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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1.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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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의 찬란한 보물, 프라하
[스위스통신] 연말 밤기차의 술렁임 따라 아픈 역사를 거슬러...
 
프리다
▲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청(완쪽)과 틴교회(1365년 외국상인들의 숙박시설의 부속교회로 지어짐) © 프리다
▲     뾰족한 탑들이 솟아있는 시가지 전경   © 프리다
▲    전차가 다니는 프라하의 구시가의 거리 © 프리다

 연말에 타보는 밤기차는 술렁임 그 자체였다. 승객들의 대부분이 서유럽인들 같지는 않고, 동북부유럽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길 같아 보인다. 복도에 큰 여행가방들이 쌓이고, 몇 젊은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시끄럽게 떠들어서 침대칸의 간이문을 닫으니 조용하다.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고 취리히에서 인스브룩, 잘츠부륵, 비엔나를 거쳐 15시간 후에 프라하에 도착한다. 

자리를 펴고 누워서 프라하의 생각 속에 잠겨본다. 20년 전, 10년 전, 그리고 지금 3번 째 프라하를 방문한다. 20년 전, 그때는 아직 사회주의 체제여서 주민들이 생필품을 배급 받던 터라 시내에서 버터나 과일 조금이라도 구입하기가 매우 어려웠었다. 지금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했지만, 당시 이 아름다운 도시가 폐허로 되어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었다. 

10년 전 방문 때 프라하는 민주국가(1993년)로 다시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고, 자본주의의 전향으로 인한 인플레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오늘의 프라하는 역시 자본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이 강하게 느껴질 만큼 옛날의 그 프라하가 아니다. 물가는 다른 서유럽과 비슷하고 시내에는 높은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으며 가게마다 전 세계의 명품들로 가득 차 있다.

 
▲    카를교를 건너서   © 프리다
▲    성 비타 성당. 10세기부터 계속  건축되어 1929년에 완공되었다.   ©프리다
▲  블타바강   © 프리다

나에게 프라하는 수년 전 읽었던  체크인 작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라는 소설과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프라하의 봄’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책은 주인공 테레사, 토마스,  사비나가 펼쳐가는 삶의 이야기이다.  토마스는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남성 인물이며 그를 사랑하는 테레사와 사비나의 이야기가 나에게 삶에 대한 온갖 질문과 고민들을 안겨주었던 옛 기억이 있다.  

토마스와 사비나는 가벼운 삶을 선호했던 것 같다. 반면 테레사는 무거운 삶을 선호했고 그런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그들이 받는 상처와 인생의 희비들이 여성들이라면 모두 느껴지는 것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테레사의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밝혀나가는 과정과 지고지순하고 청순한 사랑은 우리 한국여성의 사랑법과 많이 닮아 보인다.

사실 ‚프라하의 봄’은 위의 책과 관계없이 체크의 아픈 역사를 알려주는 대명사이다. 체크는 우리에게 체코슬로바키아로 알려진 두 나라이지만, 체크와 슬로바키아가 한 나라엮던 시기는 의외로 길지 않다. 5-9세기 슬라브계 그리스도교에 의하여 건국된 대 모리비아 왕국은 체크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바츨라프 1세(재위 920~929년)에 가장 번영했다. 14세기에 카를 4세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프라하는 중부 유럽의 중심도시가 되어, 대학과 카를교, 프라하성,신시가 등이 건설됨으로서 오늘의 프라하 기초가 형성된 것이다.

 
▲   블타바강  © 프리다
▲    유럽 최대의 유대인 묘지. 이곳은 약 1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의 묻혀온 것으로 추정된다.   © 프리다
▲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   © 프리다

 14세기 초, 루터보다 1세기나 앞서 얀 후스(1369-1415)에 의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이에 위협을 느낀 로마 법왕이 후스를 이단자로 몰아 처형하면서 종교개혁전쟁에 휩싸여, 결국 16세기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브룩 왕가의 지배를 받는다. 19세기 후반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지배를 받다가, 제 1차 세계대전 후 슬로바키아의 민족운동에 호응하여 체코슬로바키아로 통합되었다. 2차대전 중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총 한번 들지 않고 나치 독일에 항복하여 점령되었고, 1945년 소련에 의한 해방 후에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1968년 민주화 정책으로 ‚프라하의 봄’이 실현되었지만, 바르샤바 조약군의 개입으로 이 운동은 좌절되었으며, 1989년에는 벨벳혁명으로 불리는 무혈혁명에 의하여 신생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이 탄생되었다. 그러나 적극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추구하는 체크 측과 온건한 혁명을 추구하는 슬로바키아 측이 대립, 결국 1993년 1월 1일 체크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

 
▲   프라하의 주택들   © 프리다
▲    후지텐교회   © 프리다
▲   스메타나 박물관  © 프리다
▲   프라하 외곽  © 프리다
▲    벤젤광장 © 프리다

 
▲   건축물 외부장식  © 프리다
▲     © 프리다
▲     블타바 강위의 카를교. 1353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150년 이상에 걸쳐 만들어졌다.   © 프리다
▲    천문시계. 두 개의 시계는 천체의 회전과 사계의 이동변화를 나타낸다. 1410년에 만들어짐.  © 프리다
▲ 화약탑. 구시가를 지키기 위한 성벽문 가운데 하나. 17세기에 화약창고로 이용되었으며 1475년에 건립.  © 프리다
 
▲   무엇을 알리려는 작품일까?   ©프리다
▲    프라하의 골목길   © 프리다

기사입력: 2008/01/17 [03:21]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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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평화사랑 08/01/17 [12:30]
오랫만입니다. 좋은 프라하에 다녀오셨군요.
고색창연한 보헤미안의 역사를 사진으로 전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수정 삭제
자미 08/01/20 [15:12]
저두 아주 오래전에 읽었읍죠,
새해에두 건강하시고
보물 보따리 많이 많이 풀어주삼~!ㅎㅎㅎ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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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군청은 도로가 좁고 너무 복잡합니
오늘 은사님 생각이 문득 들어 검색을
서민교수 예전 글 보면 모두 이런식으로
반어법으로 비꼬신것 같네요 신비주의부
돌려까기
근데 이건 비꼬는 글 아닌가요?..?;;
치료가 필요해보이는 칼럼이군요.....
성남시장님은 성남시에 대한 시민의 의
태극기를 저런대 도용해서 한다는자체가
김오달입니다. 페이스북으로 메시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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