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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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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황혼, 마리아는 내 자화상"
스위스통신 양로원 자원봉사 체험기, "지독한 외로움 달래..."
 
프리다
▲ 황혼     © 프리다
 
가끔씩 저는 동료들과 함께 마약중독자 보호소와 양로원으로 봉사를 나갑니다. 말이 봉사이지 정부의 시설이 부족해서도, 간호사가 모자라서도 아니고 그저 외로운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약환자나 노인들은 육체의 고통도 있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지독한 외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성악을 전공한 동료 니콜은 노래를 불러 줍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오르페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따라 기쁨의 눈물,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20여년 전 튀니지에서 스위스로 온 가비는 노인들의 손톱과 발톱을 정리해주고 발맛사지도 해줍니다. 독실한 이슬람교 신앙인인 그녀는 취리히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누구에게라도 친자매형제처럼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을 베풀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 입니다.
 
저는 봉사 중 머리를 깎아주는 일을 하는데, 10년 전 스위스의 이발비(한화로 남자 45000원부터, 여자는 머리 길이에 따라 다름)가 비싸 가족들의 이발을 해주던 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머리도 스스럼 없이 만지게 됐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인구 약 3만 명의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조용한 도시입니다.
 
"니콜은 노래, 난 이발로 봉사"

도시의 양로원은 진홍빛 건물에 옆으로 작은 냇물이 흐르고 산책을 할 수 있는 아담한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에는 여러 크고 작은 꽃들이 저마다의 색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깨끗하고 현대시설이 갖추어진 예쁜 집입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여러 인생들이 동료와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32호는 안나 헤스가 거주하는 방이었습니다. 그녀는 몇 번에 걸친 사고로 골절상을 입어 여러 번 수술 했죠. 걷는 것을 무서워하면서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걷는 연습을 꾸준히 했습니다. 그녀가 이곳에 왔을 때는 은발의 날씬한 몸매에 사람을 보는 눈이 예리했습니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라틴어를 막힘 없이 구사하는 탁월한 언어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녀는 중학교 가정 선생이었으며, 남편도 중학교 미술선생이었는데 수년 전에 사망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총명하던 그녀의 눈빛은 기억상실증으로 싸늘하게 노려보는 듯 변했습니다. 그렇게 고정시킨 두 눈의 그녀와 동료 니콜이 눈 싸움을 여러 번 하였는데 이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종종 배가 아프다며 아기를 살려 달라고 호소하곤 했습니다.
 
2년 뒤에는 에리카 헤스가 노환으로 2층의 방으로 이사왔고, 그녀는 안나 헤스와는 절대로 마주치지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에리카는 한스 헤스의 부인이었으니까요. 이혼이 흔치 않은 1930년대에 남편을 빼앗아간 안나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 한스씨의 여성 취향이 비슷한지 알맞은 키에 고운 얼굴의 두 분입니다. 안나가 유산한 경험이 있고 그토록 아이를 갖고자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지금도 상상임신으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안나의 방에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안나에게 60세 생일기념" 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화가 한스씨가 정성들여 그린 정물화와 다른 크고 작은 아름다운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에리카의 방에는 퇴색된 결혼식 사진이 걸려 있고요.
 
"에리카와 안나의 악연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랑이 있습니다. 먼발치에서 안나가 보이면 다른 쪽을 향하며 가슴 조이던 분, 그리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을 그리워 하던 그분들은 봄이 끝나갈 즈음 같은 시기에 90세를 전후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55호실 주인 왈터 푸르터씨와의 에피소드를 적어봅니다. 왈터씨는 지역 은행장을 지냈고 지점장님답게 목소리도 크고 활달하며 유머러스했습니다. 아침이면 3개의 신문을 읽습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으며 90세에 실버타운으로 부인과 이주하였는데 이사온 지 3개월만에 넘어져서 코뼈가 부러졌고, 다리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쳐서 양로원 본관으로 이사했죠. 부인만 실버타운에 남아 잠만 잡니다. 

파킨슨병은 경미하게 손발이 떨리기 시작하다가 행동이 둔화되며, 심한 경우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고, 목소리도 단조한 음이 되며 강약의 변화도 없고 떨리기도 합니다. 어느 날 그분이 일어나기 한 시간 전에 여느 때와 같이 야간 당직 간호사가 파킨슨병 약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왈터씨가 갑자기 "약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삶은 더 이상 살기 싫다", "독약을 주는 너희들은 즉시 사표 처리시킬 것이다"며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고 맞은편 벽에 물컵과 약을 던져버렸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깜짝 놀란 간호사는 방을 나왔습니다. 간호과장에게 전화를 했고 왈터씨의 아들에게도 전화를 했습니다.

이들은 함께 생활계약서를 읽은 후 재서명을 하였고,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퇴소할 수밖에 없으며, 간호사의 잘못은 없으므로 사과를 하라고 했습니다. 왈터씨의 부인은 착하기 그지없어서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선처해 달라고 많은 사람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면, 다시 한없이 인자하고 자상한 할아버지가 되시는데, 오랫동안 직장에서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지시하려고 하는 성격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파킨슨병 왈터씨의 대소동

어느 날은 왈터씨가 침대에 걸터앉아 신문을 보면서 화이게,즉 곶감처럼 생긴 말린 과일을 통째로 먹다가 목에 걸렸는데 식도가 막혀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빨리 비상종을 눌렀기에 급히 달려 온 간호과장의 힘으로 그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녀가 75킬로나 되는 왈터씨의 배를 잡고 들어 올려서 화이게를 뱉어 내게 하니 주먹만하게 퉁퉁 불은 화이게가 쏟아졌습니다. "하이디,너는 씨름선수가 더 적격이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에,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기 때문인지, 어디서 그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라며 하이디는 웃습니다.
 
왈터씨는 평소 하이디에게 남자 같다고 말도 하지 않고, 씨름선수라고 별명까지 지어준 바 있는데, 그 하이디가 그의 생명을 구해 준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여러 곳에서 감사의 편지가 왔고, 회식비를 동봉하기도 했습니다. 부인이 시장에 다녀오면 영수증을 꼭 "남편에게 주어야 한다(계산은 정확히)"던 호랑이 할아버지 왈터씨는 하늘나라에 가실 때 아주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왈터씨는 유언으로 "나를 위해서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고, 얼마 후 가족을 만나 물어 보니 말씀하신 대로 "유골을 동네의 뒷동산에 뿌렸고, 장애인을 위해서 재산을 기증하셨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생일날에는 온 가족을 초대하여 떨리는 손으로 계산하고, 손자들이 오면 공부하는데 요긴히 쓰라며 지폐를 손에 쥐어 주던 할아버지께서 공수래 공수거를 실천하셨습니다.
 
누구도 이 양로원을 오는 이는 이태리 할머니인 마리아 방에만 안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섬기는 마음으로 인내심 있게 모두가 그녀를 돌보았다고 하면 그녀의 성격을 조금 이해할까요? 그녀는 65세의 나이에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들어와 15년의 양로원생활을 하고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원장님의 배려가 컸습니다.
 
"모두가 마리아 방만은 꺼려"

"똑,똑"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노크를 해야 합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큰 목소리나 문을 꽝 닫을 때는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너무 더워서 여러 번 깨었어! 아, 역겨운 수프 끓이는 냄새. 한번도 맛있게 먹지 못한 음식을 또 만들어? 너도 외국인이니 스위스 음식이 얼마나 맛이 없는 줄 잘 알고 있지? 도대체 스위스는 맛있는 음식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단 말이야." 늘 듣는 말입니다.
 
침대에서 체조가 끝나면 5분 동안 천천히 보조 지팡이에 의지하여 화장실까지 걷습니다. "내 돈을 야금야금 빼앗아서 양로원을 늘리고, 내 머리를 수술한 의사는 나와 똑같은 병을 앓다 죽을 것이다. 이곳의 내 물건을 훔친 자들의 손은 남아 있지 못할 걸." 비틀비틀 위태한 몸으로 걸으면서 악담을 퍼붓습니다.
 
13세부터 가정부로 일하면서 온갖 힘든 일을 했고, 30세에 스위스분과 결혼하여 사별했다. 이태리분과 재혼했는데 60세에 중풍을 앓게 되었고, 남편이 고혈압으로 먼저 세상을 떠 양로원에 홀로 오신 것입니다. 슬하에 자식은 없고, 이태리 분들이 몸에 치장하기를 좋아하듯 마리아도 옷장에 옷이 가득합니다. 그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는 기억력이 대단히 뛰어납니다.

간호사들이 일은 하지 않고 월급만 받고 있다며, 하루에 30번 이상, 5분에 한번씩 비상종을 울려댑니다. 가보면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떼며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마리아, 이곳이 당신에게 맞지 않으면 다른 곳을 찾고, 음식이 맞지 않으면 다른 식당에서 주문하여 드십시오. 많은 분들이 식사하는 곳인데 다른 분들께 피해가 되니, 일주일 동안 방에서만 식사하도록 하세요." 마리아에겐 식당 사용 금지령이 일년이면 몇 번씩 내려지기도 합니다.
 
"푸념하는 늙은 동양인이..."

그녀는 특정 종교 신자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같은 교인 누구도 그녀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데리고 가고, 데려다 주었죠. 코트 한번, 가방 한번 들어 줄 수가 없는 것은, 며칠 후면 도둑누명을 쓰거나 잘못 도와주어서 더 악화되었다는 소리를 들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에 수산나와 같이 갔는데, 단 한 명의 친구도 오지 않았어. 묘지관리인 두 명과 우리 두 명이 다야. 난생 처음이군. 가족, 친구도 없는 쓸쓸한 장례식." 장례식에 다녀온 인정 많은 가비의 말입니다.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를 보상 받으려 하는 복수 심리와 자신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절대 베풀지 못했던 그녀. 다른사람이 도둑질하여 갔다고 끊임없이 의심하여 쓰레기통을 쏟아 놓고 확인을 하여야 의심을 멈추던 그녀가 남기고 간 짐들은 모두 폐품처리 되었습니다. 일년 후 그녀의 묘지를 방문했을 때는 두 번째 남편의 묘지 옆 나무 조각 위에 '마리아' 라는 명패만 있을 뿐 정식 묘가 없었습니다.
 
노인은 우리들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마리아는 저의 자화상이 아닐까 합니다. 밥.김치.두부.된장국.미역국이 없다고 스위스 양로원에서 푸념하는 늙은 동양인 할머니 말입니다.



기사입력: 2007/09/02 [21:07]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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