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곡학아세, 그리고 대재앙"

[생명의 강 순례 4일째] 운하반대 서울대교수모임과 만나다

김병기 기자 | 기사입력 2008/02/20 [09:26]

"거짓말과 곡학아세, 그리고 대재앙"

[생명의 강 순례 4일째] 운하반대 서울대교수모임과 만나다

김병기 기자 | 입력 : 2008/02/20 [09:26]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한 자리에 모여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거짓말과 곡학아세, 그리고 대 재앙."
 
김포의 애기봉에서 순례를 시작한 지 4일째 되던 날인 15일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김 교수는 최근 서울대 교수모임이 주최한 긴급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서 '이명박 운하'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해 화제가 된 인사이다. 그리고 그는 서울대 교수모임의 모임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운하 반대 서울대 교수모임, 300명 서명 목표치 근접
 
"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230여명의 서울대 교수가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300명이 목표인데, 조만간 그 목표치를 달성할 겁니다. 서울대에서 이런 정도의 규모로 모임이 꾸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는 공개강의와 토론회를 열고 만화책도 만들겁니다. 그리고 전국교수모임으로 확산시킬 예정입니다.
 
교수들은 용감하지 못해 자리에 앉아서 말만하고 있는데, 이런 종교인들의 실천적 행동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운하를 반대합니다. 많은 교수들이 절차와 토론없이 진행되는 운하사업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국토가 대통령 소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김 교수는 서울대 교수모임의 현황을 보고하면서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4일 전 김포 애기봉을 출발해 칼바람을 맞으며 총 52km를 걸어서 서울에 도착한 순례단은 힘든 기색이 역력했으나, 저녁 6시30분경 선교회 회의실에서 김 교수의 강의가 시작되자 눈동자가 빛났다.
 
▲ 순례단 앞에서 강의하는 김정욱 교수.     © 김병기
 김 교수가 이날 강조한 것은 크게 3가지. 이명박 운하는 자연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고, 물 오염도 피할 수 없고, 생태계의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강은 구불구불 흐르는 데 그건 우연한 일이 아니고 그렇게 흐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면서 "미국 플로리다의 경우 남북전쟁이 끝난 뒤 강 길이의 절반을 줄이고, 수심을 10m로 파서 운하 공사를 1928년에 마쳤는 데 곧바로 홍수가 나서 2000명이 죽었다"고 경고했다. 운하는 물고기와 수초 등 수생생물의 거처를 없애는 일일뿐만 아니라 홍수 등으로 인해 인간에게 직접 피해가 간다는 것이다.
 
"운하가 건설되면 홍수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데 거짓말입니다. 한강도 홍수 때 수위가 15m 이상 올라갑니다. 배를 띄울 수심을 유지하려면 수위 상승이 불가피한데, 그러면 당연히 홍수 때 물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플로리다는 '운하 복원 특별법' 제정, 우리는 '운하 추진 특별법' 추진?
 
김 교수는 이어 물 오염 문제를 지적했다.
 
"배가 다니면 스크류가 돌아가면서 산소를 공급하기 때문에 수질이 좋아진다는 유명한 말(박석순 이화여대 교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1개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99개의 잃는 것을 감추는 말입니다. 가령 모터에 기름이 들어갑니다. 그거 조금씩이라도 흘리지 않겠어요? 배타면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해야 합니다. 그 물 어디로 가겠습니까? 또 배에 짐을 싣지 않을 경우 밸런스워터를 넣어두어야 하는 데, 짐을 실으면 그 물을 운하로 방류합니다. 유럽에 가보니 운하의 물이 더럽기 짝이 없어요. 그런데 왜 이런 거짓말을 합니까?"
 
김 교수는 "강변여과수를 통해 식수를 제공하겠다고 주장하는 데 우리나라로서는 난감한 일"이라면서 "이것만해도 10조가 들어가고 강변여과수를 할만한 마땅한 장소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플로리다의 경우 운하를 만들어서 조류의 90%가 사라졌다"면서 "우리는 운하를 건설하려고 특별법을 추진하는 데 미국사람들은 완성된 운하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었다, 운하를 만드는 데 3000만 달러가 들었는데 이를 복원하기 위해 3억달러를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얼마전에 방화로 인해 소실된 숭례문이 국보 1호라면,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내려 주신 자연국보 1호는 한강과 낙동강"이라며 "이 두 강의 생명을 없애고 단절시키면 큰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곡학아세'를 일삼는 운하 찬성론자들을 '간신배'에 비유하면서 그들이 운하의 경제성에 대해 어떻게 거짓말을 해왔고, 부풀려 왔는지 고발했다.
 
"3시간동안 컴컴한 터널 속에 갇혀... 무슨 관광 되겠나?"
 
▲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도보순례단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변을 따라 걷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기자
"경부운하 공사비가 14조원이라는 데 여기에는 빠진 게 많습니다. 가령 상수원 이전비용 10조를 넣지 않았습니다. 경부운하 통과 교량이 123개인데, 높이와 교각 사이의 간격 등을 고려하면 80~100개 정도의 교각을 재시공하거나 보수해야 합니다. 이 비용 10조도 빠졌습니다. 강을 준설하면 된다고하는 데 강바닥에 깔린 게 바위입니다. 준설이 아니고 굴착을 해야하는 구간도 많습니다. 준설의 3~4배 되는 비용이 듭니다. 이것도 빠졌습니다.
 
경제적 편익은 얼마나 부풀렸는지 모릅니다. 편익을 계산하면서 '환경개선비용'을 7조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망치면서 무슨 환경개선 효과가 있다는 말인가요. 공사비용 중 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8조원을 4년간 모래를 팔아 충당하겠다는 데, 어떻게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양심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1년 모래시장의 규모가 1조원입니다. 어떻게 8조원을 만들겠습니까. 결국 국고를 대줄 것입니다.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김 교수는 또 "운하로 인한 물류이동의 허구성이 밝혀지니까 관광 효과를 들먹이고 있는 데 이 역시도 어림없는 얘기"라면서 "가령 한강과 낙동강의 연결구간인 조령터널의 경우 3시간여에 걸쳐 캄캄한 터널 속을 다녀야할텐데 대체 누가 그 배를 타겠냐"고 일갈했다.
 
30여분동안 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던 순례단원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연스럽게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이명박 당선자 주변의 사람들이 전문가라면 상식적으로 김 교수님이 지적한 사항을 알텐데 왜 대운하를 고집하는 겁니까."(수경스님)
 
"이 당선자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처럼 그렇게 되도록 하라고 전문가를 향해 주문하면 전문가들은 '되도록 해와라'라는 이 당선인의 주문에 이끌려 간신처럼 곡학아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김정욱 교수)
 
"이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면 특별법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추진할 것 같다. 내년 2월 착공 시나리오가 지금도 착착 진행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무지의 소치인지, 성과주의에 매몰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양재성 목사)
 
"착공은 오히려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완공은 불가능할 것이다. 엄청난 국민들의 저항으로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김정욱 교수)
 
"장로 대통령 추진하는 일, 목사님들이 책임지세요"
 
이명박 운하의 황당한 면모를 접한 뒤 순례단과 김 교수 사이에는 많은 우스개도 오갔다.
 
"이 당선자가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는 데, 땅값을 올리는 것으로 국민을 섬기려는 것 아닌가."(수경 스님)
 
"김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요약하면 거짓과 죄악, 사기라고 볼 수 있는 데 결국 종교인들이 나서서 짱돌을 맞으면서 싸워달라는 얘기 아닙니까?"(이필완 목사)
 
"이걸 추진 하는 분이 장로 대통령이시고, 추부길 목사도 맨 앞에 있습니다. 그런 데 저는 중입니다. 여기 있는 목사님들이 책임지십시오. 목사님들께서 하나님께 전화통화를 해서라도 막아주세요."(수경스님)
 
마지막으로 수경스님은 이렇데 말했다.
 
"당선자가 주장하듯 경제성이 충족되고 관광 효과가 있다고 해도, 종교적 입장에서 봤을 때 운하 사업은 순리를 거역하는 일입니다.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이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 부처님의 말씀, 즉 전도된 삶의 가치를 되찾아야 합니다. 우린 한바퀴 '뺑' 돌면서 새로운 사회 흐름을 만드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전문가들이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웃음)."
 
우스개로 마무리짓긴 했지만, 운하 논쟁을 통해 순례단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 가치'라는 것이다.
 
이날 서울대교수 모임과 순례단의 만남은 2시간여에 걸쳐 이뤄졌다. 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이들은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4일동안의 도보순례로 인해 모두들 지쳐있었고, 매일 일정을 밤 9시에는 자야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필완 단장이 마지막으로 한 가지 공지사항을 알렸다.
 
"다행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의 온수가 작동되지 않습니다. 샤워하지 못합니다. 아래쪽에 발을 닦고, 머리 정도 빠는 뜨거운 물을 준비해놨는데, 시간이 지체돼 다 식었겠네요.(웃음)"
 
이 목사의 말이 끝나자 마자 여기저기서 넉넉한 우스개가 터져나왔다. '즐거운 비명'같았다.

 
<오마이뉴스/김병기 기자 제공 - 원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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