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웃음은 보며 국민눈물은 못보네”

[포토에세이] 주권수호와 권력참회 시국법회 2만5천여명 참여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8/07/05 [16:29]

“부시웃음은 보며 국민눈물은 못보네”

[포토에세이] 주권수호와 권력참회 시국법회 2만5천여명 참여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8/07/05 [16:29]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불교환경연대 등 불교 시민사회단체와 사찰이 참여하는 불교시국법회 추진위원회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를 여는 날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포도주를 한 병 사들고 아는 사무실에 놀러갔습니다. 막 와인을 한 잔 따르는 데 문자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툇마루로 5시까지 오시오.’

효림 스님입니다. 그럴 줄이야 알았지만 집회준비에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문자까지 보내왔으니 얼른 가봐야 합니다. 부랴부랴 인사동에 있는 음식점에 도착하니 아는 분 두엇과 저녁을 들고 계십니다. 김규철 바보새 사장과 공광규 시인입니다. 맛 좋은 된장에 밥을 비벼먹으며 막걸리를 한 잔 드는데 스님이 가자십니다.

오늘 운이 영 없는 모양입니다. 포도주를 사놓고 채 한잔도 덜 마셨는데 불려나오지를 않나, 인사동에서 된장 맛이 가장 좋다는 데서 막걸리 한 잔 마시려는 데 나가자고 하지를 않나, 심상찮은 날입니다. 그러고 보니 후배 기자가 저녁 6시에 광화문 어딘가에서 만나자고 한 날도 오늘입니다.
 
▲ 효림 스님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농성장을 찾아 전종 훈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맨 앞 오른쪽엔 문규현 신부, 맨 뒤 쪽엔 김용철 변호사도 보입니다.     © 최방식 기자
▲ 한 집회 참가자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피켓을 들었습니다. 폭력으로 실정을 덮으려는 MB정권의 꼼수를 질타하는 소립니다.     © 최방식 기자
 
“툇마루로 5시까지 오시오”

스님은 집회에 참여해야 하는데, 일찍 가려는 모양입니다. 매정하게 우리만 남아 여흥을 즐길 수도 없으니 딴 길이 없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인사동에서 시청을 가려면 택시를 탔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하지 않습니다. 걸어서 가는 게 가장 빠르거든요. 집회시간을 전후해서는요.

날씨는 또 왜 이리 더운지 모르겠습니다. 땀이 줄줄 흐릅니다. 기온이 높다기보단 습도가 굉장한 모양입니다. 30여분을 걸어 시청 앞에 도착하니 아직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집회 준비팀은 벌써 현장 분위기를 끌어올리느라 무대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편 농성텐트로 가니 5~6개 단체의 텐트가 보입니다. 맨 먼저 진보신당 텐트를 지나는 데 심상정, 노회찬 의원, 그리고 조승수 전 의원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점잖게 앉아 농성 중입니다. 우린 반가운 마음에 한 분 한 분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죠.

그 옆으로 가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농성장입니다. 스님은 전종훈 대표신부가 가장 친했는지 그리로 먼저 달려가 안부를 나눕니다. 전 카메라를 꺼냈고요. 문규현 신부, 김인국 총무 신부, 그리고 김용철 변호사도 보입니다.

▲ 불자들이 먼저 나와 연등 촛불을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종교편향,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을 각성을 촉구하면서요.     © 최방식 기자

▲ 스님들이 유례없을 정도로 대중 집회에 참여했다고 하는군요.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것입니다.     © 최방식 기자

정의구현사제단의 최근 노력으로 촛불집회가 다시 성황을 띄고 있어서 그런지 신부들 농성텐트 앞이 꽤 붐빕니다. 많은 이들이 디카나 휴대전화를 꺼내 농성 중인 신부들을 담고 있고요. 20여분이 지났을까요. 벌써 광장이 사람들로 들어차기 시작합니다.

인사동-시청 걷는 게 빨라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많은 불자들이 먼저 나와 연꽃 촛불을 만들고 있습니다. 성급하신 스님들은 벌써부터 광장 한쪽에 자리하고 앉았습니다. 사람이 많다보니 일행을 그만 놓쳐 버렸습니다. 군중 속에선 전화도 소용없습니다. 소리, 진동 어느 것으로도 안 됩니다.

막걸리를 한 잔 해서 그런지 화장실이 그립습니다. 군중속에 묻히면 낭패라는 생각에 지하도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다시 광장으로 오르는데 애초 만나기로 약속돼 있던 후배 녀석이 광화문우체국 앞으로 오랍니다. 야, 이거 곤혹스럽습니다. 날씨는 더운데 또 광화문으로 걸어가야 한다니.

셔츠가 후줄근하게 젖어오는 데 저만큼 후배 녀석이 보입니다. 안색을 보니 저녁을 안 먹은 모양입니다. 분명 술도 사달라고 할 태셉니다. 어쩝니까, 이 핑계대고 놓친 술타령을 해야지요. 교보 옆 피맛골 어딘가 생맥주집에서 두어 잔을 마셨습니다. 한데, 인석이 시청으로 가잡니다.

▲ 광장에는 어디를 가나 촛불소녀가 가장 인깁니다. 집회장 한켠에서 '촛불소녀' 문양들든 청소년들입니다.     © 최방식 기자

▲ 정권참회 시국법회에는 불교계가 만든 대형 촛불소녀가 등장했습니다.     © 최방식 기자

시청에 도착하니 108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회개를 촉구하며 1배, 경찰의 폭력 중단을 호소하면 1배... 좀 늦게 왔는데, 곁에 아는 사람이 있어 물으니 청화 스님이 연단에서 재미난 말씀을 하셨답니다. 조계종 교육원장이십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눈을 감았거나 대통령이라는 콩깍지가 씌어 한쪽 눈을 실명한 모양입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보면서 광우병은 보지 못하고, 부시의 웃음은 보면서 국민의 눈물은 보지 못하고, 촛불의 허물은 면서 자신의 잘못은 못 보는 모양입니다.”

108배를 마치고 이제 막 가두행진을 시작하려는 찰납니다. 잘 살펴보니 효림 스님도 맨 앞줄에 서있군요.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현 공동의장인 법안 스님과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 곁에는 문규현 신부도 법등을 들고 행진을 시작하려고 채비를 차리는 군요.

“MB, 제허물은 못 보는 모양”

이날 집회에는 2만5천여명이 참여했습니다. 상당수는 불자들입니다. 조계종에서 행진해와 집회에 참여한 스님만도 공식적으로 1천여명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들이 이렇게 많이 산문밖 행사에 참여한 건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를 빼곤 처음이랍니다.

▲ 시국법회에 참석하려고 조계사에서 행진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들어서는 비구니 스님들입니다. 아직 앳띤 스님도 보이는 군요.     © 최방식 기자

▲ 시국법회에 참여한 비구니 중에는 벽안의 스님도 계십니다. 분명 기독교 국가에서 왔을텐데 저 스님 눈에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궁금합니다.     © 최방식 기자

요즘 불교계가 단단히 화가 났다고 하잖습니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종교편향 이야기가 회자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자신이 교회 장로라는 이유로 세속의 정권을 종교적으로 끌고 가려 하니 질타가 나올 밖에요. 그것도 문제의 고소영 기독교인들로만.

청와대 경호처장의 구설수, 어청수 경찰청장의 기도회 행사포스터 사진논란, 추부길 비서관의 사탄발언, 고소영 내각과 비서진, 그리고 국토해양부의 대중교통 이용정보시스템인 '알고가'의 사찰정보 누락, 경기여고의 불교 근대문화재 훼손 등이 그 것이죠.

긴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집회가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2만여명의 참여자들은 맨 앞 촛불소녀와 그 뒤의 1천여명 스님을 따라 숭례문을 돌아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불교계 지도부는 밤샘 농성에 들어갈 것이고 참여 시민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흩어질 것입니다.

기자는 좀 일찍 집회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 바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왠지 그러고 싶더군요. 광화문역까지 걸었습니다. 시청광장이 참 첩첩산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투경찰과 그들의 버스로 얼마나 겹겹이 쌓여있는지 말이죠.
 
▲ 시국법회에서 108배를 마치며 기도하는 스님들입니다.     © 최방식 기자
▲ 법회에 108배를 마치고 숭례문을 향해 가두행진을 시작한 스님들.     © 최방식 기자

광장은 전경으로 첩첩산중

긴 길을 지나 광화문역에 도착하니 마침 세종문화회관에서 무슨 공연이 끝난 모양입니다. 곱게 정장들을 차려입은 관객들이 몰려나와 역사가 북새통입니다. 참 행복한 분들인 모양입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집회 끝나고 천천히 오는 건데 괜히 서둔 모양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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