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여명의 눈동자(44-2) "어떤 일 나도 울지마"제44장 여명의 눈동자(2)-2<지난 글에 이어서> 서란이 유흔을 불렀다. 서란은 유흔의 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나도 순순히 자여에게 죽어줄 생각 따위는 없어.”
“…….”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 테니까. 살아남아서 가주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 두고 어디 가지 마. 알겠지?”
유흔은 그저 말없이 서란을 마주 끌어안아주었다. 다른 말에는 다 그러마 대답해도 나 두고 어디 가지 말라는 말에는 차마 대답할 수 없어 유흔은 한동안 서란의 어깨만 토닥여주었다.
“화야.”
“응?”
“울지 마.”
“……?”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울지 마. 알겠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유흔은 눈으로 방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방 안을 둘러보는 유흔의 눈동자에는 강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
유흔은 서란의 올린 머리 주위를 금박이 박힌 머리끈으로 감싸주고 금으로 만든 당초모양 뒤꽂이를 두 개씩 꽂아주고, 마지막으로 붉은 보석으로 만든 보요장식이 줄줄이 매달린 뒤꽂이를 하나 더 꽂아주었다.
“자, 이제 귀고리랑 목걸이 차례지.”
유흔은 서란의 귓불에 조금은 수수한 금귀고리를 달아주고, 목에는 얇은 금속판들이 달린 금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동경을 보고 난 서란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말고 가락지는?”
“나중에 사줄게.”
유흔은 서란에게 금실로 자수를 놓은 검은색 피풍의를 둘러주고 객잔을 나섰다. 객잔에 도착한 서란과 유흔은 방계 인물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앞에 놓인 찻잔을 홀짝거렸다.
“모리화차네.”
“여기는 구하의 명의 요리를 파는 요리점이잖아. 그러니까 그곳 식으로 물 대신 모리화차가 나올 수밖에.”
방계 인물들이 모두 도착하기 전까지 서란과 유흔은 모리화차 한 주전자를 모두 비우며 요리점에서 반찬요리로 가져다준 오이무침을 집어먹었다. 광둥이라는 곳의 요리라는 오이무침은 무척이나 맛이 있었다.
“어서오시지요.”
방계 인물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서란은 점원에게 지시해 그들의 앞으로 각각 찻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젓가락과 사기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받침, 빈 접시를 가져다주게 했다. 점원이 쟁반에 찻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식기를 받쳐와 모두의 앞에 하나씩 내려놓고 곧 요리를 준비하겠다 말하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곧 요리가 준비될 터이니 우선은 차와 오이무침부터 천천히 즐기시지요.”
서란은 자신 몫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방계 인물들은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어딘가 변해버린 듯한 서란의 분위기에 저마다 눈치를 살피며 각자의 앞에 놓인 오이무침만 깨작거릴 뿐이었다.
“전복과 해삼 냉채입니다. 식전요리로는 냉채가 제격일 것 같아 냉채로 준비했습니다.”
요리사가 요리를 소개하며 점원과 함께 음식을 내왔다. 서란은 앞에 놓인 냉채를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며 방계 인물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여태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생각도 하지 못하다 이제 서야 서란이라는 방계 출신 제2후계에게 붙어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주워 먹으려는 그들의 나약한 근성이 참으로 경멸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가주가 되는 데에, 그리고 자신의 치세에 꼭 필요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이들과 함께 가는 수밖에.
“맛있다. 새콤한 맛이 입 안이 감도는 가운데 시원한 청량감도 느껴진다. 참으로 솜씨가 좋구나.”
“감사합니다, 아가씨. 이제 다음 요리 또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요리사와 점원이 부엌으로 사라지자 서란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서란이 젓가락을 내려놓는 소리에 방계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서란에게 향했다. 서란은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카무라 프리 샤르휘나를 보고 제게 오신 분이 계십니까?”
갑작스러운 서란의 질문에 방계 인물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먼저 나서서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예, 압니다. 애초에 여러분들은 카무라 프리 샤르휘나가 아니라 카무라 프리 샤르휘나에게서 떨어질 콩고물을 보고 제게 오셨다는 것을요.”
“……!”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나 착각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 콩고물이라는 것은 말입니다.”
서란은 앞에 놓인 찻잔에 모리화차를 넘치도록 따랐다. 찻물이 넘쳐흘러 탁자를 흥건히 적셔갔지만 서란은 차를 따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법입니다.”
“……!”
“이 모리화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리화차를 알아보고 제대로 마실 사람이 없다면 그저 식어서 버려지는 향기로운 물 한 잔에 불과할 뿐이지요.”
“…….”
“콩고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떨어질 콩고물이 무엇일지, 누구에게서 떨어질지, 어떻게 해야 떨어질지를 알아보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만이 콩고물을 얻을 자격이 있는 법입니다.”
“…….”
“이 모리화차를 제대로 마시기 위해서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지요.”
서란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이, 주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주요리인 여우롱시펑을 먹는 동안 아무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유흔이 서란의 빈 접시에 오징어와 닭고기를 더 덜어주자 서란은 유흔이 더 덜어준 오징어와 닭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먹었다.
“그러니 이 한서란, 카무라 프리 샤르휘나, 여러분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
“여러분들 중 제가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아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서란의 질문에 방계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저 고개를 숙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서란은 오징어를 한 점 집어먹고 말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들 중 제가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알고 계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말을 마치며 서란은 방계 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이것으로 정옥을 설득하는 일은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생각하며 서란은 자신 몫의 요리만 비웠고, 두 번째 주요리인 거위통구이를 비우는 동안까지 요리점 안에는 젓가락이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와 이따금 차를 홀짝이는 소리만 날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무덤보다도 깊게 내려앉았다. <다음 글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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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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