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易)과 사계절, 그리고 우리의 풍속

[김계유의 주역속으로8-2] 역의 양기운 풍속과 붉은색과 관계

인터넷저널 | 기사입력 2008/04/29 [10:54]

역(易)과 사계절, 그리고 우리의 풍속

[김계유의 주역속으로8-2] 역의 양기운 풍속과 붉은색과 관계

인터넷저널 | 입력 : 2008/04/29 [10:54]
▲ 김계유    
만물을 낳고 자라나게 하며 열매로 거두어 길러 세상을 이익 되게 하는 역의 이치는 궁극적으로 불교의 보살도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선(禪)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와 조금 다르다. 또 그때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유가의 의리체계가 반영된 우리 문화의 특징을 비교해서 살필 수가 있다.

대혜 종고가 원오에게서 법을 구할 때의 일이다. 원오가 어느 날 대중을 상대로 상단 법문을 하였다. 그때 법문의 내용은 삼세제불의 출신처가 어디에 있는지를 논한 운문의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에 대한 자신의 평이었다. 원오의 이야기로는 훈풍(薰風)이 남으로부터 오니 전각(殿閣)에 미량(微凉)이 난다고 하였다.

대혜는 그 말뜻에 막혀 앞뒤 경계가 끊어졌다. 종고는 문을 닫아걸고 그 의미와 씨름하였다. 결국 그의 의구심은 등나무가 소나무를 의지한다는 여등의수(如藤依樹) 구(句)에 의해서 풀렸다.

“훈풍이 남에서 오니 전각에 미량”

원오 스님이 어떤 사문에게 이렇게 물었다.
 
“있다는 말과 없다는 말이 등나무가 소나무를 의지함과 같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오조법연화상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有句無句 如藤倚樹)

“본뜰래야 본뜰 수 없고 그릴래야 그릴 수 없다고 하셨다.”(描也描不就 畵也畵不就)

"그래서 스님께서는 어떻게 물으셨습니까?"

"나무가 넘어가고 등나무가 말라 죽을 때는 어떠합니까?"(樹倒藤枯時如何)

오조께서는 거기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셨다. “서로가 의지해 따르느니라.”(相隨來也)

종고는 거기에서 크게 깨달았다. 즉 종고가 문제 삼는 세상의 모든 문제는 바깥 경계의 문제가 아니었다.(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느냐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오직 자기 마음의 문제였다. 세상의 모든 만물을 하나의 변하지 않는 존재로 믿고 싶어 하는데서 비롯되는.

종고가 결국 거부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존재론적인 시각이었다. 존재론은 반드시 대립을 불러온다. 대립하는 마음의 움직임에서 보면 세상은 모두가 나의 경쟁자이다. 내가 경쟁에서 이긴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나의 힘이 되고 권위가 된다. 그러나 세상은 서로 의지하여 돕고 살아가야 하는 연기의 세계이지 존재론적인 형태의 대립된 세계가 결코 아니다.

세상의 모든 건 오직 마음의 문제

그래서 선에서는 세상의 바깥 경계(자기 자신가지를 포함해서)에 대해,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기미 즉 조짐의 문제를 특히 강조할 뿐이다.(識心初動, 照顧脚下)

대신 유교는 그때 문제 삼는 조짐이 선과 악의 갈림길에 맞추어진다. 불교의 선이 선과 악의 분별조차도 하나의 존재론적인 시각으로 여기고 있다면 유교는 그 같은 존재론적인 시각의 긍정적인 활용을 적극 기대하는 입장이다.

만물을 이롭게 하고 만물에게 도움이 되는 이치에서의 존재론적인 시각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어디에 우리의 마음이 근거하고 있어야 하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미의 자각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와 같은 시각조차도 존재론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보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도 죽인다.
따라서 그 점에서 바라보면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문화의 전통적인 상징체계, 그것은 아무래도 불교의 선적이라기보다는 유가의 주역 쪽에 더욱 가깝다.

그 예를 들어보자. 이야기를 중국인의 생활 풍속으로부터 시작하자. 그들의 전해 내려오는 풍속 가운데 9월 9일 중양절에 높은 산에 올라가 산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는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진나라 때 지방의 풍속을 기록한 풍토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중양절이 중시되고 산수유 열매의 색깔인 붉은 색은 상서롭게 취급한다.

팥죽으로 액운 막는 이치와 음양

우리나라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붉은 팥죽을 뿌려서 액운을 제거한다고 하였다. 중국의 형초세시기에는 “공공씨의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었다. 그 아들은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서 물리쳤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민속은 아마 그 유래가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한편 한국인의 색채의식에서 다루고 있는 민가와 궁중의 풍속을 살펴보면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는 나례의식 때에는 48명의 동자가 붉은 옷을 입고, 20명의 공인이 붉은 두건과 붉은 옷을 입고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을 행했다.

이처럼 붉은 계통의 팥 혹은 숫자의 9를 중시하는 중국이나 우리 민족의 풍속은 모두가 역의 음양 관념을 반영한 결과다. 역에서 보면 양의 극성한 기운은 남방의 붉은 색에 해당하고 숫자로 바꾸어 생각하면 노음이 6이고 노양이 9다.

역에서 보면 음에 반해 양은 귀하게 생각한다. 이는 음이 만물을 위축시키고 서리를 내려 사라져가게 하는 반면 양은 활발한 팽창력과 따뜻한 기운으로 만물을 싹트게 하고 자라나게 하며 열매를 맺어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덕을 상징하는 개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금줄에 빨간 고추도 양기 보호

즉 음양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사물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음은 마귀나 인간을 해롭게 하는 귀신으로 간주되고 양은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점에서 일상적인 길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출산에 따른 우리 조상들의 풍속도 크게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들을 낳으면 금줄에 고추를 여러 개 꽂아 대문 앞에 걸어두었다. 또 갓난아기의 정수리에 주사를 바르고, 아이의 첫 나들이 때에 얼굴에 곤지를 찍으며, 등에 고추를 매달아 잡귀의 접근과 신성의 보호를 기대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옛 풍속은 그 유래가 모두 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오행에 근거해 색깔을 분류하면 노양(老陽)은 빨강색이고, 방위상으로는 남방이며 별자리의 모양으로 살피면 주작에 해당한다. 그래서 붉은 봉황을 형상화하여 무덤과 관의 남쪽을 지키게 하기도 했다. 방위로 보아 남쪽은 뜨거운 해의 기운이 작렬하는 곳이기도 하므로 빨강은 불 즉 해를 상징하는 색깔이며 오성으로 보면 화성(火星)이고 불은 타오르는 성질(炎上)이 있으므로 동물 중에서도 날짐승에 해당한다. 또 남방의 왕성한 양기운은 만물을 융성하게 하는 특징이 있으므로 불을 관리하는 신은 나라와 집안의 융성함을 빈다는 축융(祝融), 즉 숭늉이다.

빨강·남방(주작)·화성·날짐승이 陽

그렇다면 만물을 이롭게 하고 생명의 근원으로 작용한다고 하는 봄의 양기운, 그것의 소식영허를 역에서는 어떻게 정리해 보여주고 있을까. 여기에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12달에 대한 역의 정리를 덧붙인다.

1월은 천지태(地天泰, ☷ ☰), 2월은 대장괘(大壯卦, ☳ ☰), 3월은 택천쾌(澤天夬, ☱ ☰), 4월은 중천건(重天乾, ☰ ☰), 5월은 천풍구(天風姤, ☰ ☴), 6월은 풍산둔(風山遯, ☰ ☶), 7월은 천지부(天地否, ☰ ☷), 8월은 풍지관(風地觀, ☴ ☷), 9월은 산지박(山地剝), 10월은 중지곤(重地坤), 11월은 지뢰복(地雷復), 12월은 지택림(地澤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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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란 하나의 허명인 것을 사회는 왜 이것을 우리에게 강요할까? 이력이란 하나의 그림자인 것을 사회는 왜 이것을 우리에게 주문할까? 초상이란 하나의 찌꺼기인 것을 우리는 왜 거기에서 알맹이를 찾을까?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 같은 세상 진짜도 가짜이고 가짜도 진짜인 세상 진짜와 가짜의 함정을 우리가 알 날은 언제일까? 산모퉁이에서 피어나는 한 조각의 구름이여 물안개 가득한 아침 연못의 풍경이여 가짜에 붙들린 나는 오늘도 진짜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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