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범책임 한반도 분단으로”

인터뷰 갭하드 힐셔 수드도이치차이퉁 도쿄특파원 지난 9일 본지와

서문원 기자 | 기사입력 2007/06/22 [14:04]

“일본 전범책임 한반도 분단으로”

인터뷰 갭하드 힐셔 수드도이치차이퉁 도쿄특파원 지난 9일 본지와

서문원 기자 | 입력 : 2007/06/22 [14:04]
한반도의 분단책임이 미국 등 2차 대전 승전국들의 잘못된 거래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범국가인 독일과 일본이 그 책임을 져야하는데 독일은 그리된 반면 일본은 빠지고 한반도가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미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도 비슷한 성향의 정치세력이 집권하면 민주주의와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6·10항쟁 20주년을 기념해 주최한 '국제언론인 세미나'    © 인터넷저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6·10항쟁 20주년을 기념해 주최한 ‘국제언론인세미나-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체제’ 참석차 내한한 갭하드 힐셔 ‘극동아시아’(뮌헨) 도쿄특파원이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겝하드 힐셔씨는 지난 40년간 남독일신문(SZ, 수드도이치차이퉁) 도쿄특파원이었다. 인터뷰는 9일 오후 6시 프라자호텔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일본 땅으로 보고 분할점령"
 
▲ '극동아시아('뮌헨) 도쿄특파원인 갭하드 힐셔   © 인터넷저널
 -토론회에서 한반도 분단 책임에 대해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는데...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뒤 동서로 나뉜 것은 승전국들이 전범국가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책임이었죠. 전범 국가 일본은 그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국에게 떠넘긴 거죠.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승전국들이 참여한 카이로회담(1943년 11월)과 얄타회담(45년 2월)에서 그리됐습니다. 이들은 일본에 식민지 피해를 당했던 한반도를 일본 땅의 일부로 본겁니다. 결국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미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당시 맥아더 미점령군 사령관은 일본의 경우 일왕을 통해 간접통치 했지만, 한국의 경우 정부가 없다는 이유로 단순점령지로 직접통치를 했죠. 그 결과 전쟁의 가장 큰 피해국인 한국이 일본의 범죄를 뒤집어쓴 겁니다.

-1969년부터 2000년까지 남독일신문 도쿄특파원으로 40년 동안 근무하셨는데, 한국은 자주 방문하셨습니까?

△처음 아시아를 방문한 것은 1967년 독일 진보정치재단 ‘프리드리쉬 에버트 스티프퉁(이하 FES)’소속으로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거기서 저는 FES재단 동경지사를 설립했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박정희 정부가 FES한국지부창설을 허락했고 아시아에 있던 FES관계자들로부터 소개받아 한국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그게 한국과의 첫 인연이었죠.

그 뒤 독일과 일본을 오가며 재단업무도 보며 프리랜서기자로 활동했고, 얼마안가 남독일신문(SZ) 극동지역특파원으로 한국에 왔었습니다. 그때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번은 1970년 11월 김대중 후보 캠프를 찾아가기 위해, 한 번은 1971년 4월 한국대통령선거를 취재했었죠.

지난 40년 동안 일본에서 근무하며 40여 차례 한국방문을 했었죠. 참고 로 프리드리쉬 에버트 재단(Friedrich Ebert Stiftung)은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대통령이자 사민당 당수였던 프리드리쉬 에버트의 이름을 본떠 창립됐으며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해 독일노동연맹과 연계된 정치연구재단이다.

 “이 모든 게 한국의 수치”

 -군부독재시절 한국 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하면서 경험했던 사건이 많은 걸로 아는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요?

△1973년 도쿄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김대중씨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한국에서 휴가 중이었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김대중씨 자택으로 찾아간 기억이 납니다. 물론 주변경비가 삼엄해 만나지 못했지만 관련 자료와 정보를 수집해 독일신문에 보도했지요.
그때 한국을 방문한 저와 일본인 아내에게 숙소를 제공했던 김일주씨(한국농촌문화연구원)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24시간동안 심문을 받았어요. 중앙정보부는 그가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해 기사정보를 제공했다고 믿은 거죠.

또 하나는 ‘광주민주항쟁’입니다. 저는 5·18이 벌어진 직후인 5월 26일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차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말이죠. 그때 광주는 이루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총을 쐈다”고 우는 사람들, 같은 반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학생들의 이별 노래, 가족전원이 몰살당해 연고자가 없는 관들, 당시 한국 간호사가 제게 “이 모든 게 한국의 수치”라고 했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불행했던 역사와 민주화운동을 취재하고 독일인들에게 보도할 수 있는 기자가 된 겁니다.

-한국 민주화와 그리고 평화통일에 대해 견해를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모든 이들과 젊은이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부탁드립니다.

△6·10 민주화운동이 올 해로 20년을 맞았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노사문제, 계층간 갈등도 서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더 많은 다양성이 존재해야 제대로 된 민주화가 이뤄집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다양한 성향을 인정하려들지 않은데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잖아요? 민주주의는 기나긴 과도기를 요구합니다. 그 시기를 거쳐야만 모두가 원하는 민주화가 이뤄지겠죠.

바로 이것이 연결돼 북한과의 평화통일도 논의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6자회담은 ‘남북한통일협의체’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과도기입니다. 바로 이것을 조율하는 한국이 북한보다 당당하지 못한 정부를 갖게 되면 누가 당신들 말을 신뢰하겠습니까? 현재 외신기자들은 물론 유럽. 미국언론에 따르면 미 민주당이 집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특히 한국 민주화세력은 미 민주당과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합니다.

 “미 민주당과 협력 중요”

 -독일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은 각 지역 노동조합과 유대관계를 맺어왔고, 현 독일총리 안젤라 메어클은 환경정책에 대해 누구보다 더 앞장서서 추진했었죠? 만약 기민당이 한국에 정착한다면 좌파로 오해 받아 색깔논쟁에 휩싸이지 않을까요?

△그렇죠. 독일기민당도 어쩌면 한국에서 좌파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독일의 민주화와 통일방식이 한국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국인들의 힘으로 이뤄낼 역사지요.

-손은 언제 다치신 건가요? 연세가 많으실 텐데 건강은 어떠신지요?(힐셔씨는 오른손에 보조기구를 쓰고 있다.)

△올해로 71살입니다. 저는 태아 때부터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히틀러와 나치가 독일을 지배하던 시기죠.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 나치가 아리안민족의 우성인자만을 국민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장애아는 낙태되거나 살해되어 임상실험용으로 쓰였답니다. 부모님은 제가 단지 한쪽 손을 못 쓸 뿐이라고 당국에 보고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보호했었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얼마 전 보수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아 낙태발언’을 했던 사실이 생각나네요. 장애아는 불가피하게 낙태하는 게 낫다고 했는데요.

△정말 놀라운 이야깁니다. 독일과 유럽에 악명 높았던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아리안의 우성인자를 세계에 퍼뜨리자며 장애아들과 장애인들을 제거했던 암울한 역사이래, 처음 듣는 이상한 소식이군요. 정말 그가 대통령 후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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