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시위 외치며 헌법 무시하는 경찰

8개 지정지역서만 집회허용키로, 헌법 집회·표현기본권 침해

이영일 | 기사입력 2008/11/04 [13:58]

준법시위 외치며 헌법 무시하는 경찰

8개 지정지역서만 집회허용키로, 헌법 집회·표현기본권 침해

이영일 | 입력 : 2008/11/04 [13:58]
경찰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여의도 문화마당을 비롯, 전국 8개 지역을 ‘평화시위구역’으로 지정하고 준법시위를 한다고 약속할 경우만 간이화장실 설치와 현수막 거치대등을 지원하고 언론 취재 협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이는 지난 9월 25일, 국가경쟁력강화 제7차 회의에서 논의된 ‘집회시위 선진화 방안’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조치인데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긴 커녕 우리가 오랜 기간을 거쳐 구축해 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 헌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민주주의 구현의 핵심 가치로 다른 기본권보다 중요하게 보호되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또 우월적 위치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회를 국가가 사전 검열하여 승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집회허가제 금지원칙을 명시하고 있는데 현행법상 경찰에 집회를 신고하는 것은 공중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하기 위한 정보 전달의 목적이지 경찰이 집회를 승인하거나 금지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런데도 경찰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 빈번히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평화시위구역내에서 준법시위를 약속하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집회 성격이 정부 권력의 입맛에 맞는지 아닌지 미리 재단하고 집회시위의 장소를 통제함은 물론, 조건을 들어 집회시위의 서비스 제공을 선별해 입맛에 들지 않는 집회를 차별하겠다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평화시위구역이 아닌 곳에서 개최되는 집회는 모두 폭력, 불법 집회라는 인상을 줄 여지도 높고 경찰의 집회 불허 남발을 가져올 소지도 있다. 결국 장소와 성격에 따라 집회의 개최 여부가 경찰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이 조치는 정부가 준법을 강조하면서 되려 헌법을 무시하는 위헌적 조치이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국제적 망신거리가 아닐 수 없다.
 
평화시위구역 선정 기준조차도 일관성과 현실성이 떨어진다. 경찰은 교통혼잡을 피하기 위해 도심지 외곽에 이 구역을 선정하겠다고 했지만(도심지건 외곽이건 선정 자체도 비상식적이지만) 이번에 지정된 8개곳중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은 교통입지상 종로와 연결돼 대학로가 막히면 종로는 물론 을지로, 광화문 일대까지 큰 여파를 주는 주요 도심지로 경찰의 선정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게다가 정부와 경찰의 손발 안맞는 행정편의적 조치라는 문제도 존재한다.
 
대학로는 1985년 서울시가 젊음의 거리로 명명하고 이어 정부가 2004년에 문화지구로 지정한 문화예술 육성 특별지역으로, 평소에는 물론 주말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시민, 청소년들이 발디딜틈 없이 찾는 서울의 대표적 명소인데 이를 경찰이 시위지구로 지정하는 것은 정부의 문화지구 육성정책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몰이해에 따른 국제적 명소 대학로의 황폐화를 불러 올 소지가 높다.
 
연극인들뿐 아니라 PD, 작가, 무대예술가,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서울흥사단 등 직종과 단체 성격을 불문하고 이를 각각 반대하고 나선 것은, 평화시위구역 선정이 정부 권력에 반하는 집단의 집회시위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다분하다는 점, 오히려 집회시위를 특정지역에 편중시킴으로서 발생할 역효과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부재하다는 점, 구역 선정에 대한 기준 미비와 현실성이 맞지 않음은 물론 다분한 위헌 소지로 집회측은 물론 관련 국민 모두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집회의 현장이 폭력으로 일관되고 건강하지 못한 수단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은 국민 누구나가 동의하는 본질이다. 하지만 정부 권력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반하는 집단의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시위 근절을 표방하며 그 뒤에서 집회와 시위의 근원적 자유와 권리를 마치 경찰이 조율하여 흔들 수 있는 사회질서의 일개 하위 가치인양 착각하여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중대한 민주주의의 파괴행위로서 간과되서는 안된다.
 
정부나 경찰이나 법을 알고 집행한다는 곳에서 헌법 알길 이렇게 우습게 아는데 어떻게 국민을 섬긴다는 것인지, 정말로 집회 현장에서 국민을 보호하고 존중하려는 의중을 가지고 있는지는 자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은 후 한겨레전문필진, 동아일보e포터,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과 2019년 "일본의 학교는 어떻게 지역과 협력할까"를 출간했고 오마이뉴스 등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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