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명단, 국민에게 감출 일인가?

[논평] 민언련, 진실화해위 보고서 관련 신문보도 모니터

민언련 | 기사입력 2007/02/01 [10:17]

재판관 명단, 국민에게 감출 일인가?

[논평] 민언련, 진실화해위 보고서 관련 신문보도 모니터

민언련 | 입력 : 2007/02/01 [10:17]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진실화해위)가 작성한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분석 보고서’의 공개를 두고 법원과 일부 신문들이 반발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의 이번 보고서는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제1호가 선포된 뒤 79년 12월 8일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되기까지 2159일 동안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된 589건의 항소·상고심 판결 1412건을 분석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당시 긴급조치에 따라 판결을 내린 재판관의 실명을 담고 있는데, 그 명단이 공개되어선 안 된다며 법원과 일부 언론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유신독재 시절 ‘긴급조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한 반민주주의 조치라는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번 진실화해위 보고서의 분석을 보면 긴급조치의 본질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음주 및 대화 도중 대통령과 유신 비판’이 전체의 48%를 차지하며, 유신독재에 항거한 ‘학생운동’이 32%, ‘반유신 재야운동’이 14.5%인 것으로 나타났다. 독재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언론자유를 박탈하고 반대세력을 탄압한 수단이 바로 긴급조치였다. 평범한 시민들도 대통령에 대해 말 한번 잘못하면 쇠고랑을 차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당시 재판부가 독재정권의 체제유지에 들러리 섰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구체적 조사와 자료를 통해 긴급조치의 실상이 제시됐다면, 당시 재판관들을 비롯한 사법부는 국민 앞에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하게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면 될 일이다. 언론도 사법부가 독재정권 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도록 긴급조치의 진실과 재판관의 사명을 제대로 보도하면 된다.

과거청산이 반성과 화해, 미래지향적 작업이 되기 위한 핵심은 ‘진실의 공개 여부’가 아니라 ‘공개된 진실을 대하는 당사자들의 태도’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실명공개’에 대해 당시 상황논리를 들먹이고 ‘법치주의 훼손’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 당시의 정치상황과 법치주의 이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말 한마디까지 ‘긴급조치 위반’으로 처벌한 것은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지나친 처사였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 수호’라는 법원의 책무를 방기한 것이고 독재자의 영구집권 음모에 들러리 선 것에 다름 아니다.

수구보수신문들도 공범이었던 과거사를 감추기 위해 진실화해위 보고서가 담고 있는 긴급조치의 구체적 실상은 외면한 채 억지주장을 동원해 재판관 실명 공개만 문제 삼고 나섰다.
 ‘명단공개=명예훼손’ 주장, ‘잘못된 재판’ 증명하는 것
중앙일보는 ‘재판관 실명 공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중앙일보는 29일 10면 <1970년대 긴급조치 사건 판결한 판사/수백 명 실명공개 추진 논란>을 통해 진실화해위 보고서를 ‘재판관 실명공개’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기 시작했다. 작은 제목도 <“법치주의 훼손 우려”>, <“정치적 논란 불가피할 듯”>이라고 달았다.

기사는 “당시의 실정법에 따른 판결을 두고 지금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 하다”며 ‘대법원 한 관계자’의 발언을 빌어 “판사의 실명 공개는 법치주의와 판사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으로 국민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또 다른 인격권의 침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석연 변호사의 발언,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을 조성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의해 과거사위가 판사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라는 “법조계 일각”의 주장을 실어주었다.

이날 사설 <‘긴급조치’ 판사 이름 공개, 실익 없다>도 ‘상황논리’를 주장했다. 사설은 “시대에는 시대마다 사정과 상황이 있다”, “(긴급조치가)장기집권 사욕에 의해 이뤄진 측면이 분명하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성장을 이룩했고 안보가 지켜진 것도 무시할 순 없다. 그런 시대상황에서 판사들은 국민투표로 통과된 헌법에 따른 긴급조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긴급조치와 그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한 법원을 옹호했다.

또 “30년이 지난 지금 특정 사안에 대해 이를 집단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변화된 시대의 해석으로 단죄되는 것이 꼭 역사의 정의인가”, “과거사위가 서 있는 두 바퀴는 진실과 화해다. 진실을 캐내되 미래와 화해로 가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30일에도 중앙일보는 6면에 <과거사위 ‘긴급조치 판사’ 실명 공개 여부 오늘 결정/대법원 “공개 땐 정치적 오염 우려”>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대법원이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는 현 정권보다는 차기 정권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노 정부 하에서 과거사 정리를 본격화한다면 ‘노 대통령과 코드 맞추기’라는 지적이 나올 것”이라는 ‘익명의 대법관’의 주장이 그 근거다.
 조선일보도 30일 6면 <‘긴급조치 위반’ 판결 판사 500명 공개 논란>에서 ‘판사 실명 공개’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치적 이용’, ‘포퓰리즘’ 등을 거론했다. 작은 제목도 <언론에 실명 유출…법조계 “법치주의 훼손”>으로 달았다.

기사는 법관의 실명공개에 대해 “이 같은 자료는 정부의 기밀사항이 아니며 일반인도 얼마든지 정보공개를 요구해 열람할 수 있는 내용”이라며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주장은 진실화해위 보고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재판관의 실명이 적시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두고 “법치주의와 판사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포퓰리즘” 운운한 것도 어불성설이다.
 동아일보는 30일 5면 <과거사위, 긴급조치 판결한 판사 실명공개 추진/일부위원 “논의된 바 없다” 이의>에서 ‘실명공개’가 진실화해위에서 합의되지 않은 것이며 ‘포퓰리즘’이라고 몰아갔다. 작은 제목도 <대법 “재판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몰아붙이면 포퓰리즘”>이라고 달았다.

기사는 재판관 실명공개가 진실화해위 내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며 여기에 반대하는 ‘익명의 위원들’의 주장을 실었다. 이어 “당시 실정법인 긴급조치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었던 판사들을 여론 재판하려는 것은 당시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 “단지 긴급조치 시절 재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긴급조치 판사’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면 또 다른 포퓰리즘”, “정치적 오해를 부를 수 있으며, 발표 주체도 문제가 있다”는 등의 반발 의견을 실었다.
 한겨레, 보고서의 사회적·역사적 의미 초점
한편, 한겨레신문은 긴급조치 당시 재판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30일에는 긴급조치 유죄판결의 주요 내용과 재판관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25일 1면 <유신때 ‘술김에 한마디’ 처벌이 최다>, 4면 <“박정희 운좋아 대통령됐다” 12년 징역형>에서 긴급조치 위반 재판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보고서 내용을 보도했다.

또 이날 사설 <긴급조치 판결 무효화, 적극 검토하자>에서 “시대착오적 성격이 알려지긴 했지만, 공적 기관이 처음으로 사법부의 긴급조치 판결을 분석·평가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고 보고서를 평가했다. 이어 “대법원은 지난 해 긴급조치 사건 판결을 전면 무효화하는 입법을 국회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며 “위헌 가능성 시비 때문에 주춤한다지만, 중요한 건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되풀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30일에는 1면 <“긴급조치 선고때 양심의 갈등 느꼈다”>, 4면 <잘못된 과거사 ‘반면교사’로>에서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과 관련해 “판결문과 해당 법관의 이름을 공개해 잘못된 과거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며 당시 재판관 이름을 공개했다.

이날 사설 <역사의 평가는 법 위에 있다>에서는 또 “늦었지만 당시 법관들은 이제라도 자신의 ‘양심’을 걸고 그 판결들이 옳았는지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먼저 사법부 전체가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덧붙여 “개별 판결에 대한 비난은 신중해야 한다”며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반성과 용서와 화해”라고 당부했다.
 명단공개는 ‘단죄’가 아니라 ‘화해의 전제’
법원과 수구보수신문의 반대논리를 요약하면 △당시 법에 따른 판결을 현재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 △정치적 폭압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재판관들의 실명을 공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당시 재판관들의 판결이 ‘부끄러운 일’ 혹은 ‘합당하지 않은 일’임을 인정하는 것이자, 한편으로는 재판관 명단 공개가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는 일’, 혹은 ‘단죄’라는 판단을 깔고 있다.

그러나 명단공개를 ‘단죄’로 몰아가는 태도는 과거청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진실 규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힌 후, 잘못한 사람의 반성을 전제로 사회적인 화해가 이뤄지는 것이 과거청산의 절차이다. 따라서 과거가 부끄럽다고 해서 진실의 일부를 가리거나 감추겠다는 것은 ‘반성의 기회’, ‘화해의 기회’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며 결국 과거청산을 하지 말자는 뜻이다.

재판관의 명단 공개는 그 자체로 단죄가 아니라 ‘진실의 규명’으로 이해돼야 한다. 이에 따라 반성할 사람이 반성할 때 진정한 의미의 “미래와 화해”로 가는 길이며 ‘정치적 악용’ 운운할 필요도 없다.

일부 신문들이 “미래와 화해”를 내세우며 진실을 덮어두자는 것은 잘못된 과거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드는 일이며, ‘정치적 악용’을 우려하는 행위 자체가 반성해야 할 사람들을 두둔하는 정략적 행위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화해와 미래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 있다면 더 이상 과거청산의 의미를 왜곡하지 말라. 그럴 여유가 있다면 긴급조치의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들에 대해 지금이라도 국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 것인지부터 고민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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