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울타리를 넘어 소통할 수 있을까?”

[몽골리포트] 몽골서 한국사람과 이렇게 빨리 부딪힐 줄이야...

윤경효 | 기사입력 2008/05/15 [11:36]

“내 울타리를 넘어 소통할 수 있을까?”

[몽골리포트] 몽골서 한국사람과 이렇게 빨리 부딪힐 줄이야...

윤경효 | 입력 : 2008/05/15 [11:36]
<지난호 이어> 1만원을 내는 회원 270명을 모으기 위해 애쓰는 서울의 활동가들이 눈앞에 서려 울컥하는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일단 260만원 정도로 합의했다. 바빠서 바양노르에 다시 내려갈 시간 없다며 한창 튕기던 업체사장이 5월 3일 내로 일을 마쳐준다며 기분 좋게 나갔다.

바양노르 조림장 물 문제를 해결할 대안만 있었어도, 조림 일정이 코앞에 닥치지만 않았어도, 내가 몽골 사정을 조금 더 알았더라도, 이리 당하지는 않을 텐데... 언젠가 되갚을 날이 있으리라 스스로를 달래며 이를 악물었다. 월간 회의를 위해 울란바타르에 올라 온 이재권 위원에게 사정이야기를 하고 함께 성불하자고 위로주를 마셨더랬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전의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 우물펌프업체에 추가비용에 대한 내역서가 필요하니, 보내달라고 하였는데 구두로 합의했으면 그냥 돈 보내주고 일해주면 되는 것이지,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며, 이럴 거면 설치 안한다고, 그냥 50만원 달라고 생떼를 쓴다.

“언젠가 되갚을 날이 있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참고 있는데, 나를 졸로 보나. 슬슬 오기가 나던 차에, 마침 이재권 위원과 다와 팀장이 바양노르솜 옆 동네 룽솜에서 우물공사를 하고 있던 몽골회사를 찾아냈다는 연락이 왔다. 5월 5일부터 우리 조림장에서  우물공사를 하고 우물펌프도 달아줄 수 있다고 한다.

▲ 조림장 비닐하우스 안에 잔칫상을 차렸다. 조림장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뱜바아저씨(오른쪽 사진)는 50여 마리의 가축을 키우는 중산층. 잔치를 위해 아저씨는 양 2마리를 바쳤다.     © 윤경효

▲ 감사의 선물(보드카와 초콜릿)을 받고 있는 이재권 위원. 이번 잔치를 위해 거금 30만원을 쓰셨다. 몽골사람이 다 되어버린 이재권 위원은 몽골어를 하지 못하는데 신기하게도 마을사람들과 곧잘 대화를 한다. 소통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던가...     © 윤경효

 
오호라~ 대안도 생겼고, 이제 덤터기를 씌우려는 한국업체의 우물펌프를 달지 않아도 될 명분도 생겼다. 이재권 위원은 그냥 출장비 30만원 주고 좋게 마무리하라고 하는데, 난 50만원은커녕 한 푼도 줄 수 없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이 그저 상황에 밀려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건데, 계속 생떼를 쓰니 나도 끝까지 잘잘못을 따져 시민단체 돈을 통째로 먹으려 한 죗값을 치르게 해 줄 테다.

지난 화요일 그 펌프업체 사장과 통화 후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잠잠한 것이, 예상컨대, 포기했던지 아니면 자기 말대로 손해배상청구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 손해배상청구소송 경험에 비추어볼 때, 업체가 청구소송에서 승소할 확률도 낮고, 소송 준비에 드는 비용이 더 비싸서 설마 하리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생떼를 쓰는 업체사장의 성향으로 볼 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리라.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차분히 대응만 하면 될 것이다.

“소통도 공유도 협력도 없다”

몽골에 와서 한국 사람과 이렇게 빨리 부딪히게 될 줄은 몰랐다. 교민신문을 보니, 한인상공회의소에서 한국대사관에 한국 사람들끼리의 분쟁이 몽골법정으로 가지 않도록 사전에 조정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그에 대한 대사관의 답변서가 실려 있다. 개인간의 다툼에 정부가 끼어들 수는 없으니, 제발 서로 속이지 말고 협력해서 잘 살아달라는 내용이다. 헐~

▲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몽골지부에 코이카 NGO 단원으로 있는 자정이가 바양노르 출장에 동참했다. 처음 보는 시골잔치라 모두들 신났다. 허르헉을 먹고 있는 구자정, 박은희, 세케(왼쪽부터).     © 윤경효

▲ 마을회관을 통째로 빌려 댄스파티를 열었다. 조명도 술도 없었지만 음악 하나로 사람들은 신나게 춤을 추며 장장 3시간 동안 즐겼다. 춤들을 어찌나 잘 추던지, 디스코, 왈츠 모두 척척이다. 왈츠 스텝이 힘들어 거절하려는데, 돌아가며 기어이 나를 가르치고야 만다... 움하하.     © 윤경효

 
참담하다.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것이 아니고, 경계를 해야 한다니. 좋은 일 하겠다고 온 시민단체나 선교단체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여기에 온 사람들에게서 ‘한국인’도 ‘세계인’의 모습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딛고 일어서려는 동물적인 개인만이 보일 뿐이다. 소통도, 공유도, 협력도 없다. 자신만의 울타리를 쳐 놓고 경계를 분명히 한다. 내 안의 울타리를 벗어나 보겠다고 온 이곳에서, 나는 과연 내 울타리를 넘어 소통할 수 있을까?

이래저래 머리가 무겁던 차에 이재권 위원이 바양노르 사업장에서 양 2마리를 잡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그동안의 노고를 풀어내는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사업장도 둘러볼 겸, 사무국 식구들과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바양노르에 내려갔다.

“오기가 몸 밖으로 풀려나간다”

한 달 동안 30명의 사람들이 38ha 규모의 땅에 울타리도 치고, 거친 사막식물 하르간도 뽑아내고, 1만8천개의 나무 심을 구덩이도 파냈다. 짧은 기간 거친 노동을 하는 것을 보고, 30명이 모두 젊은 장정인 줄 알았는데, 20명이 아낙이고 10명이 4~50대의 아저씨들이다. 헐~

▲ 바양노르 경찰관 2명이 안전(?)을 위해 찾아왔다. 왼쪽 흰 모자를 쓴 사람이 교통경찰, 가운데 베레모를 쓴 사람이 바양노르 파출소장. 아직 20대 총각들로 바양노르의 훈남들... 내가 본 몽골남자들 중에 젤 나았음... 저 활짝 웃고 있는 나의 미소를 보라...ㅋㅋ     © 윤경효


양 2마리를 통째로 삶은 허르헉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처음엔 긴장하여 말이 별로 없더니, 보드카에 얼큰하게 취한 뒤로는 여기저기 수다와 웃음으로 조림장 전체가 들썩인다. 잠시 조림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니, 사람들이 춤추러 가자며 옷깃을 잡아당긴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잠시 당황하였지만, 사람들의 순수한 눈을 보니, 내 마음도 순식간에 열린다.

말이 통하냐, 안 통하냐, 몽골사람이냐 한국사람이냐는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저 오늘 하루 즐겁게, 신나게 더불어 놀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성인들의 물음을 본다. 한판 신나게 노는데, 그런 것이 무에 대수인가... 그저 웃으면 그만인 것을... 이를 악물며 다졌던 오기가 내 마음 밖으로 풀려나가고 있다.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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