만해도 300여점 이상의 문화재 등이 존재하는 데, 한강과 낙동강 구간을 합치면 천문학적이 될 것"이라며 "충주의 중앙탑의 경우에도 10억불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문화재 가치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경부운하 가치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응스님은 이어 "터널공사를 하려면 지질, 지하수 등 물리탐사를 해야하는 데 그 기간만 1년이 넘을 것"이라며 "공사 준비, 계획기간을 합치면 최소 3년이상이 걸릴 수 있는데, 1년만에 삽을 뜨고 4년만에 공사를 끝내겠다는 인수위의 계획은 전근대식 토건문화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불교,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성직자들은 오늘(2월12일)부터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서 시작해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등 600㎞에 달하는 거리를 100여일동안 순례한다. 이번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의 참가자이기도 한 양재성 목사(기독교 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는 100일 순례를 떠나며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이 땅은 우리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야 할 생명의 터전이며 이 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그러기에 이 땅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인류는 강에 기대어 문명을 만들었고 강을 끼고 삶을 살아왔다. 그러기에 강은 인류의 어머니이며 생명의 젖줄이다. 성경의 첫 대문인 창세기도 동산엔 네 개의 강이 흘러 생명을 먹였다고 증언한다.“
 
강은 우리의 역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명박 운하를 추진하는 인사들에게서 문화재 유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자가 당시 인수위의 장석효 '한반도대운하 TF' 팀장을 만나 문화재 유실을 우려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목소리를 전하니 돌아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물 속에 무슨 문화재가 있는가."
 
장 팀장은 그래도 "문화재 조사는 할 것"이라면서 "지방문화원과 지역의 NGO, 지역의 전문가들이 조직을 구성토록 해서 안을 내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황평우 위원장은 이 같은 문화재 조사 방법에 대해 "고고학의 'ㄱ' 자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라고 일축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조사인력은 1900~2000명에 불과하다"면서 "전문 조사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부운하 구간만 조사하려 해도 수십 년에 걸릴 것"이라는 말이다.
 
황 위원장은 특히 "청계천을 복원하는 데도 전 구간에 걸쳐 문화재가 나왔다"면서 "서울 부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청계천 사업을 총괄했다는 장 팀장이 가진 역사 인식의 천박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황 위원장은 이명박 당선인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청계천 복원사업 때 이명박 당선인은 당시 청계천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유구에 대해 '웬 돌덩어리 갖고 난리냐'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신라시대 토기까지 나왔다, 경부운하 구간에서는 청계천보다 수십배의 유물들이 나올 수 있다."
 
이제 숭례문은 숯덩이로 변했다. 국보 1호가 국민들이 빤히 지켜보는 눈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여기저기서 문화재 관리 소홀을 질타하고, 스프링클러 설치 등 방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들갑이다.
 
하지만 난 걱정된다. '이명박 운하'가 건설되면 알게 모르게 수장될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얼마나 있을지 제대로 조사도 못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 경제논리로 무작정 밀어붙이는 '불도저 운하'가 두렵다. 우리가 그 존재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일부 정치인들의 ‘오만’에 의해 수장될지도 모를 우리의 역사가 안타깝다. 눈에 보이는 재앙을 탄식하면서도 앞으로 도래할 '역사의 대재앙'에 눈감은 이 당선인과 운하 찬성론자들의 행태가 우려된다.
 
 
 
 <오마이뉴스/김병기 기자 제공 - 원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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