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니·시아 보복악순환, 미국 창작품”이라크통신 죽음의 나라 이라크를 탈출하는 이들의 목소리
아프간 뿐 아니라 이라크에서 그리고 레바논에서도... 그리고 피해자 늘어 가면 한국군도 직접 적(?)을 향해 사격을 시작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한국군도 무고한 희생 뿐 아니라 무고한(?) 살인자까지도 양성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서둘러 한국군의 철군이 이뤄질 수 있도록 3·17 반전 행동에 많이 참여해 주시고, 한국군 철군과 미군 점령 종식을 위한 여러 운동에 힘들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시리아에서 머물고 있는 친구 미국인 평화운동가가 시리아로 탈출한 이라크인들 십 수 명을 인터뷰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2007년 1월 중순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한 이라크인 거주지 인근 길모퉁이에서 이뤄진 대화들입니다. 이를 번역했습니다. /필자주 “순니파, 발각되면 모두 죽입니다” △00A씨(30대 초반)=3일전에 이라크에서 시리아에 도착했다. 집과 차를 버리고 떠나야만 했다. 나는 순니(순니파)다. 일부 사람들이 순니라는 이유로 메흐디군에 신고 됐다. 이는 죽음을 의미한다. 나와 내 가족이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신께 감사한다. 지금 이 순간도 두렵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아마 이달 말까지밖에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바그다드에서의 생활은 전기가 들어오면 TV를 보고, 전기가 나가면 친구와 앉아 대화하고, 또 대화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미국에 가고 싶으냐고? 미국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다루고 있는지를 봐라. 거기서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곳 다마스커스에서 한동안 머물려고 한다. 만약 이라크 상황이 호전되면 나는 이라크에 다시 돌아갈 것이다. △00C씨(약 22세)=바그다드의 내 집이 알 수 없는 그룹에 의해 폭발 당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이유를 모른다. 일부는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일부는 내가 시아(시아파)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나를 시아지역으로 옮겨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내 집에서 머물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파괴했고 결국 너는 지금 시리아에 있다. 내가 진정으로 가고 싶은 곳은 내나라 이라크의 내 집이다. 나는 거기에 가고 싶고 미군이 떠나는 것을 보고 싶다. 우리는 미국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군대는 싫어한다. “난 미군이 떠나는 것을 보고싶다” △00D씨(약 26세)=나는 팔레스타인인이지만 내 모든 인생을 이라크에서 살았다. 이라크인은 시리아에 들어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우리 팔레스타인인은 시리아에 들어오기 위한 비자를 얻는 것이 무척 힘들다. 이라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 어떤 나라도 그들에게 비자를 주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 뒤에 숨어있는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 생각에 그들은 우리 모두를 하나씩 끝내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바그다드의 팔레스타인 캠프에서는 매일 최소한 두 명에서 8명이 메흐디군에 의해서 죽어간다. 나도 자동차 폭발로 부상을 입었고, 몇 차례의 죽음의 위협을 당했고, 일거리가 없고, 치안이 없고, 전기도 없다. 나는 내가 이라크를 떠나야만 했던 이유를 하루 종일이라도 읊을 수 있다. 언제 이런 것들이 끝날 것인가? 어제 차량폭탄으로 70명이 넘는 바드다드대학의 학생들이 죽었다. 그리고 100명이 넘게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만약 열 혹은 백만의 이라크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죽어도 누가 신경을 쓰는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가 어렸을 때 나는 미국을 좋아했지만, 만약 내가 거기 갔다면, 그들이 나를 좋게 대해줄지 모르겠다. 이라크에서 그들로부터 온 것을 그리고 그들이 한 짓을 본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그들이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과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00F씨(30대 중반)=8개월 전에 이라크를 떠났다. 남편이 살해를 당했고 이 세상에서 남은 유일한 내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범죄자들이 내 남편의 차를 훔치고 그를 죽였고, 그가 죽고 난 다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아이가 셋이고 내 남편이 죽고 난 후 이들 살인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가족들까지 끝내고자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라크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것은 남편이 경찰 검문소에서 불과 200피트 떨어진 곳에서 살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경찰초소 부근서 살해되다니” △00H씨=이라크는 지금 한마디로 묘사할 수 있는 장소이다. “지옥” 매일 모든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나간다. 내 남편은 미군의 침량과정에서 폭격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내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이라크에서 죽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니이고, 이라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두 순니이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순니의 리스트 첫 번째에 올라가 있다. 이라크 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두 합해서 15,000명을 넘지 않는다. 그들은 작년 5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였다. 당신이 나에게 “왜 이라크를 떠났느냐”고 묻는데 그 대답이다. △00I씨(40대 초반 여성)=전에 내 삶은 매우 좋았다. 나는 내 아이들을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도서관의 내 직장으로 출근을 하였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우리는 바그다드 인근 여러 장소로 소풍을 가거나 식당에 가거나 했다. ‘롤러코스터 시티’에 가거나 동물원에 가거나 했었다. 내 인생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아름다웠다. 전쟁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정말로 끔찍했다. 바그다드는 위험한 장소가 되기 시작했고, 특히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자동차 폭탄은 특히 그랬다. 그리고 미군은 사람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체포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오랫동안 아무런 이유 없이 가두어 놓았다. 내 형제와 시동생이 부카 캠프에 재판 없이 16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라크인이 재판 없이 1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우리의 정체성이 죽음을 당했다. 만약 당신이 순니라면 시아그룹에게 체포를 당해서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당신이 시아라면 순니에게 체포를 당할 것이다. 전쟁 전에는 이런 일은 정말로 없었다. 믿어달라. 이것들은 전쟁과 함께 왔다. 남성과 여성, 시아와 순니를 불문하고 어떤 이라크 사람에게든 이런 살인에 관해서 물어보라. 그들은 시아가 순니를 죽이고, 순니가 시아를 죽이는 것은 미국의 창작품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라크를 떠났다. 그들은 거기서 고생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중 하나를 잃는 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아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모든 것으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란다. 지금 이라크에서 여성은 그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권리가 없다. “내 조국은 지금 ‘지옥’입니다” △00K씨(30대 후반의 남성)=내 인생은 다른 이라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했다. 내 유일한 문제는 내가 시아라는 것이고 그래서 간단한 일을 하는 것조차도 힘들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내 형제는 남부의 봉기에서 사담 후세인의 군대에 의해서 처형을 당했다. 나는 사담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군인들을 동원해서 죽인 그런 방법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사담만을 죽인 것이 아니라 나도 죽였고, 내 가족들의 미래까지도 죽여 버렸다. 전쟁 이후에 내 인생은 무척 힘들어졌다. 모든 것이 비싸졌고 내 수입은 내 가족이 소비하는 가스, 물, 전기를 충당하기에도 부족했다. 우리는 안전한 곳 을 찾아서 이라크를 떠났다. 내가 이곳으로 오도록 압박한 진짜 이유는 메흐디군이 내가 시아이기에 내가 그들의 군에 결합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은 내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지만, 어느 날 문에 “만약 당신이 결합하지 않을 경우 당신과 당신 가족을 죽일 것”이라고 쓰인 종이를 발견하였다. 내 시아 친구도 똑같은 종이를 받았다. 그도 역시 믿지 않았다. 헌데 일주일 뒤 그와 그의 형제 그리고 아버지까지 죽음을 당했다. 피살자들은 그들의 집 앞에 매달렸다. 나는 신이 내가 이 세상에서 더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겁이 나서 내 부모님의 집에 숨어 지내다가 3일 후에, 가족들만을 데리고 시리아로 떠났다. 나는 집을 짓기 위해서 3년을 일했고 차를 사기 위해서 5년을 일했다. 지금 나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이도시를 좋아하고 사람들도 우리에게 잘 대해준다. 하지만 비록 내가 전 세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집은 항상 집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내 집과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 그리고 바그다드의 내 거리가 그립다. △00M씨(젊은 여성)=전쟁 전에 내가 연극을 무척 좋아해서 내 친구와 나는 극장에 자주 갔다. 그리고 우리는 걸어서 집까지 돌아왔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이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우리가 가는 유일한 극장은 우리 꿈속에 있다. 미군은 들어와서 우리 모든 인생을 망가뜨렸다. 그들은 와서 말하기를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지만 그들이 가져온 것은 공포뿐이다. 나는 내 가족이나 내 친구들이 죽는 모습을 서서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이라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 인생 전체를 단 한 방울의 피도 보지 않고 살았었다. 그리고 전쟁 후에 나는 피의 바다에서 수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그 피는 내 동포들의 것이었다. 이라크에서는 매일 이세상의 누구나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미국인들에 관해서는, 나는 우리를 아주 나쁘게 취급하는 군인들과 민간인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내 친척 중 한사람이 미군에 의해 수감되었고 우리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린존에 갔었다. 그곳의 군인들은 우리들을 마치 동물처럼 취급했지만, 우리는 한 인권단체를 만났고 그들은 우리 친척을 찾는 일에 우리를 돕고자 했으며, 그들은 우리에게 마치 천사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미국인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미국 정부와 민간인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내 가족과 바그다드 거리가 그립다” △00N(40대 초반의 여성, 4자녀의 어머니)=50명의 명단(해외로 갈 수 있는 여권, 지역을 순회하며 선착순 발행)에 들기 위해 작은 아기를 돌보면서 여기(사무실 밖)서 밤을 새웠다. 만약 내가 첫 번째 50명의 명단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나는 여권을 얻을 기회를 상실할 것이고 명단 안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6개월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정부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다. 바그다드의 각 지역마다 정해진 날짜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지역별로 한 바퀴 도는데 6개월이 걸린다. 왜 내가 이런 짓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내가, 내가 모르는 다른 나라로 가야하는가? 만약 당신에게 아이가 있다면 당신은 그들을 잃을까 두려울 것이다. 내 두 형제가 성묘(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의 모스크 폭발사고인 듯)에서 사고로 죽었고 두 명의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내가 보는 앞에서 죽었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는가? △00P(20대 초반의 부부)=내 아내와 나는 50명의 명단에 들어갔다. 그것이 내가 여권 부서 근처에 차를 세우고 밤을 샌 이유이다. 우리는 쓰레기 근처에서 잠을 잤다. 거기는 파리들이 날아다니고 끔찍한 냄새가 났다. 알 수 없는 그룹이 내 자매를 납치했고 엄청난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우리는 그 돈을 만들 수 없었고 그들은 그녀를 강간한 후 살해했다. 나는 그런 일이 내 아내에게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비록 내가 굶주림으로 이라크 밖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이 매일 밤낮으로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면서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한상진 통신원<hansangj@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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