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마 만행' 은폐, 일본 관광개발추진

나가사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요청... "500여명 징용 역사은폐..."

공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09/10/18 [15:13]

'하시마 만행' 은폐, 일본 관광개발추진

나가사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요청... "500여명 징용 역사은폐..."

공준호 기자 | 입력 : 2009/10/18 [15:13]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 돼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인들이 묵었던 건물을 일본의 지방자치단체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려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mbc 서프라이즈에서 밝혀낸 사실에 의하면 하시마 섬 에 일본 미쓰비시사가 탄광사업을 목적으로 한국 징용자 약 500여명을 끌고가  엄청난 노동을 시키고 개취급을 하고 부상자들을 사살 했다고전했다.

▲ 하마시섬 (일명 군함섬) 을 일본 나가사키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과거 역사를 감추려고 하고 있다. © 신대한뉴스
일제강점하 강제 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일본 나가사키(崎) 시가 나가사키 항구 서남쪽으로 18.5km 떨어져 있는 하시마(島) 섬의 여러 건축물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일본 내 시민단체인 ‘나가사키 재일(日)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인권모임)’을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 시는 시 홈페이지에서도 하시마 섬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910년 만들어진 하시마 섬의 건축물은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주거용 건물로 근대화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상규명위 측은 “나가사키 시가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는 역사적 죄과를 쉬쉬하면서 무인도로 남아 있는 하시마 섬을 관광지로 개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 1887년부터 1974년까지 사람이 거주하였다. 석탄생산이 많아 그 당시엔 하이테크 도시라 할 정도로 본토보다 더 발달한곳이였는데 74년이후 단 한명도 거주하지않는 유령섬이 되어버렸다.  강제로 이끌려간 조선인들의 노동착취가 있었던 곳이며 많은 조선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었다. 이 후 사체를 조사해 본 결과 사인은 두개골함몰,익사,압사 등이었다고한다.      ©신대한뉴스
문제의 콘크리트 건물은 4∼7층짜리 10여 동으로 하시마 섬의 해안을 따라 서 있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1939∼1945년 강제 징용된 조선인 500여 명은 하시마 탄광에서 일하며 일본인 노동자와 함께 이 건물에 흩어져 생활했다. 하시마 탄광은 일본 미쓰비시사가 소유했던 것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석탄 생산량이 가장 많은 탄광 중 하나였다.

일본의 인권모임이 하시마 탄광 사망자의 ‘매·화장 기록서’를 확인한 결과 당시 조선인 강제 징용자 122명이 이 섬에서 숨졌고, 사인은 두개골 함몰, 익사, 압사 등이었다.

하시마 탄광에 강제 징용됐던 피해자 박준구(87) 씨는 “그 섬은 높은 방파제와 거센 파도로 탈출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조선인들은 전쟁 말기 위험한 작업에 집중 투입됐으며 탄광 관리인들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고 덧붙였다.

진상규명위 이재철 홍보담당관은 “나가사키 시가 조선인들의 한과 아픔이 서린 하시마 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일본 정부의 ‘어두운 역사 지우기’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나가사키 시의 움직임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강점기때 이러한 야만적인 일을 한 일본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가 너무나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청산이 없는한 대한민국이나 우리민족은 발전 할 수 없을것"이라고 사회 원로들과 항일 단체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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