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싣고 달리다 펑크 난 렉서스"

[뉴욕칼럼] 미국 자국 자동차산업 살리기와 도요타죽이기 파문

채수경 | 기사입력 2010/02/26 [12:51]

"올리브 싣고 달리다 펑크 난 렉서스"

[뉴욕칼럼] 미국 자국 자동차산업 살리기와 도요타죽이기 파문

채수경 | 입력 : 2010/02/26 [12:51]
지난 1999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예찬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The Lexus and The Olive Tree)’를 펴낸다.

렉서스는 첨단기술과 국제협력으로 이뤄지는 세계화의 상징인 반면 올리브는 가족·민족·국가·종교 등 전통적 가치관의 상징, 그 책에서 프리드먼은 “왜 세계의 절반은 더 나은 렉서스를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는 반면 세계의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누가 올리브나무를 가질 것인가를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좀 더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사회는 더 좋은 렉서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세계화의 당위성을 주장했었다.
 
그 해 3월 다우존스지수가 103년 만에 10,000선을 넘고 12월엔 나스닥 지수도 4,000선을 돌파할 정도로 미국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던 바, 미국인인 프리드먼이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미국 GM의 캐딜락 대신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를 세계화의 상징으로 꼽아도 이의를 제기하기는 커녕 되레 “일본인들이 만들고 미국인들이 탄다”는 것을 미국의 아량과 자부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월가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미국의 자동차 업계를 덮치면서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소위 ‘빅3’가 시쳇말로 다 죽었다가 정부의 긴급수혈로 겨우 되살아난 가운데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태 계기로 범국가적인(?) ‘도요타 죽이기’에 가속도가 붙고 있음에 프리드먼이 멋쩍어서 뒤통수를 긁적거릴 것 같다.
 
전미 16개주에서 22개의 로펌들이 공동으로 도요타에 대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8일에는 미 연방 검찰청은 “프리우스 하이브리드차의 브레이크 시스템과 일부 차량의 급가속 관련 문서를 제출하라”고 통보하는 등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음을 시사했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또한 가속페달 결함문제 등에 관해 서류를 제시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오늘 하원의 에너지·상업위원회는 짐 렌츠 미국도요타자동차판매 사장과 레이 러후드 교통장관 등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청문회를 시작했다. 일개 자동차 회사의 리콜과 관련 의회와 검찰과 증권거래위가 한꺼번에 나선 것은 전무후무할 일, 이번 일로 도요타가 거액의 벌금은 물론 형사처벌을 면치 못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야말로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프리드먼은 ‘올리브’와 같은 작은 이익을 놓고 다툴 게 아니라 ‘렉서스’와 같은 큰 이익을 위해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했었지만 자동차 업계의 이익 하나 때문에 미일 동맹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증폭되고 있음에 각국의 이익을 도외시한 세계화야말로 공염불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실제로 대부분 미국인들인 미국 내 도요타 딜러들은 미 하원의 청문회가 열리기 직전 워싱턴 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해 도요타 말고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도 수십 건의 리콜을 단행했건만 유독 도요타만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뭐냐? 미 정부가 파산위기에 처했던 제너럴모터스와 크라이슬러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까발리면서 “도요타를 희생 제물로 삼지 말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일본이 미국의 ‘올리브’를 잔뜩 따서 ‘렉서스’에 싣고 달리다 펑크가 난 것 같아 쓴웃음을 금할 수 없다. 도요타의 불행에 즈음하여 자의반 타의반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는 현대차나 한미 동맹에 목을 매고 있는 이명박 정부 또한 언젠가는 도요타와 똑 같은 궁지에 몰릴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게 좋을 듯싶다. 이익이 엇갈리면 동맹도 세계화도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기 바란다. <채수경 / 뉴욕거주>

원본 기사 보기:worldanew.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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