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사상 첫 부부 대통령 탄생

키르치네르 현 대통령 부인 크리스티나 28일 대선 투표서 압승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11/01 [00:17]

아르헨티나, 사상 첫 부부 대통령 탄생

키르치네르 현 대통령 부인 크리스티나 28일 대선 투표서 압승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11/01 [00:17]
▲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당선자(오른쪽). 왼쪽은 현 대통령인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가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남편에 이어 부인이 선출직 대통령이 된 것 역시 세계 역사상 처음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제2의 에바 페론으로 불리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상원의원. 그녀는 지난 28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자의 45% 이상 지지를 얻어 23%를 얻은 라이벌 엘리사 까리오 전 하원의원을 제쳤다고 영국의 가디언지가 29일 보도했다. 재경장권 출신 로베르또 라바냐는 17%를 얻는 데 그쳤다.

크리스티나는 당선이 확정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겼다”며 “승리가 특권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가난, 실업, 그리고 아르헨티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과 싸워 새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중도좌파 집권 승리당 재집권

그녀는 선거기간 남편의 집권시절 경제정책을 신뢰한다고 밝혀왔다. 실제 남편이자 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2003년 취임할 때부터 2001년 경제 위기(900억달러 채무불이행)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과 실업률이 1/2로 줄었고 경제성장 역시 50%를 기록했다.

▲ 선거기간 중 크리스티나 지지자가 들고 있는 포스터.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채무불이행 사태에서도 IMF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 한국도 경험했듯이 IMF는 구조조정과 고금리를 주문했지만 거부하고 그는 소비촉진정책을 썼다. 그 결과 년 8%대의 고성장과 20%대의 실업률이 8%로 주는 대성공을 거뒀다.

크리스티나는 전직 변호사. 그녀는 남변이 주지사 시절부터 정치활동을 뒤에서 도왔으며 대통령이 된 뒤에는 자력으로 상원의원에 당선 돼 정치기반을 스스로 마련했다. ‘파타고니아의 표범’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특히 남편 키르치네르 대통령과 함께 중도 좌파의 성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정책도 중도 좌파에 맞는 콘텐츠들로 채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경제·외교 분야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실제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서방세계과 별로 친하지 않게 지내왔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접촉만 해온 데 비하면 크리스티나는 훨씬 적극적 외교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남편 ‘외환위기 극복’에 힘입어

그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키르치네르 대통령을 돕기 위해 수십억달러의 경제지원을 해왔다. 따라서 크리스티나 역시 우고 대통령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 당국과 관계개선도 노리고 있어 이 또한 어떻게 될지 관심을 끈다.

그녀의 당선이 확정 된 28일 밤 차베스 대통령은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했다고 베네수엘라 국영 ‘볼리바리안통신’이 전했다. “여성이 세상을 구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결과는 라틴아메리카 여성의 승리입니다.”

크리스티나 당선이 확정되자 그녀의 지지 세력은 전국에서 축제분위기를 연출했다. 선거캠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인터콘티넨털호텔 17층에서도 파티가 열렸다. 수도 빈민가인 바호 플로레스 지역에서도 밤늦도록 축제가 이어졌다.

크리스티나의 승리는 세계 역사에서 유례없는 선출직 대통령 부부당선을 낳았을 뿐 아니라 남편 키르치네르 대통령에게도 기쁨을 안겨줬다. 그는 집권기간 성공적인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재선이 거의 보장된 상태였지만 부인에게 그 자리를 양보한 것이었다.

이를 두고 키르치네르가 4년을 먼저 아내에게 양보한 뒤 대통령 자리를 다시 노릴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키르치네르 왕조’라고 공격하고 있다.

차베스 “라틴아 여성의 승리” 축하

▲ 지난 해 3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 이웃 나라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 바첼레뜨(오른쪽)와 함께. 왼쪽이 크리스티나 당선자. 
그녀의 당선을 환호하던 유권자 펠리페 마르티네스(39)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키르치네르가 크리스티나를 선택한 건 그녀가 더 좋은 대통령 감이었기 때문”이라며 “오늘 국민이 그녀에게 존경과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그녀가 약속했던 그 길로 쭉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르티네스는 이날 축하파티에 펭귄이 그려진 옷을 입고 나왔다. 펭귄은 파타고니아 출신인 이들 대통령 부부를 상징하는 문양. 실제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별명도 펭귄. 부부의 성공은 그래서 ‘펭귄의 행진’이라 할만하다.

쉰 넷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크리스티나는 에바 페론과 힐러리 클린턴과 비교되는 유명 정치인. 물론 힐러리 클린턴과는 다르게 그녀는 어렵지 않게 선거를 치렀다. 남편 덕에 고질적인 사회문제인 인플레이션, 범죄, 에너지 위기 등도 별 문제되지 않았다.

그녀의 당선은 경쟁자가 13명이나 출마한 덕도 있다. 집권 승리당 단일 후보로 나선 그녀는 선거전 여론조사에서도 45.7%의 지지율을 얻어 2위의 14.6%지지율과 큰 차이를 보였다. 결국 그녀는 경쟁자와의 정책토론 등도 거부하며 승리를 낚아챘다.

크리스티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힘 있는 여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웃 나라인 칠레의 미첼 바첼레뜨 대통령과 함께 말이다. 바첼레뜨 칠레 대통령 역시 지난해 이 나라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 취임했다.

‘제2 페론’·‘라틴의 힐러리’ 미래는...

당선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승리가 76년부터 7년간 이어졌던 독재에 반발한 유권자의 심판이라고 평가했다. “난 아무도 어떤 것도 말할 수 없었던 이 나라에서 서서히 커가고 있는 신세대의 일원입니다. 그래서 제 승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40년대부터 55년까지 사회주의자 후한 페론이 통치를 했다. 하지만 55년 군부쿠데타로 해외 망명길에 올랐고, 군부가 73년까지 통치를 했다. 하지만 페론은 73년 귀국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1년만에 사망한다. 그리고 부통령이 승계했지만 76년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 82년까지 가혹한 군정을 겪었다. 이 시기를 ‘더러운 전쟁’(레드 헌트, 사회주의자 처형)이라 부르며 3만명의 민주인사가 실종됐다. ‘5월광장의 어머니’도 그 유가족들이 구성한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아르헨티나엔 여성 대통령이 74년 딱 한 번 있었다. 후안 페론이 죽고 그의 2번째 부인이자 부통령이던 이사벨 페론이 그 직을 승계해 3년을 복무했다. 하지만 그녀도 쿠데타로 쫓겨났다.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기에 크리스티나는 선출된 여성 대통령으로 아르헨티나 역사상 처음이다.

위에서 말한 ‘에바 페론’은 후안 페론의 첫 번째 부인으로 52년 사망한 이를 말한다. 그녀가 바로 ‘페로니즘’을 일으켜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대중적) 바람을 일으킨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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