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국정화는 유신시대로 돌아가는 것”

경희대 교수 116명 5일 성명, "일본 역사왜곡 비판하는 정부가 어떻게.."

남재균 기자 | 기사입력 2015/10/05 [09:15]

“한국사 국정화는 유신시대로 돌아가는 것”

경희대 교수 116명 5일 성명, "일본 역사왜곡 비판하는 정부가 어떻게.."

남재균 기자 | 입력 : 2015/10/05 [09:15]
(시사코리아-남재균 기자) 경희대 교수 116명은 5일,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한국 정부가 검정제를 넘어 국정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고, 국정화는 유신시대로 회귀이며 21세기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경희대 교수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의사를 밝힌 이래 교육계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 목소리에 각 언론사도 힘을 보태고 있다. 특기할 점은 그동안 정부의 정책을 둘러싸고 대립적인 견해를 표명하던 언론사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의 각을 세웠던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 소위 진보언론과 그 반대편에 서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소위 보수언론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사회의 보편적인 이해와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교과서의 국정화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단체의 성명서에서 지적한 바 있다. 다양성과 자율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대의와 배치될 뿐 아니라 잦은 교과서의 변경으로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고, 행정이 교육을 규제 관리함으로써 사회의 각 분야가 전문성을 가지고 성장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 등이 지적되었다. 우리는 여기에 더하여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그동안 일본의 역사 왜곡에 반대해 왔던 한국 정부의 태도와 이율배반적인 시도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2016년부터 일본의 중학생들은 개정된 역사교과서를 통해 “일본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했다”는 내용을 배우게 된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한일 간의 화해와 협력, 동아시아의 평화와 연대를 깨뜨리는 개악이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교과서 발행과 관련하여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데 있다.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는데, 교과서 집필을 정부가 독점할 경우 왜곡의 정도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만일 일본 정부가 일본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하면, 과연 한국 정부는 찬성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남에게 들이대던 잣대는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교과서 집필에 정부의 개입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우리는 국정교과서가 시대를 퇴보시키는 시도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사를 국정으로 발행하기 시작한 때는 이른바 유신시대였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엄혹한 통제의 시기였고, 감시의 시기였다. 국민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이고 동원되어야 할 객체일 뿐이었다. 이런 국민에게서 창조성이 싹틀 틈은 없었다. 싹텄다 해도 그 싹은 국가가 그어놓은 선 안에서 발휘되는 창조성일 뿐이었다. 국민의 정부에 접어들어 교과서 발행제도가 검인정제로 바뀐 이유도 국정제의 이런 문제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접어들어 민주주의는 성장하고 있고, 사회는 다양해지고 있다. 창조성은 사회를 발전시킬 주요 동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현 정부가 자신의 목표로 창조경제를 내세운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검인정제를 넘어 교과서의 자유발행제를 검토하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이런 한국사회의 발전 방향에 배치되는 시대착오적 시도이다. 획일화된 교과서에서 자유로운 사고와 혁신적인 발상이 나오기는 어렵다. 국정교과서 발행은 한국사회를 다시 1970년대의 유신시대로 회귀시키려는 시도이다. 우리는 그 시도에 반대한다.


남재균 기자(news3866@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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