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상디자인 ‘뜰 날’ 멀잖다”

[기고문] 안정수 "한국 패션의 동향"

인터넷저널 | 기사입력 2007/01/11 [18:30]

“한국 의상디자인 ‘뜰 날’ 멀잖다”

[기고문] 안정수 "한국 패션의 동향"

인터넷저널 | 입력 : 2007/01/11 [18:30]
패션이라는 커다란 테이블에서 한국패션이라는 음식이 메인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의 활동, 한국브랜드의 뉴욕·파리 진출 등 그 추세가 심상치가 않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국 패션의 동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6·25전쟁 이래 박정희 시대의 급격히 발달한 산업변화를 거치고 60년대 4·19혁명과 함께 등장한 세대의 탄생과 88올림픽이 열리는 절정의 시점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복식문화는 미를 추구하는 도구로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전 세대들 중 친일파·소수자본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옷이란 체온유지를 위한 도구였을 뿐이었다.

88년 이전까지 ‘옷은 체온유지 도구’

즉 전쟁이후 노동력과 의복의 부족은 실용계획안(Utility Scheme)을 도입해 의복의 수와 종류를 제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창조성이 제한되고 유행의 변화가 느려졌다. 반면 제조적 측면에서는 복식산업의 구조와 생산기술을 발달시켰다.

아직도 대구의 염색기술은 세계에서 최고라고 할만하다. 그 외에 생산기술도 세계 1,2,3위를 모두 한국이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그때의 시민들은 하루 앞날의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패션이란 단어는 사치였을 것이다.

1967년 가수 윤복희씨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미국에서 귀국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을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윤복희씨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주)나산이 창립된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광주항쟁 등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민중문화’가 등장하면서 오광수는 “포스트모더니즘 대 모더니즘 또는 모더니즘 대 민중문화란 삼각구도가 형성되는 시대로 특정지어 질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국제복장학원에서는 한국 패션계의 주역이 될 이신우, 앙드레김, 박윤수(SFAA회장) 등 여러 디자이너가 배출되고 있었다. 복고주의와 장식성, 이분법적 사고의 해체를 통한 비주류 문화의 주류화,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부각, 절충주의에 의한 동-서양 복식의 조화,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 등 복식문화에 있어 풍요로움을 누렸던 시대였다.

80년대 절충주의 거쳐 ‘풍요로움’

백남준은 93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 출품하여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95년에는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건립된 한국관에 그의 제자 전수천이 선정 작가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세계는 우리나라를 더 주목하게 된다. 

80년대에 다양하게 시도되었던 복식현상들이 다소 세련되게 정돈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노출을 통한 여성들의 페미니즘적 표현과 복고적 경향은 90년대 패션의 지배적인 테마가 되고 있으며 거기에 안티패션(Anti-Fashion)의 흐름이 함께하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의 국제적 흐름에 이미 우리나라의 패션시장은 년 매출 1000억을 달성하는 단일브랜드가 생기기 시작하고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룩(look), 라인(line)을 추구하는 하이패션이 주도했으며 점차 청소년 하위문화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였다. 트렌드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이패션의 리더도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1997년 IMF 이후 국내의 미술계는 적잖은 변화를 맞이한다. 국내 경제의 위축으로 시장은 붕괴되었고, 패션계의 흐름은 커다란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급격한 소비위축으로 재고가 쌓이고 파행적 덤핑처리 되는 상품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고 일부 번화가를 제외한 유통공간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경제위기 이전과 매우 달라진 환경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정기적으로 90년부터 시작한 서울컬렉션을 더욱 활성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룩·라인 하이패션 시장 주도

2000년대의 한국 패션계의 활성화와 수준향상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으며, 공적 채널의 지지와 후원의 요소 등도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와 더불어 세계무대를 향한 한국의 문화를 포장하고 수출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 홍보방식과 유통의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며, 세계적인 시장으로의 활로에도 한국 디자이너들의 좋은 작품들이 인정받는 국제 패션계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진출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들을 요구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주)아이리스멤버스(www.irismembers.com)라는 기업은 Houte couture의 대중화를 화두로 2006년에 창립됐다. 패션 매니아라면 들어봄직한 ‘크로마(Chroma)'.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시대를 잘못태어나 IMF라는 큰 파도에 부딪쳐 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2006년 대표 박창모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예전부터 흔히 볼 수 있었던 맞춤정장이 아닌 고객전속 스타일리스트를 둔다는 포괄적 레벨업이다. 당연히 전속디자이너도 있다. 문화의식이 높아지면서 의상 외에 헤어, 메이크업, 피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람들 모두 아이리스멤버스의 고객. 의상, 메이크업, 헤어를 원톱(One-Stop)으로 최고전문가에 의해 관리된다는 시스템. 패션계에 어필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다.

50년대를 시작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는 서구문화의 모방이라는 굴레를 벗어 날 수 없었으며,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더 강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체성의 문제는 패션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문제다. 이것은 전통의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으므로 어떤 결론적인 주장은 할 수 없겠지만 뜻이 있는 인사들의 의견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아시아 패러다임 세계화 눈 앞

하지만 90년대의 백남준을 비롯한. 한국적 정서를 서구문화와의 접목으로 시도한 새로운 문화인들도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더욱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통신의 발달은 전 지구를 네트워크하며 삶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들 정도의 가치기준을 변화시키 놓고 있다. 이 같은 정보의 개방과 그 수평적 확산은 앞으로는 더욱 빠른 속도로 민족간, 국가간의 문화적 정체성의 구분을 희석시키며 그 역할을 촉진하리라는 예측이다.

서구중심의 시각을 바탕으로 비서구권 문화가 국제적인 패션계에 본격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비서구권 문화가 국제패션계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세계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디지털 패러다임의 시대인 21세기 향후에는 새로운 시공간의 개념 속에서 틀림없이 이전과는 또 다른 변모를 보일 것이다.

계속 늘어나는 국제 행사에 한국 디자이너의 참여는 더욱더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제적 패션 환경을 바로 읽고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디자이너 및 패션쇼에 대한 지원전략이 존재 할 때 한국패션의 진정한 국제적 위상 확립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본다.

/안정수(9032-25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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