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항쟁'은 과거의 추억일뿐인가?

네티즌칼럼 "최루탄내음·열사선혈 되새겨 민주주의 완성을"

이영일 | 기사입력 2007/06/11 [14:21]

'6·10항쟁'은 과거의 추억일뿐인가?

네티즌칼럼 "최루탄내음·열사선혈 되새겨 민주주의 완성을"

이영일 | 입력 : 2007/06/11 [14:21]
▲이영일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운영위원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었던 6.10항쟁과 이후 6.29선언이 나오기까지 국민들의 계속된 항쟁은 당시 고교 1학년생이었던 필자에게 일종의 쇼크였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광주의 피를 먹고 태어난 살인독재의 원흉이라는 것을 몰랐던 고교생의 눈에 거의 매일같이 열렸던 데모의 모습은 그저 신기한 하나의 구경거리였기도 했지만, 동시에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잇다른 죽음은 가슴속 원초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진실에 대한 갈구와 정의를 향한 분노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온 나라가 분연히 떨쳐 일어서 독재와 항거하고 있던 그때에 마치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히 수업을 하던 기만의 학교는 철저하게 청소년들을 진실과 격리시켰고 언론들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무기력한 보도로 일관했었다.
 
타는 목마름을 안고 6월 내내 하교 후 거리에서 접한 생생한 반독재 투쟁의 모습들, 6월 10일 이후 처음으로 맞는 13일 토요일에 처음으로 종로에서 데모대 행렬에 참가했던 경험은 솔직히 무서웠지만 맵디 매운 최류탄의 역겨움은 질곡의 역사를 토해내듯 눈물을 강제하며 알 수 없는 분노를 자아냈었다.
 
▲87년 항쟁 당시 기록사진.     ©

 
당시 넥타이부대를 비롯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독재 타도를 외쳤고 필자 스스로 6.10항쟁의 중추적 세대는 아니였지만 또래 청소년들보다는 일찍 역사에 눈 떠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 함께 했다는 자부심은 당시를 추억하게 하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쟁취한 민주화는 너무나 뜬구름같았다. 야당 후보들의 단일화 실패로 소중하게 얻은 민주화의 결실이 다시 군사독재의 하수인인 노태우에게 넘어가고, 학교에서는 전교협을 필두로 전교조가 창립되어 진실의 교육을 부르짖었으나 노태우 정권은 교사 천여명을 우루루 해직시키고 범죄자처럼 굴비엮듯 끌고가는 만행을 자행했다.
 
1989년 5월 10일에는 조선대학교 학생 이철규가 광주 제4수원지에서 처참하게 부패되어 발견되어 박종철 고문치사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죽음은 계속되었다.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에게 쇠파이프로 집단 구타 당해 살해된 이후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으로 이어지는 젊은 학생들의 분신과 성균관대학교 김귀정 학생의 압사가 계속 이어졌다.
 
87년 6.10항쟁 이후 불과 5년도 채 안 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군사독재의 망령에 다시 놀아나는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소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교생이었던 필자는 부딪히고 넘어지며 20대 청춘을 사회운동판에 담그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6.10항쟁이 국가기념일이 되어 이를 기리는 올 해, 꽃다운 청년학도들의 죽음과 수많은 사람들의 피의 댓가로 구가하고 있는 현 시대의 민주화가 과연 승리의 완전한 산물인지 필자는 의문을 제기하며 되돌아본다.
 
6.10항쟁의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있기에 2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권위주의적 정치 잔재와 국민 알기를 우습게 하는 정치인들, 양극화로 대표되는 굴종과 차별의 잔상이 여전히 존재할까.
 
어쩌면 지금의 사회는 전선이 명확했던 당시보다 더욱 교묘한 굴종의 벽이 높게 쳐져 우리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당시 민주화의 중심 세력들조차 기성 정치판의 보수적 굴레에 매몰되어 사분오열의 정치세력화로 소모적 정쟁과 대립의 날 선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있지 않은가.

6.10항쟁은 분명 승리였으나 분명 실패였기도 하다. 값비싼 민주화는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반쪽의 실패 분석보다는 승리의 만족감에 도취해 정작 이루어야 할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
 
역겨웠으나 참을 수 있었던 최류탄의 내음도, 분노스러웠으나 명확했던 갈 길도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존재한다면 열사들의 선혈을 헛되게 하는 일일 것이다. 가야 할 길이 더욱 명확한 이 시대에 지난 6.10항쟁이 우리의 갈 길을 다시금 흔들어 깨우고 있음을, 그리고 철저하게 사고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를 부르고 있음을 우리 모두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6월이 되었으면 한다. 보이지 않는 전선을 비판적 사고로 꿰뚫어 진정 더불어 사는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발걸음이 멈추지 않도록 말이다.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은 후 한겨레전문필진, 동아일보e포터,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과 2019년 "일본의 학교는 어떻게 지역과 협력할까"를 출간했고 오마이뉴스 등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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