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시비 광고중단, 광고주 맘이라고?

[인터뷰] '삼성 광고통제 논란' 김종구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임동현 기자 | 기사입력 2008/02/01 [11:34]

기사시비 광고중단, 광고주 맘이라고?

[인터뷰] '삼성 광고통제 논란' 김종구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임동현 기자 | 입력 : 2008/02/01 [11:34]
삼성 비자금 사건과 태안 기름유출사고를 제대로 보도해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한겨레신문. 이 신문에 하나의 시련(?)이 닥쳐왔다. 삼성의 광고가 끊긴 것. 광고주 맘이라니 딱히 할말도 없었다. 밖에서 '광고 탄압'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언급조차 민망할 뻔했다. 광고주 부정비리를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 이런 언론에 광고를 중단하는 재벌.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논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본지가 한겨레신문 김종구 편집국장을 만났다.

김 국장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다. "광고를 미끼로 진실 보도를 막는 대기업을 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났더니 이제는 자본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 앞에 쓴웃음이 다 나옵니다."
 
그렇다. 김 국장의 말마따나 삼성의 광고통제는 자본과 언론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한겨레의 삼성특검, 서해기름유출 보도가 나가고 삼성은 "기사를 그만 쓰라"고 했단다. 그게 끝이었고 광고가 끊겼다.
 
더 웃기는 것은 기름유출사고 수사결과가 발표되고 삼성이 '사과광고'를 전국의 일간지에 실었는데 한겨레신문만 뺐다. 일반 광고를 안싣겠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뭐라 항변하기가 쉽지않았다. 제맘이라고 하니. 한데, 사과공고는 좀 다르다. 보복성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외로운싸움'에 재정난이 불보듯 할 텐데 시민들이 도와야 하지 않겠냐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 이에 한겨레도 할말을 할 수 있게 됐다. 김 국장이 던진 물음이다. "광고 중단이 기업이 무한대로 누릴 수 있는 권리인가요?"
 
본지가 한겨레 김종구 국장을 공덕동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광고를 구걸하는 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잘랐다. 삼성 광고가 없다해도 한겨레가 망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언론사가 편집권을 제맘대로 휘두를 수 없듯이 광고주도 광고를 제맘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더구나 보도에 불만을 품고 무기로 악용하는 건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더 이상 기사 쓰지 말아달라", 그리고 광고중단...
 
인터넷저널(이하 인) : 정확히 삼성이 광고를 중단한 시점이 언제였나?
 
김종구 편집국장(이하 김) : 작년 11월부터, 그러니까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한 직후부터였던 걸로 알고 있다. 
 
: 삼성 관련 기사에 대한 삼성 쪽의 반응은 어땠나? 
 
▲ 삼성의 광고통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종구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임동현
: 사실 관계가 틀린 기사가 있다면 우리에게 정정 보도를 요청할 수 있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소송을 낼 수도 있다. 삼성이 즐겨 말하는 '법률적 대응'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우리 기사에 제대로 된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곧바로 광고중단이라는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뒤  며칠 동안 삼성 측이 "이제 더 이상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사안의 성격상 어떻게 후속 기사가 안 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자 갑자기 연락을 끊으면서 광고를 중단했다.  삼성 쪽은 사실 광고 중단의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편집권이 한겨레에 있듯이 광고집행 권한은 광고주에게 있다’는 말만 하고 있다.
 
우리는 편집권이 있다고 해서 마구 휘두르지 않는다. 사실 관계를 철저히 검증하고 잘못된 기사가 나가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고 있다. 아직 특검 수사가 진행중에 있지만 삼성이 없다고 잡아떼던 차명계좌가 서서히 드러나고, 에버랜드 창고에서 고가의 미술품이 쏟아져나오는 등 우리가 썼던 기사가 하나둘씩 사실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차명계좌·미술품 등 사실로 드러났는데... 왜?"

: 태안 사과광고가 실리지 않은 날 유독 한겨레에 삼성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김 : 우리가 일부러 기사를 많이 쓴 게 아니다. 특검의 에버랜드 창고 압수수색 소식과 삼성중공업의 사과문이 한겨레에만 빠졌음을 알리는 짤막한 기사, 그리고 홍세화 기획위원이 쓴 칼럼 정도가 전부다. 삼성 기사로 도배한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보도를 했을 뿐이지 삼성을 공격하기 위해 기사를 더 쓴 것은 아니다.
 
인 : 그런데 지난 22일자 여론면에 실린 '삼성 건물을 칼로 찌르는'  일러스트가 문제가 됐고 바로 한겨레가 사과를 했다.
 
김 : 여론면 제작은 편집국 소관이 아니라 논설위원실 소관인데, 어쨌든 그런 그림이 나간 것은 잘못이었다. 외부 작가가 보낸 그림이었는데 담당자가 꼼꼼히 챙기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그래서 곧바로 사과문을 내보낸 것이다.
 
인 : 삼성이 만약 광고를 다시 준다면 지금처럼 삼성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김 : 잘못된 관측이다. 삼성이 광고를 안 준다고 기사를 더 쓰지도 않고, 광고를 준다고 해서 기사를 덜 쓰지도 않을 것이다. 신문은 광고와 관계없이 만든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방침이다.
 
"보복인인가 회유인인가? 아니면 길들이기인가"
 
인 : 삼성이 광고를 중단하면서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지 않았나?
 
김 : 회사 운영에 대한 것은 정확히 모르지만 당연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광고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한겨레가 망하는 일은 없다. 한겨레가 삼성 광고 하나에 의지해서 운영하는 회사도 아니고, 삼성의 광고 없이도 지탱해나갈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커져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권력의 통제가 가해졌다면 지금은 자본의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 그것을 보여준 게 이번 광고통제다.  삼성으로서는 `기업이 자기 뜻대로 광고를 안 싣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과연 기업이 무한대로 누릴 수 있는 권리인지는 의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삼성은 지금도 광고 중단에 대한 확실한 논리도,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광고 중단이 기사에 대한 보복인지, 우리한테 '기사 그만 쓰라'고 회유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언론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건지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이번 사태는 자본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 김종구 편집국장은 "삼성의 광고통제는 자본과 언론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기녕비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 임동현 기자

인 : 말한 대로라면 한겨레가 언론 발전을 위한 총대를 멘 셈이다.
 
김 : 만약 광고 중단 사태가 다른 언론매체를 상대로 벌어졌다면 지면을 많이 할애해 다양한 보도를 통해 이 문제를 짚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당사자 아닌가? 우리가 우리 문제를 다룬다는 게 모양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자제하고 있다.
 
"우리 문제이다보니 집중보도할 수도 없고..."
 
인 : 자본의 통제도 문제지만 '언론인 성향조사'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명박 정부의 언론통제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김 : 그렇긴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 정권 차원에서 언론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정권 담당자들의 건전한 생각을 믿고 싶다.
 
인 : 사소한 질문 하나 하겠다. 한겨레도 '이명박 당선인'이라고 표현하더라. '당선자'라고 계속 쓸 줄 알았는데... 
 
김 : 인수위법에는 '당선인'으로 표기하고 헌법에는 '당선자'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인수위 쪽이 '당선인'으로 불리기를 원하니까 그쪽이 원하는대로 해 주는 것이다. '당선인'과 '당선자'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당선인'이 정말로 문제있는 표현이라면 우리도 '당선자'를 고집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 만큼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너무 신경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인: 한겨레가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삼성이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 나기를 바란다"

김 : 한겨레는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사회의 민주화, 민족문제에 대한 애정,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 등에 중점을 두고 신문을 만들어 왔다. 그런 창간 정신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나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삼성의 비리 의혹을 끈질기게 보도하는 것도 삼성을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삼성이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 태어나 더욱 성장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이 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대목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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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08/02/02 [16:21] 수정 | 삭제
  • 힘내시기 바랍니다. 한겨레가 있어 그래도 한국 언론이 이만큼 살아있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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