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버리고 금강의 눈으로 보라

현장리포트 봉국사(성남) 효림 스님 ‘금강경 읽기·강해’를 듣고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11/12 [17:35]

고정관념 버리고 금강의 눈으로 보라

현장리포트 봉국사(성남) 효림 스님 ‘금강경 읽기·강해’를 듣고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11/12 [17:35]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남한산성 아래 영장산(靈長山) 봉국사. 고려 헌종(1028년) 때 법현선사가 창건하고 조선 현종 때 명혜공주의 명복을 빌며 중창한 유서 깊은 산사에서 ‘금강경 강해’가 열리고 있다. 지난 4일 시작했는데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시작하며 5개월 동안 계속된다.

기자가 행사장을 찾은 때는 지난 11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남한산성을 넘어가다 보니 시간을 못 맞춰 좀 늦었는데 벌써 금강경 읽는 소리가 영장산 하나 가득 울려 퍼지고 있다. “만약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내가 다 하여금 무여(無餘) 열반(涅槃)에 들게 하여 멸도(滅度)하리라.”

경전 낭송소리 영장산 가득

심검당(법당)에서 열리는 줄 알았는데 앞마당 한 가운데 쳐놓은 큰 천막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어 옷깃을 여미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법상 위에 효림 스님이 않아 금강경을 낭송하고 있고 그 아래 맨 앞줄에 상좌 스님들이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1백여명의 불자와 수강생들이 단 아래 나란히 앉아 경을 따라 읽고 있다.
 
▲ 효림 스님의 금강경 강해에 모인 불자와 교육생들.     © 최방식
▲ 깊어가는 가을 정취속에서 봉국사에 열린 금강경 강해에 참여하려고 모인 100여명의 불자들.     © 최방식

1백여평이 조금 넘어 보이는 천막 안은 청아한 금강경 읽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한쪽 귀퉁이에 앉으려니 몇 분 아는 얼굴이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 온다. 등산복 차림이라 옆 사람에게 좀 미안하지만 배낭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으며 소란을 피우는데 바로 앞에 ‘빠박이’ 머리의 여성이 손짓을 한다.

무용가 안은미 선생이다. 온다는 얘긴 들었지만 벌써 자리잡고 앉아 금강경을 외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고즈넉하다. 호흡을 가다듬으려는 데 리플렛 한 장을 살짝 줘 읽어보니, 21일 성남아트센터 개관 2주년 기념 공연을 센터에서 하는 모양이다. 작품명은 ‘정원사’. 안은미 좋아하는 팬들 신나겠다.

40여분쯤 흘렀을까. 금강경 낭송을 그치고 효림 스님이 강의를 시작한다. 금강경 읽기운동의 개론쯤 된다고 볼 수 있다. 금강경의 유래, 번역서 갈래, 금강경 읽기의 의미를 지난주에 이어 2주째 하고 있단다. 다음 주부터는 금강경 내용 강해인 본론을 시작한다. 다음은 이날 효림 스님의 금강경 강해 내용 요약.

구마라습의 영롱한 금강경 전파

△효림 스님 강해 요약=금강은 요즘 말로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가장 값비싼 보석으로 지구상 물체 중 가장 단단하다. 맑고 투명한 유리질은 영롱한 빛을 발하여 황홀한 아름다움이 있다. 경전의 내용을 이처럼 금강보석에 비유한 것이 금강경이다.

금강경의 본 제목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경, 또는 금강경으로 불린다. 인도에서 전해온 원전을 당나라 현장삼장 등 여러 사람이 번역하였는데 그 중 구마라습(鳩摩羅什)의 번역본이 가장 널리 읽힌다.

구마라습은 인도 승려인 구마라염의 아들. 중국으로 들어가 경전을 번역전파하려고 가던 중 인도와 중국의 중간쯤에 있는 구자국의 국왕에게 붙잡혔다. 당시 고승들은 최첨단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각국에서 나라발전을 위해 탐을 내는 존재였다. 국왕은 그가 도망갈까 싶어 자신의 누이동생과 강제로 결혼시켜 버렸다. 그렇게 태어난 이가 구마라습이다.

남편이 국왕에게 잡혀있는 것을 안 부인 공주는 아들 구마라습을 7살 때 출가시켜 스님을 만들고 그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나라를 탈출해 고승을 찾고 공부를 계속 시킨다. 소승, 대승 불교를 두루 공부하고 구자국으로 돌아온다. 이를 안 진나라의 왕 부견은 여광이란 장수를 시켜 구마라습을 모셔오라 명한다.
 
▲ 내년 3월까지 5개월간 '금강경 읽기운동'을 시작한 효림 스님.     © 최방식
▲ 금강경 강해에 참여한 효림 스님의 상좌 스님들.     © 최방식

이렇게 여강을 따라 중국행 길에 오른 구마라습은 긴 여행 중 진나라가 망한 소문을 들었다. 부견의 나라가 망하고 아들 요흥(姚興)은 후진(요흥의 요자를 따 요진이라고도 불림)을 세우고 구마라습을 장안으로 모셔 극진한 대접을 한다. 역시 도망갈까 봐 딸과 강제로 결혼시킨다. 이렇게 구마라습은 중국에 안착해 금강경을 번역해 중국인들에게 전했다.

참 지혜와 깨달음을 찾아서...

반야는 지혜를 말한다. 바라밀(波羅密)은 도피안(到彼岸)으로 ‘저 언덕으로 간다’는 뜻. 수행해 도달해야 할 이상세계로 간다는 말이자 ‘절대 완전하다’는 의미. 육바라밀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般若)를 말한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 즉 반야는 번뇌가 끊어진 지혜인 것이다.

역대 고승들은 수많은 경전연구를 했는데, 그 중 번역본이 가장 많은 게 바로 금강경이다. 가장 유명한 것 5개를 일컬어 ‘금강경5가해’라고 한다. 다섯명의 스님의 주역서를 말하는데, 한국의 한 스님이 이를 통합편집했다.

첫 번째가 부대사 스님의 번역서이다. 수계를 받은 적이 없지만 경을 끊임없이 낭송해 깨달음을 얻은 이다. 두 번째가 규봉 스님. 강원의 교수로 교재편찬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야부. 대장장이인데 시 형태로 주석을 달았다. 그의 책은 가장 칭송받는 주역서 중 하나로 꼽힌다. 네 번째는 종경으로 가장 상세한 주석을 단 이로 유명하다.

금강경을 해석한 야부의 시 한 구절을 소개한다. 내가 참 좋아하는 시라서 나중에 기회되면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은 시구절만 들어보시기 바란다.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지만/ 티끌은 움직이지 않는다/ 달이 연못 바닥을 뚫고 들어가도/ 물속에는 흔적이 없다.”

다섯 번째가 한국 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육조 혜능 선사의 주역서다. 혜능은 나무꾼 출신으로 글자를 못 배웠다. 나무를 팔아 돈을 버는 인데, 하루는 시장에 나와 나무를 팔고 귀가하려는 데 여관방에서 스님이 읽는 금강경 낭송을 들었다. “응당 머무르지 않고 이 마음을 일으켜라”라는 구절. ‘집착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아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5조 홍인 선사를 찾아 공부를 시작했다.

▲ 금강경 강해가 열리는 성남 봉국사에 가을이 익어간다.     © 최방식

▲ 영장산 아래 자리한 성남 봉국사. 삼성각 뒤편 영장산 자락은 벌써 늦가을의 바람이 머물었다.     © 최방식


“집착하지 말라, 그럼 깨닫는다”

나도 스님이 되기 전 중학교 시절인데 바둑을 꽤 잘 두었다. 거창의 한 시골마을에 바둑 고수가 한명 있어 그에게 배웠는데 항상 하는 말이 ‘정석을 배웠으면 잊어버려라’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석에 집착하면 응용이 안 된다는 소리였던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냥꾼이 있어 숲속에서 숨죽여 짐승을 찾고 있는데, 한 번은 토끼 한 마리가 전력 질주해 달려오더니 한 나무 밑동에 부딪쳐 죽는 것이었다. 그걸 잘 요리해 먹은 그 사냥꾼은 매일 그 곳에 가 나무 밑동에 부딪혀 죽는 토끼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자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그렇다는 우화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어딘가에 가둬놓고 못 벗어나고 있다. 6조 혜능은 글도 모르는 무학에 행자신분으로 홍인 대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선종(한국 조계종의 뿌리, 선을 중시하는 종파)의 시조가 된 선사다. 그가 글씨도 모르며 금강경 주역서를 만들었는데, 이른바 ‘구결’(금강경구결)로 쉽고 간단해 최고의 주역서가 된 것이다.

인도에서 금강경을 쉽게 잘 해설한 분으로 많은 분들은 사상가 라즈니쉬를 꼽는다. 그는 “금강경 해설서를 먼저 읽지 말라”며 “그냥 금강경을 먼저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른바 주역서의 왜곡을 경계한 말이다. 나(효림)도 쉽고 편하게 금강경을 읽고 해설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금강경을 바로 읽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할 생각이다.

“이념·종교도 경전 안에선 하나”

나는 새롭게 금강경 읽기운동을 시작한다. 불교도 뿐 아니라 전국민, 지구촌 전 인류를 상대로 이 경전읽기 운동을 펼치려고 한다. 경전에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고 했다. 금강경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진리 아닌 것이 없다. 금강경 안에서는 기독교나 불교가 대립할 필요가 없고, 보수와 진보, 개혁과 수구가 갈등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하나이며 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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