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끊어 삶·죽음 경계에 다가가려는 것"

[연재소설] 홍매지숙명 피다, 제22장 폐월수화(閉月羞花)(22-3)

이슬비 | 기사입력 2018/11/19 [10:19]

"음식끊어 삶·죽음 경계에 다가가려는 것"

[연재소설] 홍매지숙명 피다, 제22장 폐월수화(閉月羞花)(22-3)

이슬비 | 입력 : 2018/11/19 [10:19]

<지난 글에 이어서>

옥사에 도착한 서란은 환한 횃불 아래에 있는, 상기되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시선을 아래쪽으로 가져간 서란의 눈에, 손도 대지 않은 물그릇과 말린 연어 접시가 들어왔다.

서란은 나무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말린 연어를 입에 넣었다.

 

배가 고프냐?”

 

남자의 목소리에 서란은 연어도막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았다. 이곳은 외부의 그 누구도 허락 없이 출입할 수 없는 가라고루성의 지하감옥이었다. 그러니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부터 자신의 정체를 어느 정도 눈치 챘어야 정상 아닌가?

 

이거 혹시 바보 아니야?’

 

서란은 남자의 눈앞으로 손을 들이밀고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 다음 손가락 세 개를 접고 남자에게 물었다.

 

아카포, 이거 몇 개?”

 

아카포라는 말에 남자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서란은 뭐야, 하며 손을 거두었다.

 

아카포, 정말 바보야?”

 

제화족이구나.”

 

뭐야, 그걸 이제 알았어? 이제 보니 천하에 둘도 없는 옹고집일 뿐만 아니라, 어지간히 둔하기도 한 모양이라며 서란은 빈 연어 접시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너는 한씨가의 아이이구나.”

 

남자가 손가락으로 서란의 옷깃에 수놓아진 새 두 마리를 가리켰다.

 

그런데 아카포.”

 

아까부터 아저씨를 뜻하는 제화족 말로 남자를 부르는 서란의 얼굴에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난기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서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카포는 왜 아무것도 먹지 않아? 정말 굶어죽고 싶은 거야? 정말 그래?”

 

아이야.”

 

서란은 나무창살에 등을 기대고 머리를 뒤로 축 늘어뜨렸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서란의 뒤통수를 쓰다듬어왔다.

 

나는 지금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경계에 다가가고 있는 거란다.”

 

……?”

 

너도 알다시피 제화족은 포로가 되더라도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나, 삼백족은 포로가 되어 치욕을 당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옳다고 여기지.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사람들 모두 실제로 죽어본 적은 없지 않니.”

 

…….”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은 오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본 이들만이 알 수 있는 법. 해서, 나는 음식과 물을 끊음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가가려 하는 것이란다.”

 

남자의 말에 서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 번 웃고 나서는, 물그릇을 들어 그의 앞에 쏟아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당신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본 적이 없는 주제에, 어디서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꾸짖는 것만 같아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다음 글에 계속>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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