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언론재갈에도 시위소식 해외전파

10일째 계속되는 반독재투쟁, 9명 사망 등 폭압에도 계속 번져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9/28 [14:09]

버마 언론재갈에도 시위소식 해외전파

10일째 계속되는 반독재투쟁, 9명 사망 등 폭압에도 계속 번져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9/28 [14:09]
‘더 타임’ 케네스 덴비 기자 취재기 발췌
 
버마 군부가 민주주의를 바라는 승려들과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린 27일. 10여일이 넘게 길거리에서 투쟁해온 승려들은 이날도 양곤의 도심을 오가며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수십만명의 시민을 길거리로 불러냈다.

하지만 밤새 군부는 이들 승려들을 폭행하고 체포했으며 일부는 수도원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사원을 봉쇄하기도 했다. 군부의 이런 조치에도 27일 일부 승려들은 삼삼오오 길거리로 진출했지만 26일처럼 거리행진에는 대거 참여하지는 못했다.

▲ 버마 군부의 발포로 총에 맞아 쓰러진 겐지 나가이. 그는 일본에 본부를 둔 APF(미디어) 소속 사진기자.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곧 사망했다. 영국의 일간 '더 타임'에 실린 사진과 보도내용.    © 최방식 기자


하지만 수십만명이 연일 길거리에서 벌이는 반독재투쟁 곳곳에서 승려들의 모습을 볼 수는 있다. 당국의 명령을 거부하고 이들은 용기를 내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진압용 방패로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진격하는 군인·경찰의 대열 옆에서도 볼 수 있다.

승려들은 버마에서 삶의 기준이다. 시위행렬에는 어디서든 승려가 한 가운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동화기로 무장한 경찰에 겁먹은 시위대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정의의 사도 같다.

승려들 ‘반독재 투쟁’ 불붙여

승려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론이 죽어 있어 여기저기 수소문에 따르더라도 9명이 살해됐고 수십명이 부상당했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사망자 속에는 일본 기자도 한명 포함돼 있다.

이번 시위사태가 아직 1988년 양상으로 가고 있지는 않다. 그해 8월 8일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가 격화되자 군부는 3천여명을 길거리에서 살해했다. 현 군부는 아직 발포를 전면 허용하지는 않고 있지만 교활한 시위 진압을 하고 있다.

▲ 지난 25일 시위 때 사진.     © Htein Win(BMC소속)

27일에도 양곤시 남쪽 오칼라지역에 있는 뭬캬파고다에서 오후 2시 시위가 시작됐다. 7시간이 지나서야 거기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드러났다. 10여명의 상처를 싸맸던 피가 굳은 붕대와 터져 널브러진 사람의 살덩이가 거리 여기저기에 나뒹굴었다.

수도원의 숙소 창들은 경찰이 쏴댄 고무총에 의해 박살이 났다. 이 모든 증거들은 이 곳 승려들이 수집해 사원 안에 모아 놨다. 사원 안은 성한 곳이 없었다. 부처가 박살났고 침대는 모두 피로 물들어 있었다.

경찰의 연행을 피해 가까스로 현지에 남은 몇 명의 승려 중 하나인 아신 투는 언론과 대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웃 민가에 숨어들었다”고 밝히고, “그 집 주인이 숨겨줘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며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군부, 27일 3곳 이상 수도원 공격

경찰과 군부가 현재 시위 진압에 사용하고 있는 건 고무총. 하지만 파괴력이 굉장한 수준. 이날 시위에서 70여명이 이 고무총에 맞아 유혈이 낭자한 상태로 군응급차량에 실려 갔다. 일부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다. 걸 거리는 고무총에 맞아 흘린 시위대의 피로 흥건히 젖은 상태다.

▲ 25일 시위 중인 비구니 스님들.     ©Htein Win(BMC소속)

간신히 체포를 피할 수 있었던 승려들이 가장 분노한 건 군경의 도둑질이었다. 금고의 모든 돈과 금붙이들을 털어갔으며, 심지어 금으로 만든 부처상까지 모두 가져갔다. 이들은 군부가 8시간 통금령을 내린 이유를 깨달았다. 폭도들로부터 시를 지키겠다던 건 거짓이었고 자신들의 도둑질을 시민들이 목격할까봐 그리 한 것이다.

이런 일은 뭬캬파고다의 사원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고 최소한 3곳의 사원에서 동시에 생겼다. 아울러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의 고위 간부들 집은 모두 군경이 봉쇄한 상태다.

이날 오후 양곤시 전역의 사원에는 군부대가 진주했다. 부처님 사원에 총칼을 든 군인이 진주한 것은 참으로 큰 모독이다. 평화롭고 거룩해야 할 곳에 폭력적 군인들이 들이닥친 게 날벼락이었다.

모가웅파고다에서는 올리브색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목에 붉은 손수건을 둘렀다. 시위대는 그게 발포명령의 사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작 살해는 딴 곳에서 발생했다.

▲ 길거리에서 시위 중인 한 노 스님과 시민들.     © Htein Win(BMC소속)
 
사원침탈, 황금부처까지 도둑질

양곤시에서 쉐다곤파고다에 이어 두 번째로 유명한 슐레파고다로 가는 남향 도로에서 발생했다. 점심 무렵 수천명이 시위대가 교차로에 몰려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책이 달린 바리케이드를 치기 시작했다.

오후 1시쯤이 되자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군인들이 따랐다. 경찰차량에서는 거듭 경고방송이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그리곤 부지불식간에 발포가 시작됐다. 최루탄이 자욱한 가운데 서였다.

사진기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쓰러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총소리가 시끄러운 가운데 툭 쓰러진 것이었다. 그의 축 늘어진 몸은 군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옮겨졌다.

군중은 흩어졌다. 그리고 후퇴해 몇백야드 떨어진 곳으로 다시 모였다. 진압 경찰(군부)은 방패로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한발두발 시위대를 향해 전진했다. 그 뒤론 ‘경고방송’ 차가 따르며 시끄럽게 해산경고를 날렸다.
 
▲ 양곤시 한 유명 파고다 앞에서 시위를 준비 중인 스님과 시민들.     © Htein Win(BMC소속)

마이크 목소리는 사무적이지만 근엄했다. 버마어로 존칭을 사용했다. 이를 테면 “여러분들,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계속 모여 있으면 십분 뒤 발포할 것입니다.”

군중들은 혼비백산하면서도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에 참여한 한 남자는 전통 의상인 론지(둘둘 말아 치마처럼 입는 옷)을 들어올려 진압군에게 보름달 모양을 만들어 분노를 표시했다.

슐레파고다 인근 첫 사망자

하지만 시위대는 군경에 밀리고 또 밀리고를 거듭했다. 오후 늦게 파고다 동쪽 거리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그 때는 시위대를 따르던 기자들도 없던 때였다.

버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정말 끔찍하다. 현재 버마에 외신기자는 소수. 시민들은 자기들의 소식을 외국에 알려달라며 적극 보도에 협조하고 있다.
 
▲ 시위대.     © Htein Win(BMC소속)

뭬캬칸파고다의 한 젊은 스님은 기자에게 “유엔군을 보내달라고 꼭 전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꼭 그들에게 우리 소식을 전하고 우릴 구하기 위해 평화군을 보내주세요.”

한편, 버마 군부가 대규모 시위와 폭력진압 사실이 국외로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인터넷과 휴대폰의 보급으로 잘 먹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인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망명 언론 미지마뉴스가 26일 보도했다.

하지만 군부는 26일 오후 6시를 기해 국내의 일부 인터넷사이트와 블로그를 강제 폐쇄했다고 밝혔다. 버마 국내 소식이 외부로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폐쇄된 사이트는 kohtike.blogspot.com, niknayman.blogspot.com, soneseyar.blogspot.com 등이다. 국내 시위소식을 주로 다루던 곳이다.

인터넷·휴대폰 등 모든 정보차단

닉네이만 블로그 운영자는 언론과 대담에서 “포현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노골적인 기본권 침해”라며 “버마군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폐쇄된 사이트에 접속하면 ‘접속 차단’이란 단어만 뜬다.

▲ 시위대를 이끄는 스님들.     © Htein Win(BMC소속)

버마 군부는 역시 유투브 접속도 차단했다. 아울러 정치인들, 버마 내에 있는 내외신 기자들, 그리고 88세대 학생운동 지도자의 모바일폰과 국외전화선을 모두 차단한 상태다.

국영 통신사인 MPT, 바간사이버텍도 인터넷사이트와 블로그서비스도 모두 폐쇄됐다. 버마 안팎에서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 닉네이만은 정부가 비록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차단해도 독자들은 프록시서버를 통해 웹과 블로그에 접근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미지마뉴스는 또 버마 군부의 최고 실세 독재자인 탄쉐의 가족이 망명중이라는 소문이 버마에 퍼지고 있다고 27일 전했다. 이같은 소문은 탄쉐가 특허낸 ‘에어바간’ 비행기가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목격되고 부터라고 이 언론은 덧붙였다.

탄쉐 가족 이미 라오스 피신 소문

이 특별기는 지난 27일 오후 6시쯤 비엔티안 공항에서 8명의 승객을 내렸다고 목격자는 전했다. 이 특별기는 탄쉐의 오른팔격 대기업인 테이자 소유다. 버마 군부 실세와 밀접한 한 소식통은 이날 비엔티안 공항에서 목격된 이들은 탄쉐의 부인 다우 키아잉 키아잉을 포함한 가족들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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