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IOC는 왜 미국과 입장이 달랐을까?

최한욱 기자 | 기사입력 2018/02/17 [09:01]

유엔과 IOC는 왜 미국과 입장이 달랐을까?

최한욱 기자 | 입력 : 2018/02/17 [09:01]
▲ <사진 1> 2018년 2월 9일 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의 선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단일선수단이 통일기를 높이 들고 입장하였다. 민족의 통일염원이 피와 땀과 눈물로 아로새겨진 그 숭고한 깃발 아래서 남과 북은 그렇게 두 손을 뜨겁게 맞잡고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개막식장을 가득 메운 35,000명 관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성을 터뜨렸다. 주석단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영부인, 그리고 바로 그 뒤에 자리를 잡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자리에서 일어나 남북단일선수단을 향해 손을 흔들며 동포애의 정을 보냈다. 남과 북이 따로 없었다. 오직 우리라고 부르는 민족만 있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역대급 개막식과 함께 평창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전 세계가 격찬한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남북공동입장과 공동성화봉송이었을 것이다.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분단의 세월만큼 길고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라 `겨울여왕` 김연아에게 성화를 건내는 감동적인 순간은 평화올림픽의 인증사진과도 같은 명장면이었다.

 

핵전쟁의 어두운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와 평화와 통일의 새시대로 향하는 우리 민족을 전 세계가 축복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장면이 불편한 사람은 펜스와 아베 , 홍철민 적폐트리오와 입소를 앞둔 MB뿐이었을 것이다. 속좁고 찌질하고 참 못났다.

 

이렇게 미국은 공공연하게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지만 유엔과 IOC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하다.(미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다)  먼저 IOC는 남북단일팀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바흐 IOC위원장은 공동입장과 단일팀의 성사를 위해 남북 당사자들을 제외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왜 IOC는 단일팀에 적극적이었을까?

 

물론 평창올림픽의 흥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대 가장 정치적이라는 IOC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과 일정한 거리를 둔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미국의 NBC는 평창올림픽 주관방송사다. NBC는 IOC에 약 1조원이 넘는 중계권료를 지불했다. 직간접적으로 미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평화올림픽을 위한 바흐 위원장의 행보는 거침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사이에서 단일팀 경기를 관람한 바흐 위원장의 위치는 현재 IOC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미국의 루게로 IOC 위원조차 "단일팀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라가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IOC 뿐만 아니다. 유엔의 태도도 이전과 달랐다. 애초 유엔은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최휘 위원장이 제재 대상이라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결국 방남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유엔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주목할만 하다.

 

유엔이 최휘 위원장의 방남을 허용한 것은 그만큼 제재의 정당성이 빈약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유엔 제재가 정당하다면 예외를 인정할 이유가 없다.

 

유엔은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을 근거로 제재를 추진했지만 국제법적인 근거가 약하다. 북한은 이미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고 탄도미사일개발을 억제하는 국제법도 없다. 북한을 제재할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유엔 제재는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핵. 미사일 실험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이러한 선핵보유국들의 독점적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대북 제재는 태생부터 공정성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튼 미국과 유엔, IOC의 미묘한 입장 차이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입김이 약해지고 북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핵보유효과라고 할 수 있다.

 

평창올림픽은 남북과 미일의 외교대결이었다. 결과는 모두 예상을 뒤엎고 미일의 완패였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적인 힘의 변화다.

 

뉴욕타임스는 김여정 특사가 `알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며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으로 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았다`며 `외교적인 ‘이미지 메이킹 게임’에서 펜스 부통령을 앞질렀다`고 평가했다. 전 국무부 한일담당관 민타로 오바도 "펜스 부통령이 북한의 손안에서 놀았다"고 미국의 패배를 쿨하게 인정했다.

 

뉴욕타임스가 김여정 특사는 등장하는 곳마다 관심을 끌었지만,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개회식 직전 문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 자리에 등장하지지 않았을 때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개탄할만큼 미국의 평창외교전 성적표는 처참했다. 아베도 마찬가지다. 아베는 문재인 대통령에 한미합동군사훈련 재개를 요청했다가 내정간섭이라고 핀잔만 들었다. 독도 문제 역시 현송월 단장의 노래 한 곡에 완패했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은 `이미지 메이킹 게임`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뉴클리어 메이킹 게임` (핵개발경기)에서 패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유일한 혈육인 김여정 부부장이 대담하게 특사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북한식의 핵우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대담한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즉 `핵무력 완성`이 아니었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담한 평창구상, 김여정 특사의 매력공세도 빛을 보지 못 했을 것이다.

 

이제 트럼프의 `최대압박전략`, `코피작전`이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대의 압박`은 비핵화는 커녕 오히려 북한의 핵능력만 증대시켰다. 북한의 붕괴는 고사하고 이제 미국의 쌍코피가 터질 판이다.

 

국제 사회에서는 점점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만 믿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제재에만 매달려 세계4강의 핵강국, ICBM강국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유엔과 IOC, 국제 사회 심지어 미국 내에서조차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 `치킨게임`이 모두 파국에 몰아넣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만약 최대의 압박, 즉 대북 제재가 성공적이었다면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며 누구도 북한에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제재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이미 실천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며 평창에서 그 돌파구를 찾고 있다. 결국 대화의 방식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직후 미국 내에서도 대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최대 압박은 계속될 것이고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할 것이라고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다. 틸러슨 국무장관도 "북미대화 시기가 북한의 결심에 달렸다"며 `전제 조건 없는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런 움직임이 북미 직접대화로 이어질진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 사회가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평창 이후가 두려운 것은 북한이 아니다.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재개하면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로 대응할 수 있는 명분을 얻는다. 이를 명분으로 북한이 `태평상 상의 역대급 수소탄 실험`이라도 시도하면 미국은 쌍코피가 아니라 대동맥이 터지는 대참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애가 타는 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리고 이런 역학관계의 변화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할 수 있는 것이다. 평창올림픽은 미국에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 이 기회를 놓치면 미국은 평창의 펜스처럼 찌질하고 존재감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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