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 편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칼럼] 최방식 본지 편집인

최방식(본지 편집인) | 기사입력 2007/01/12 [11:01]

깡패 편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칼럼] 최방식 본지 편집인

최방식(본지 편집인) | 입력 : 2007/01/12 [11:01]
▲최방식 본지 편집인.  ©인터넷저널
 정초인 2일 미국 동부시간으로 오전 9시 10분. 뉴욕의 중심도시인 맨해튼의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앞. 한 노 신사가 수행원들과 함께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곧 유엔본부에 들어섰고, 도열한 직원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유엔 평화유지 활동을 하다 순직한 영혼을 기리는 기념탑 앞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그리고 2층 안전보장이사회 앞 기자회견장에서 짤막한 연설을 한 뒤 한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의 사형집행에 대한 정당성을 묻는 것이었다.

 노 신사는 이렇게 말했다. “후세인은 이라크인에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있죠. 우리는 그가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형은 각 국의 법에 따라 결정할 문제겠죠.”

 다름 아닌 반기문씨.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사무총장(제 8대)이 돼 첫 출근하는 길이었다. 반씨의 이날 발언은 국제사회의 여론과 입장을 벗어난 것이어서 충격을 줬다. 코피 아난 총장이 이끌던 유엔은 그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게다가 사형이라는 반인륜적 극형을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구설수

 반 사무총장의 이날 후세인 처형에 대한 발언은 미국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었다. 영국을 포함해 유럽 대부분의 나라와 아랍권, 그리고 제3세계가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고 있고, 이미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이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유엔의 신임 사무총장이 이런 발언을 쏟아낸 건 정말 놀랄만한 것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사형은 반인륜적 극형이다. 따라서 유엔에 소속된 200여개 나라 중 2/3가 폐지한 상태고 미국, 중국 등 60여개 나라만 존속시키고 있다. 한국도 존속시키고 있지만 폐지여론이 날로 커가고 있으며, 6년여를 넘게 집행을 안 하는 상태다. 특히 국제 시민사회의 인권기구와 단체들은 이 제도의 폐지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유엔 역시 사형제 폐지를 각국에 요구하고 있다.

 아시라프 카지 유엔 이라크 특사는 지난 주말 후세인의 사형집행을 반대한다며 이렇게 발표했었다. “유엔은 죄를 짓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에 확고히 반대하고 정의를 향한 열망도 이해하지만, 전쟁이나 반인륜 범죄일지라도 사형이라는 극형에는 여전히 반대합니다.”

 그런데 사무총장이 첫 출근일 사형에 대해 국가별로 법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아무렇지도 한은 듯 한 발언을 했으니 탈이 안날 수가 있겠는가. 반 총장의 첫 출근 기자회견은 이날 정오 미셸 몽타스 신임 유엔 대변인의 정오 브리핑에서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외신기자들이 반 총장의 발언을 추궁하고 나선 것. 유엔의 사형제 폐지 입장이 달라진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몽타스 대변인은 "사무총장은 먼저 후세인에 의한 희생자와 정의에 대한 존중을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한 것"이라며 “그의 발언이 사형에 관한 유엔의 입장 변화가 아니라 후세인 사형집행에 관한 원칙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유엔은 사형에 찬성하지 않는다"며 "사무총장은 법 적용 여부를 각국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사형집행에 찬성한다고?

 이를 두고 국내 언론들은 반 신임 사무총장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고 평가했다. 그러며 반 총장의 말실수라고 언급했다. 그렇다. 말실수 맞다. 한데 진짜 중요한 사실은 그 실수가 반 총장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이다.

 구설수로 입방아 한번 찧는 거야 뭐 그리 큰 문제이겠나. 다수인 약소국과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유엔 사무총장이 강대국, 그 것도 ‘지구촌 골목대장’을 자처하는 미국의 이해만 반영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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