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한국, 힘있는 한국

네티즌칼럼 "피랍자는 가족의 품으로, 해고자는 직장으로..."

이영일 | 기사입력 2007/08/02 [09:17]

힘없는 한국, 힘있는 한국

네티즌칼럼 "피랍자는 가족의 품으로, 해고자는 직장으로..."

이영일 | 입력 : 2007/08/02 [09:17]
잠을 청하는 것이 못내 미안한 마음이다. 열대야의 숨막히는 더위보다 더 뜨겁고 기진맥진하게 하는 전쟁속에서 비단 그것이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머나먼 타국 아프간에서 목숨이 백척간두에 놓인 피랍자들과 그들의 가족 생각만 하면 밥을 먹고 잠을 잔다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게 어쩌면 너무 과장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이 내 동생, 내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게다가 그에 못지 않게 생존권을 위협받으며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뭐만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쫓겨난 이랜드 비정규직 아줌마들의 생각까지 더하면 이게 왠 난리통인가 하는 자괴감에 정말 요즈음 하루하루가 참을 수 없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일이 이렇게되었을까 하는 마음에 국가가 그렇게 가지말라는 아프간에 마치 수학여행가듯 웃고 기념촬영까지 하며 심각한 내전의 땅에 겁도 없이 날아간 피랍자들과 그들을 사지의 땅에 봉사와 선교라는 미션을 내세워 죽음의 사선으로 내 몬 관련 재단과 해당 교회의 무사안일이 화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애초부터 미국의 힘에 눌려 차마 거부하지 못하는 심정으로 이라크와 아프간에 비전투병의 봉사 운운하며 군대를 파견했던 그 순간부터 이런 일은 예견되어 있었다.

고 김선일씨의 죽음, 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 잇따른 고 배형규 목사와 고 심성민씨의 목숨값을 치루었지만 사태의 해결에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힘의 한계를 확인하고 있는 이 자괴감과, 미국의 패권전쟁을 탓하면서도 다시 미국에 다시 그 힘을 발휘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는 100여년전 이미 도산 안창호가 예견했던 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확실한 것은 미국민 목숨은 사람 목숨이고 한국민 목숨은 파리 목숨도 아닐텐데, 자신들을 돕기 위해 38선을 중심으로 가공할만한 적대적 화력이 서로를 향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국가임에도 미국의 요청에 대해 군대를 파견한 피의 혈맹국 한국 민간인이 수십명이나 죽음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미국의 무성의한 태도에 화가 나지만 지금은 미국을 향해 화를 내기보다는 자존심 상하지만 너희들이 좀 나서서 힘을 좀 써 보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게라도 피랍자들이 살아돌아올 수 있다면 우리의 자존심이야 잠시 접어둘 수 있지 않은가.

이랜드의 부당 노동행위를 발본색원해 고소고발까지 하겠다던 정부가 힘없는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농성을 해산시키고 남의 일 바라보듯 하고 있는데,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 하는 탈레반이나 몇 푼이나 받는다고 그저 우둔하게 일하게만 해달라는 평범한 아줌마들을 상대로 힘있는 자의 권력을 휘두르려 하는 이랜드와 우리 정부나 도대체 뭐가 다른가.
 
힘있는 자 앞에선 맥없이 힘의 행사를 포기하거나 한계를 강조하면서 힘없는 자들에게는 가혹한 힘의 휘두름을 통해 정의를 논하려 드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한국이라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달려가고 있는 기관차가 맞기는 한 것일까. 어디서부터가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은 아닌가.

이 숨막히는 답답함이 어서 풀어져 피랍자들이 가족들의 품으로, 이랜드 노동자들이 그들의 정든 일터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은 후 한겨레전문필진, 동아일보e포터,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과 2019년 "일본의 학교는 어떻게 지역과 협력할까"를 출간했고 오마이뉴스 등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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