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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1.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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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의 역지사지, 그리고 삶의 나침반
[김계유의 주역속으로⑦] 도전괘에서 수시변역(隨時變易)
 
인터넷저널
▲ 김계유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이는 역(易)을 이해하는 데 어김없이 적용되는 말이다. 왕(文王)이 분류한 바, 주역의 괘상(卦象)이 열거되어 있는 차례를 보면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수뢰둔괘(水雷屯卦)와 산수몽괘(山水蒙卦), 수천수괘(水天需卦)와 천수송괘(天水訟卦), 지수사괘(地水師卦)와 수지비괘(水地比卦)는 각기 괘명을 둘씩 차례로 열거하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괘상이다.

수뢰둔(水雷屯)은 위가 물, 아래가 우뢰로 보는 눈을 이쪽과 저쪽으로 바꾸어 놓고 보면 우뢰가 산으로(☳☶) 바뀌면서 위가 되고, 위의 물은 아래로 내려가(☵☵) 산수몽이 된다.

수천수(水天需)는 위가 물, 아래가 하늘이지만 아래의 이쪽(☵)과 위의 저쪽(☰)을 위 아래로 바꾸고 보면 천수송(天水訟)이 된다. 하늘은 뒤집어져도 여전히 하늘이지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을 뿐이고, 물은 뒤집어 놓아도 여전히 물이지만 위에서 아래로 올라간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위 아래 바뀌어도 일치하는 괘상
 
그래도 앞의 수뢰둔(水雷屯)에서 보았듯이 괘상이 한바퀴 굴러 맨 아래의 양이 위로 올라가고 맨 위의 음은 아래로 내려와 있다는 점에서 그 변화가 앞의 수뢰둔 및 산수몽과 이치는 같다.

지수사(地水師)와 수지비(水地比)도 마찬가지다. 다만 여기서는 이 두 경우는 앞의 수천수(水天需) 및 천수송(天水訟)과 흡사한 예가 되므로 하경의 첫머리인 택산함(澤山咸)과 뇌풍항(雷風恒)으로 실례를 대신해 그 개념을 구체화시키기로 한다. 택산함(澤山咸)과 뇌풍항(雷風恒) 이들도 두개의 괘명이 하경 첫머리의 차례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괘상이다.

천지인(天地人)의 삼획괘에 근거해 보면 택산함(澤山咸)은 위가 못이고 아래는 산이다. 이것이 뒤집어져 바라보면 택산함(澤山咸)은 뇌풍항(雷風恒)이 되고, 뇌풍항(雷風恒)은 택산함(澤山咸)이 된다. 즉 위의 못은 뒤집어져 아래로 내려오면 바람이 되어(☱☴) 뇌풍항의 조합을 이루는 기본 팔괘인 손(巽)에 해당한다. 다시 택산함에서 산이 뒤집어져 위로 올라가면 뇌풍항에서 위에 자리 잡은 우뢰로 바뀌어(☶☳) 형태가 서로 일치하는 괘상이 된다.

이처럼 여기서 예로 든 괘들은 입장을 바꾸면 모양뿐 아니라 뜻까지 하나다. 수뢰둔(水雷屯)과 산수몽(山水蒙)이라면 만물이 처음 나오면서 비 오고 우뢰가 성한 때이니, 이는 다름 아닌 아닌 만물이 어린 아이처럼 아직 어리기만 한 산수몽(山水蒙)의 시기다.

수천수(水天需)와 천수송(天水訟)도 마찬가지. 수천수를 일반적으로 처음 나와 어린 만물을 음식물로 길러야 한다는 뜻에서 음식괘라고 보는데 이는 서로 만물을 기르는 재물(음식)에 눈이 멀어 반목과 다툼을 불러일으키는 천수송괘의 모습이다.
 
해와 달, 동서남북의 별자리
 
나머지 괘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역의 64괘에는 모두 이처럼 입장을 바꾸어 두개의 괘가 하나로 변하는 도전괘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효가 양으로만 이루어진 중천건(重天乾)이나 모든 효가 음으로만 이루어진 중지곤(重地坤)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입장을 바꾸어도 그 괘상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 부도전괘(不到傳卦)도 있다.

이들 부도전괘(不到傳卦)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보는 관점을 바꾸어도 모양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여 명칭이 부도전괘(不到傳卦)이고 그 종류는 모두 8가지가 있다.

따라서 입장을 바꾸어 괘상이 변하는 도전괘와 입장을 바꾸어도 괘상이 변하지 않는 부도전괘를 모두 취합해놓고 보면 역의 전체 괘상은 64괘가 아닌 36괘상이 된다.

그 가운데 입장을 바꾸어 괘명과 모양이 뒤집히는 도전괘의 숫자만을 헤아려보면 합이 28이다. 이는 해와 달 지구의 움직임을 놓고 보았을 때 보여주는 동서남북의 별자리 수, 28수(宿)를 그대로 대신하는 숫자의 반영이다.

다시 말해 하늘의 태양이 움직이는 황도를 따라 열거하고 있는 동서남북의 별자리, 청룡(靑龍) 주작(朱雀) 백호(白虎) 현무(玄武) 그것이 바로 역의 스물여덟 도전괘의 의미다.

이렇게 보면 역은 천체의 운행을 음양(陰陽)이라는 부호로 정확하게 반영하는 하나의 실질적인 부호다. 그 까닭에 역의 계사전에서는 역은 천지와 더불어 그 법칙이 흡사하므로 지혜가 만물에 두루하고 도가 천하를 구제하기 때문에 조금의 지나침도 없다고 설명한다.
 
변역의 개념과 만물의 이치
 
그뿐 아니다. 음양의 형식도 하늘의 해와 달을 중심으로 지구의 운행이 한번 낮이 되고 한번 밤이 되면서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는 도전괘의 순환 원리를 필연적으로 그 바탕에 두고 있다. 그래서 변하고 바뀐다는 역(易)의 개념은 그때의 해와 달이 운행하는 결과라는 시각으로 대신해 역의 개념을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럼 왜 뒤집어서 하나가 되는 괘상을 역(易)에서는 두개로 취하고 있을까?

앞서 말하고 있듯이 세상의 이치는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어 움직이는 순환의 법칙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와 달이 그리고 지구가 끊임없이 돌면서 변하는 변역의 개념에서 만물의 근본 이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역의 원리에 반영된 결과다.

반면 만물의 근본을 이루는 하늘의 덕은 높고 하늘의 기운에 힘입어 만물을 낳는 땅의 덕은 하늘에 순종해야 하는 까닭에 그 이치는 변해서도 안 되고 변할 까닭도 없으므로 변하고 바뀌는 역의 개념 안에는 결코 변하거나 바뀌어서는 안 되는 불변의 법칙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그 대신 낯설고 어려워 모든 것을 생략하더라도 도전괘의 개념에서 놓치고 지나가서는 안 되는 교훈이 하나 있다. 이쪽의 처지를 저쪽과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더라도 거기에는 일정한 법칙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때의 상황에 맞추어 때를 따를 줄 아는 역의 수시변역(隨時變易)이다.
 
“대추는 찌고 밤은 가린다”
 
무슨 뜻인가?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재료 가운데 밤과 대추를 예로 들어보자. 의례 특생궤식례에 의하면 그것들을 활용하는 방법은 ‘대추는 찌고 밤은 가린다’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의 주석을 참고하면 찐다는 대추의 蒸과 가린다는 밤의 擇은 글자를 함께 사용하는 문자로, 과실이란 물품이 껍질과 씨를 버린 것이 우수하다고 하였다. 즉 대추는 씨를 빼내고 밤은 껍질을 깎아서 쓰는 점에서 그 가치가 드러나는 까닭에 이 물건들을 제사로 사용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사람의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주역의 택풍대과(澤風大過) 초육(初六)에서도 깔 자리로 흰 띠 풀을 사용하니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공자는 이를 그냥 맨 땅에 놓더라도 그만이지만 띠 풀을 취해 깔 자리를 마련하는 정성을 보여주니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는 삼가는 마음의 지극함이 된다고 하였다. 들녘에 흔하게 널려 있는 띠 풀은 정말 하찮은 물건이다. 그러나 하늘에 제사 드리면서 그 띠 풀을 사용해 자기의 정성을 드러내 보이니 물건은 하찮지만 쓰임은 지극히 소중하게 여길만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매사에 몸과 마음을 삼가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삶에 임한다면 인생에 있어서 결코 잘못되는 바는 없을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도전괘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마찬가지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되 때에 맞추어 바라볼 줄 아는 시중(時中)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수시변역(隨時變易)의 시중(時中)이다.
 
하늘에 대한 공경심과 제사 정성
 
이 의미는 다시 앞에서 예로든 제사의 예물인 밤과 대추를 생각하면 쉽게 파악된다. 왜냐하면 제사의 물건으로 사용하는 대추와 밤을 특생궤식례와 달리 상례(喪禮)의 의례 사상(士喪)편에서는 밤을 가려서 쓰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바로 앞에서 예로 든 때에 맞추어 제물의 의미를 적용해야 한다는 수시변역의 시중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제물을 사용하더라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늘에 대한 공경심과 제사 지내는 자의 정성을 그대로 대신할 수 있느냐를 따지는 입장인데 이것이 바로 때를 따르더라도 때의 알맞은 이치를 저버리지 않는 아주 합리적인 시중(時中)의 논리다.

잠시 성호의 설명을 참고해 보자. 성호는 그 까닭이 밤을 쪄서 정하게 만들면 제물로서 이용함에 상하기 쉬운 까닭이라고 하였다. 제사로 쓰는 물건은 초상의 전날 꼭 하룻밤을 묵히고 거두지 않으므로, 밤을 쪄서 사용하게 되면 쉽게 상할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이를 피하고자 그냥 쓰는 지혜를 발휘하려는 속셈이 반영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역의 수시변역이자 시중이다. 따라서 우리가 도전괘의 의미를 역지사지에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 개념은 주역이 천지의 도를 반영한다는 완적의 다음과 같은 시각을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도가 지극하면 되돌아가고, 일이 극에 달하면 바뀐다. 되돌아감은 시기에 응함을 이용하고, 바뀜은 급선무에 당함을 이용한다. 시기에 응하므로 천하가 그 은택을 우러르고, 급선무에 당하므로 만물이 그 이로움을 입는다. 은택이 베풀어짐에 천하가 복종한다. 이렇게 천하는 자연에 순종하여 백성에게 은혜를 끼친다.”

이쪽과 저쪽으로 관점을 바꾸어 바라보는 도전괘의 개념이라도 무엇이 이와 다르랴. 어떻게 하면 천하의 만물을 이롭게 하고 은택을 베푸는 길인지 생각하는 역지사지, 여기에 바로 우리가 역의 도전괘를 통해 삶의 나침의를 바로잡아 가는 진정한 삶의 교훈이 있을 것이다.


기사입력: 2008/03/21 [15:28]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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