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서구의 냉전을 몰아온 열정적인 지도자이자 근 1세기 가까이 11명의 미국 대총령들을 괴롭혔으며 1962년 핵전쟁의 위기를 몰아오기도 했던 쿠바혁명의 최고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90세를 일기로 25일 밤 10시29분 (현지 시간 금요일 밤) 서거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피델 카스트로가 서거했음을 쿠바공화국 텔레비젼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카스트로는 몇 년 동안 심각한 중병에 시달렸으며, 2006년 그가 이끌었던 쿠바공산혁명을 계속 지속하기 위해 올 해 85세인 자신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 루쓰를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2년 후 공식적으로 쿠바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피델 카스트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제외하고 여타의 모든 국가 지도자들 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다. 카스트로는 인구 1,100 만명에 달하는 카리브해 섬나라들의 지도자로서 기대를 모았는데 아마도 20세기 들어서 그 기대치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국제적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그는 1959년 1월 8일에 아바나에 입성하여 제국주의 꼭두각시이자 독재자인 풀루헨시오 바티스타 정부를 무너뜨리고 쿠바를 장악하였으며 무장해제를 한 자신의 추종자들인 수만 명의 바티스타 군인들 앞에서 처음으로 중대한 연설을 하여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 이하 생략 -----
카스트로는 1962년 10월 구 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할 결정을 하였으며 구 소련은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구 소련의 군함들은 핵미사일을 싣고 쿠바로 향하고 있었다. 이를 안 미국의 케네디정부는 즉시 쿠바 해안을 봉쇄하였다. 또 쿠바에 건설되고 있는 미사일 기지를 공습할 것을 미 군부 강격파들이 주장을 하였다. 이를 안 구 소련의 후루쇼프는 10월 26일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한다면 소련은 기지 건설을 포기할 것이다."라고 구 공식 발표를 하였다. 겁쟁이 구 소련의 후르쇼프는 미국 강경파들의 쿠바 미사일기지 건설장에 대한 공급을 하겠다는 주장에 무릎을 꿇고 1962년 10월 28일 " 쿠바 미사일 기지의 폐쇄와 소련 무기의 철수를 약속하고 미국 관리들이 기지 폐쇄 상황을 감시하도록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후루쇼프의 약속대로 쿠바기지 내 미사일 시설이 제거되었고 미국의 쿠바 해상 봉쇄도 해제되었다." 이로써 약 2주간 세계를 핵전쟁의 공포에 떨게 했던 쿠바사태를 막을 내렸다.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에 성공을 한 이후 오늘 날까지 미국과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극단적 대결을 이끌어 왔다.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은 코 앞의 코딱지 만한 작은 나라 그러나 강력한 적과 대치하면서 쿠바 붕괴를 목적으로 끈임없이 경제 및 군사적 봉쇄정책을 펴오고 있다. 하지만 쿠바는 오늘 날까지 무려 57년여 간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고 있다. 물론 그 사이 쿠바 인민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봉새로 인한 대외적 교류에 있어 심각한 장애를 겪어왔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지난 유엔총회에서까지도 세계 대부분의 유엔 성원국들은 쿠바봉쇄조치를 완전하게 풀라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기만적인 쿠바봉쇄책을 해소하였다고 하면서도 교묘하게 지금까지도 악랄하게 쿠바를 봉쇄해오고 있다.
이렇듯 20세기 중반부터 아르헨띠나 출신의 체 게바라와 함께 중남미 볼리바르 혁명의 선두에 서서 지도를 해온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까스뜨로 루쓰는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비록 그는 갔지만 쿠바 인민들은 그를 쿠바 혁명의 위대한 지도자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금요일에 서거한 전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의 명복을 빈다!!! 원본 기사 보기:자주시보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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