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포털은 ‘종합 가두리 양식장’

[칼럼]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국장

최내현 국장 | 기사입력 2006/12/12 [17:04]

한국 포털은 ‘종합 가두리 양식장’

[칼럼]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국장

최내현 국장 | 입력 : 2006/12/12 [17:04]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장 
한국인터넷콘텐츠협회장
해프닝에 그쳤지만, '문제 유인물'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잠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극우단체 집회에서 뿌려진 유인물의 내용이 워낙 감명 깊어서(?), 그걸 그대로 블로그에 타이핑해서 올렸다가 생긴 일이었다. 한 네티즌이 퍼다가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고, 마침 선거를 앞둔 기간이어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던 것이다.

복사나 붙여넣기가 손쉽다는 것은 인터넷의 고유한 속성 중 하나이고, 그 자체엔 불만이 없다. 인터넷의 폭발력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2년의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는 한 네티즌의 게시판 글이 놀라운 속도로 복사되어 뿌려지면서 가능했다. 문제는 그 복사와 붙여넣기가 많은 경우 정당하지 못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모든 콘텐츠는 창작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내가 쓴 글이나 우리 웹진이 밤새 머리를 쥐어짜서 만든 글이 ‘네이버 붐’ 혹은 ‘다음 아고라’ 같은 코너에 올라 있던 걸 여러 번 본적이 있다. 원래의 사이트보다는 수십배 더 즐겁게 향유되고 있는 그런 경험을 많은 이들이 해 보았으리라 믿는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데,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필자가 지고, 혜택은 남이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당하지 못한 관행이다. 해당 포털에 항의를 하면 철저한 확인을 거쳐(복사는 손쉽게) 삭제해 준다. 이미 과실은 남이 따먹은 후이다. 포털 입장에서 모든 글을 그렇게 관리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저작권 침해를 방조하며 방문자 및 트래픽 집중으로 인한 각종 수익을 즐기는 상황은 분명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책임은 나에게, 혜택은 남들이

화제가 되는 글이나 동영상은, 출처가 어디든지 간에 포털 사이트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괜찮은 사진이나 텍스트 자료, 외국의 인기좋은 동영상도 거의 감상할 수 있다. 그 동영상의 저작권자는, 엉뚱하게 한국의 포털 사이트가 자기 동영상을 서비스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포털은 원하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서 빠르게 안내해주는 고속도로의 역할보다는, 모든 것을 자사의 서비스로 제공해 주는 가두리 양식장으로서의 기능에 이미 오래 전부터 충실하고 있다. 인터넷 트래픽은 검색 엔진으로부터 각 사이트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포털이라는 거대한 웅덩이에 모여 고이게 된다. 단 몇 개 사이트만 합치면 국내 트래픽의 절반 이상이 간단히 넘어가 버리고, 상위 열 개 사이트를 합치면 우리나라 인터넷 전체의 80%가 가볍게 넘어가는 상황에서, 한 때 인터넷의 존재 의의로 자리 잡았던, 다양한 목소리가 백가쟁명 식으로 나타나고 경쟁하는 장(場)으로 기능하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위 업체의 점유율이 상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 폐해를 알기 때문에 모든 나라에서는 독과점을 규제하고 있다. 이제 인터넷에서도 그런 정책이 등장할 때이다.

독과점 규제 안하면 다양성 사라져

트래픽의 독과점이 도대체 왜 나쁘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간 혜성처럼 나타난 사이트가 없었다. 간단하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기를 끄는 사이트가 사라지고, 디자인부터 기능에 이르기까지 ‘기본 요건’을 만족하느라 사이트 개발 비용이 점점 올라가고 그에 따른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전부 포털 사이트에서만 서핑을 마치는데 새 사이트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이것은 인터넷의 활력 저하, 나아가서 창조적 콘텐츠의 고사로 이어진다. 그것은 포털로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뉴스의 경우도, 기사의 주 소비처가 포털이 되고 나면 신문의 논조와 편집 방향은 실종되고 파편적인 기사들만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 포털에서 다양한 정보를 순식간에 얻는 편리함은 있을지 몰라도, 100% 객관적인 ‘정보’는 원래부터 없지 않은가?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가공했느냐에 따라 정보는 달라지는 것인데, 그러한 사회적 지성이 무뎌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현재와 같은 공룡 포털은, 검색의 양이 증가해서 자체 DB에서 끌어내는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따라서 증가하게 된다. 스스로 판 무덤에 빠지는 격이 되고 마는 것이다.
 
즉 요약하자면, 저작권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지면, 그것이 일부 콘텐츠 생산자의 피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전체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에 인터넷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은 집단이라는 특성을 생각해볼 때 더더욱 그러하다.

초원에 풀과 사자만 남을까 걱정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항상 반론이 나온다. 네티즌들이 한 사이트만 집중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누가 강제로 시킨 것이냐, 편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사이트 운영자들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를 희생시켜야 하느냐, 라는 반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지금 포털에 전시되는 콘텐츠들보다 훨씬 재미있거나 깊이 있거나 유익한 콘텐츠들이 인터넷 세상에는 훨씬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소비자의 편익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더 넓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부 당국의 관심,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노력, 검색 사이트의 기술적 진보, 대안적 사이트 구축, 시민사회의 감시 등등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그 중에서도, 현재와 같이 모든 정보를 ‘가져와서 담아 놓는’ 현재의 포털 운영 방안에 대한 재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 일방의 이익을 위해 목청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잘못하다가는, 초원에 풀과 사자만 남는 현상이 일어날 것을 걱정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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