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예쁜 소녀 예술가가 범법자라고?"

6살꼬마 보도에 분필그림 그렸다고 경고, 지역언론 “전시행정”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10/23 [19:56]

"저 예쁜 소녀 예술가가 범법자라고?"

6살꼬마 보도에 분필그림 그렸다고 경고, 지역언론 “전시행정”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10/23 [19:56]
▲ 6살의 나탈리 시아는 뉴욕시로부터 협박편지를 한 통 받았다. 집앞 보도에 그린 분필그림을 빨리 지우라는 것이었다.     ©The Brooklyn Paper
여섯 살 꼬마소녀 나탈리 시아가 뉴욕시로부터 3백달러의 벌금형을 받게 생겼다. 보도 위에 분필로 예쁜 그림을 그렸다는 게 그 이유다. 이런 일이라면 지난 수십년간 또래들이 했던 일이다.

10번가에 사는 그녀의 모든 이웃이 그녀의 분필 그림을 좋아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한 이웃이 ‘311’(공중위생국)로 신고전화를 했고 당국은 곧 나탈리의 엄마인 젠 페퍼만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왔다고 ‘더 브르클린페이퍼’가 22일 보도했다.

누가 이 관료주의 말릴까?

뉴욕이 한 꼬마 소녀의 집 앞 보도 분필 낙서로 시끌벅적하다. 누군가 그녀의 분필놀이를 신고했고, 시 당국은 그녀에게 300달러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며 지우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지역언론들은 일제히 ‘어리석은 당국’, ‘행정 편의주의’라며 시를 비난하고 있다.

“당신 집의 낙서를 지우시기 바랍니다. 응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강한 제재가 뒤따를 겁니다.” 경고장 내용이다. 그렇다면 꼬마들의 분필 그림이 언제부터 ‘낙서’(범죄)가 됐을까?

자치의회가 2005년 ‘조례 111’을 통과시키고 부터다. 어떤 글씨, 단어, 이름, 수, 심벌, 슬로건, 메시지, 그림, 사진 등을 상업이나 주거용 건물에 그리거나 칠하거나 조각하거나 긁거나, 부식(에칭)하는 건 다 낙서에 해당된다.

나탈리 시아는 지금 꼬마 예술가가 아니라 낙서를 하고 다니는 범법자가 된 셈이다. 하지만 좀 문제가 있다. 조례에 따르면, 소유자가 원치 않는 지저분한 낙서일 경우만 거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나탈리의 경우는 그녀 집 계단 앞에 그렸고 집 소유자인 어머니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으니 그렇다.

어머니 페퍼만은 ‘더브루클린페이퍼’와 대담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며, 정말 웃기는 일이다”고 언급한 뒤, “물론 그녀의 그림이 다른 작품에 비해 멋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이런식으로 경고장을 보낸 건 협박”이라고 주장했다.
 
▲ 뉴욕시 지역언론 '더 브루클린페이퍼' 톱기사로 실린 나탈리 시아 사건.     © 인터넷저널


당국, “하여튼 낙서는 불법”

공중위생국의 캐시 도킨스 대변인은 이에 대해 언론과 대담에서 “낙서 제보가 있었다”며 “알다시피 시는 개인재산에 낙서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또 “그냥 경고편지”라며 “45일 안에 치우면 되며, 싫으면 시에 치워달라고 요청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응하지 않으면 60일 내에 치우라는 독촉장을 받고, 그 뒤 소환장을 발부받는다.

보도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건 비 한 번만 오면 다 씻겨 내려가는 건데 왜 그럴까? 도킨스는 “도구를 사용하든, 칠하든, 분필이든 상관치 않고 규제대상”이란다. 하지만 언론은 그녀의 말이 맞다면 돌차기 놀이(길거리에 스크래치를 하게 되므로)나 ‘거라지 세일’(집 정원 재활용품 판매) 안내종이를 붙이는 것도 누군가 311에 신고만 하면 범법행위로 규제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지역 언론에 실린 나탈리 시아 관련 보도. "어리석은 행정' 제목이 눈에 띈다.     ©인터넷저널
사실 분필예술가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쉽게 지워지는 도구를 사용한다. 뉴욕시의 유명한 보도 분필예술가인 엘리스 골래퍼는 수년간 길거리를 다니며 분필그림을 그렸지만 한 번도 처벌 받은 적이 없다.

유명 분필예술가 “어이없다”

이에 대해 골래퍼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가 인도에서 분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경찰이 다가 온다”며 “하지만 그들은 내가 분필로 그리는 것을 보고는 내가 갈 때까지 구경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조례111에도 불구하고 분필 그림은 불법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뉴욕경찰은 좀 애매한 입장이다. 경찰청 대변인은 “뉴욕 형법에 따르면, 공공·개인 자산에 손상을 끼칠 의도로 에칭·페인팅·덧입히기·그리기 하는 걸 낙서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도’와 ‘손상’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이렇게 덧붙였다. “물에 씻겨 나가는 것이면 낙서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것도 경범죄에 해당합니다. 만약 당신의 차를 겨자로 뒤집어씌운다면 낙서는 아니지만 합법도 아닙니다.”

페퍼만은 그녀의 딸이 시시한 범법자가 아니라 예쁜 예술가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탈리의 아버지인 조지 시아는 그의 딸라 그녀로부터 잘못된 가르침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내 딸 시아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말썽부리는 걸 원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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