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부끄러움만으로는 부족한 법이거늘...

중국시민 | 기사입력 2017/01/29 [11:04]

무릇 부끄러움만으로는 부족한 법이거늘...

중국시민 | 입력 : 2017/01/29 [11:04]

 

▲ 한일위안부 합의에 찬성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게 기자들이 왜 그랬냐고 질문하자. 그는 기자들에게 나쁜 놈들이라는 원색적 단어로 감정적 비난을 터트렸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한지 반달도 지나지 않아 인기가 많이 떨어졌다. 요즘 며칠은 대외활동이 적어 “1일1사고”법칙이 깨졌지만 언행이 싸늘한 반향들을 불러오곤 한다. 특히 변명과 해석들은 조소들을 자아낸다. 기자들을 “나쁜 놈들”이라고 말한 걸 시차부적응 탓으로 돌렸는데, 외교관과 유엔 경력이 자랑거리인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변명이라는 풍자를 받았고, “기름장어는 좋은 뜻에서 나온 별명”이라는 해석이 낳은 누리꾼들의 싸늘한 반향들도 그 자신과 지지자들의 기대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의 매끄러움을 굉장한 자산이자 자랑거리로 삼는데 귀국 후 전혀 매끄럽지 못하게 처사해서 “기름장어”라는 별명값을 못하는데, 글쎄 이제 시차극복을 완성하고 한국사정에 적응되면 다시 굉장히 매끄럽게 처사할 수 있다 치더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하겠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반 전 총장은 난감한 질문에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하여 기자들이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붙였다 주장했고 또 매끄러운 사람의 사례로 한스-디트리히 겐셔 전 독일 외무장관을 거들었다. 겐셔에 대해서는 필자가 잘 모르는데, 기자들의 까다로운 질문을 잘 응대하여 매끄럽다고 소문난 정객으로는 헨리 키신저가 꼽힌다는 자료를 본 적 있다. 기자들이 키신저와 몇 시간 함께 보내면 많은 말을 주고 받아 즐거운 기분이 되는데 정작 기사를 쓰자고 보면 쓸 게 없더란다. 키신저가 알맹이 정보들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기자들을 얼려넘긴 것이다.

 

그런데 키신저가 까다로운 질문에 쉬이 넘어가지 않는 따위 매끄러운 면만 갖췄더라면 그저 그러루한 인물에 그쳤을 것이다. 큰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언론인들을 속이는 한편 어루만지는 것이 기술이라면 그런 기술을 배우는 게 썩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한국어를 가르쳐준다면서 미성년자를 추행한 그따위 저질 외교관들을 내놓고는 엔간한 외교관들은 매끄러운 발언법을 기본으로 배우고 또 활용하는 터이다.

 

▲ 이 사진은 2016년 12월 2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노회한 정객 헨리 키씬저를 만나 환담하는 장면이다. 그 날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고 뉴욕으로 돌아온 키씬저는 2016년 12월 6일 뉴욕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만났다. 반중정서를 가진 트럼프와 분리독립의사를 가진 차이잉원의 등장으로 미중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하였음을 감지한 키씬저가 우려하는 것처럼, 최근 미중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그 두 나라가 지난 37년 동안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정책이 훼손되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허나 키신저의 진가는 그의 안목에 있었다. 굵직굵직한 대사건들에서 보인 활약상이야 널리 알려진 바이니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다. 이 글에서는 중국에서 나온 이야기를 소개하련다.
 
2015년 3월 6일, 미국의 유명한 중국문제 전문가 한 사람이 신문에 《The Coming Chinese Crackup》이라는 제목의 장문을 발표하여 중국공산당과 중국의 붕괴를 예언했다. 중국에 와서 유학했고 중국어도 능통하며 중국을 잘 아는 사람이 급작스레 그런 주장을 편 건 괴상한 현상이었다. 그와 만난 적 있는 중국의 한 전문가가 기사를 본 첫 반응인즉,  이 사람의 머리가 잘못되지 않았는가였다.

 

얼마 후 마침 93세 고령의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하였는데 3월 17일에 시진핑 주석이 그를 접견한 건 보도된 바이고 공식보도들은 다 듣기 좋은 소리들이었다. 예전부터 키신저의 활동들은 대개 뒷날 알려진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다. 그번 방문에서 중국국제전략협회 부회장 궁셴푸(龚显福)가 키신저에게 물었다 한다. 지금 웬일이냐고, 미국인들이 또 중국붕괴론을 떠드느냐고.
 
키신저는 그 일을 모른다더니, 중국인들에게 당신들은 모두 중국의 대학자들이다, 미국의 타블로이드를 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런 신문들은 광고로 돈을 벌기 위해 부실기사들을 싣는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큰 신문에 실린 꽤나 유명한 인물의 글임을 알게 된 키신저는 어리둥절해났으나 그것도 잠깐이었을 뿐 잠깐 뒤에 한 마디 던졌다.
그 사람은 국무차관이 되려는 것이라고.
 
현장에 있던 중국인들은 크게 깨달았다. 그 미국전문가는 학술문제를 다룬 게 아니라 정치문제로 변질시켰던 것이다. 2016년 미국대선을 앞두고 이제 2017년에 누가 백악관에 들어갈지 미국 학자들은 분분히 짐작하면서 특정세력의 구미에 맞추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다.

 

키신저는 계속하여 그 사람은 국무차관으로 되지 못한다, 그 자신은 모르지만 금년 연말 전에는 그가 알게 될 것이다. 때문에 당신들은 거기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 연말 전으로 그의 견해가 바뀔 테니까.
키신저의 예언은 앞당겨 적중했으니, 7월 1일 같은 신문이 같은 전문가의 다른 장문을 발표했는데, 어떻게 굴기하는 중국과 거래하느냐는 내용이었다. 대학교수가 정계진출 욕심이 꺾이니 학술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키신저의 날카로운 안목이 아니었더라면 중국의 전문가들은 미국 전문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약 누군가 반박하는 글을 써서 중국의 큰 신문에 발표했더라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키신저는 중국에 올 때마다 파격적인 환영을 받는데, 중미 관계 정상화를 실현시킨 관건적인 인물이었다는 옛 경력을 내놓고, 위와 같이 특유한 안목과 판단력으로 중국인들에게 감탄을 동반하는 결론을 내려주고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가치 있는 주장들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직위만 따진다면 키신저는 고작 미국 국무장관을 했는데, 수십 년 동안 국무장관을 해본 사람들은 많아도 중국에서 키신저 같은 대접을 받는 사람은 없다. 키신저가 미국 태생이 아니어서 미국 대통령 경선에 나갈 자격이 없고, 미국 국적을 가졌기에 유엔사무총장이 될 수 없었을 뿐, 실제로 대통령이나 사무총장을 잘 할 능력은 충분히 갖춘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그 점을 잘 알기에 그를 존중하고, 또 그와의 접촉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참고할 게 많으므로 그와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온다.

 

최근에 키신저가 트럼프에게 “하나의 중국원칙”을 꼭 지킬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했다는 기사가 한국에서 나왔던데, 1972년에 “하나의 중국원칙”을 상하이공보에서 확인하였던 인물이 그렇게 주장했겠냐는 의문이 들긴 한다만, 만에 하나 키신저가 미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주장했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치란 냉혹하니까. 그런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중국의 정치가들이나 전문가들이 “중국인민의 옛 친구”로 불리던 키신저가 어쩌면 그렇게 변했느냐고 울상할 리가 없다. 미국과의 관계를 놓고 오랜 세월 연구, 준비해왔고 갖가지 변수에 대비해온 중국이니 말이다.

 

중국에서의 키신저 이미지 및 파격적인 대우를 생각해보면 유감스러운 게 중한수교 20여 년 동안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은 한국 정치인이 너무나도 적다는 점이다. 없은 건 아니다. 일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쟝저민 주석을 비롯한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중국에서 웃음거리로 되었다. 반기문 전 총장의 경우 한국 외무장관으로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중국인들과 많이 만났으나, 중국인들은 그 직무를 보고 존중했을 뿐이라고 보인다. 인간적으로 존경했거나 안목과 능력에 탄복했다는 기록은 고사하고 소문조차 들은 적 없다.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을 정치인이 한국에서 이제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현역 정치인들 중에 아직 지위는 높지 않으나 나름대로의 철학과 안목, 그리고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조금 보인다. 이제 어떻게 커지겠느냐가 관건이다. 필자야 눈여겨보는 정도에 그치지만, 한국인들로서는 투표로 현명한 결정을 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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