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메콩강 보며 배운 인내와 삶의 자유[동남아일기31-라오스] 짬빠삭에서 2주 여행을 마무리하며...
이른 새벽부터 이집 저집 닭들이 릴레이 하듯 울어 제치는 통에, 늦잠을 잘 수가 없다. 도대체 몇 시간 동안 울어대는 겐지. 젠장.ㅜ,.ㅜ 몽땅 잡아다 백숙을 만들어 버릴까보다. 쓰압. 라오 사람들이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 일찍들 잠자리에 드는 건, 아마도 이 넘의 닭들 때문인 듯... 남부지방의 나름 대도시인 빡세(Pakse, 인구 약 66,000명)에서 이틀을 보낸 뒤 작은 시골마을인 짬빠삭(Champasak)으로 내려온 지 벌써 나흘이 지났다. 짬빠삭은 메콩강변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로, 앙코르사원의 최북단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이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자전거로 이틀 동안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니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젊은 프랑스인 부부의 소개로 짬빠삭에서 살고 있는 안느(Anne)라는 프랑스 여성을 만났는데, 라오스에서 7년 동안 주민들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그들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내심 회의적이었는데, 다행히 그녀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라오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프랑스인 현지활동가 안느의 경험담 소속된 단체 없이 자발적으로 혼자 일을 해온 그녀의 지난 7년간 경험이야기는, 제프가 내게 해준 얘기와 많이 비슷했다. 제프는 태국의 주민조직 활동가들과 함께 약 3년 동안 라오스에서 주민조직활동을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리더 양성부터 주민조직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철수했다고 한다. 안느 역시 마을에 학교를 세우기 위해 주민들을 모으고, 공동체 활동을 하려 했으나, 현재 잠정적으로 학교세우기 프로젝트를 중단한 상태라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라오사람들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례1. 마을의 물 공급을 위해, 2~3년 전 학교 마당에 우물을 판 뒤 수동펌프를 설치했는데, 그 펌프가 튼튼하지 못했나 보다. 작년에 결국 손잡이가 고장이 나 사용할 수 없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고치려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잠시 그것이 있어 편하기는 했지만, 원래 마을은 우물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고장 나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다. 다시 원래대로 살면 되니까.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우물펌프 고장에도 아무도 고치지 않는... 사례2. 학교건물 공사를 위해 몇몇 주민들을 고용했었는데, 어떤 한 사람이 어느 날 말도 없이 일터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아프거나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고, 불길한 꿈을 꾸어서라고. 라오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미신을 믿는 데, 불길한 꿈을 꾸거나, 귀신 등 좋지 않은 것을 보면,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단다. 사례3. 라오스의 학교에서는 라오스어로 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안느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마을사람들에게 도서관을 제안하고, 어떤 책들을 구입하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교과서를 이야기 하더라나.
정치관련 서적은 당연히 구비할 수 없고(정부의 규제 때문), 문학 등 기타분야에 대한 관심이나 개념도 없었단다. 이는 라오사람들의 문화와 관련 있는 듯하다고. ‘공부=생각’이라고 여기니 생각을 많이 하는 건 즐겁지 않은 일이어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부모들이 경계하고, 교육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란다. 라오사람들은 생각이 많은 사람을 불쌍하게 여긴다. 그러니까, 그들 관점에서 나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무지하게 불쌍한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왜 그러고 사니?’일 테지... 헐~ 공부하면 생각많고 결국 불쌍해지는? 한번은 마을 리더를 통해 일을 하려 했었는데, 당과 연계되어 있는 관계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상호신뢰를 찾아보기 힘들었단다. 7년 동안의 성과라면, 다르게 생각하기와 인내심을 배운 것이라고 안느가 말한다. 정말 어지간한 인내심이 아니면 이곳에서 라오사람들과 일하기 힘들 것이란다. 그들에게 뭔가를 하게 하는 것도, 어떤 성과를 만들어 내려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일을 풀어나가는 지혜가 될 것이라고.
서양인인 자기 눈에 처음 이들은 자기개발을 하려들지도 않고 부지런하지도 않은, 심지어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대책 없는 사람들로 생각되었는데,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을 7년 동안 바라보다 보니, 이제 조금은 그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단다. 서양식의 잣대로는 라오스가 원시적이고 가난할지 몰라도, 인간의 삶의 자유라는 잣대로 보면, 그들의 삶이야말로 진정 풍요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며 소탈하게 웃는 그녀를 보니 앞으로 또 다른 7년을 거뜬히 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가난하고 원시적이지만 자유롭게 사는... 자연에 순응하고 소박한 삶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이들. 비록 자신들에 의한 역사기록은 없으나 2천여 년 동안 타 민족의 숱한 침략을 받으면서도 민족과 문화를 유지해 온 라오스. 문호개방 이후, 경쟁과 물질주의를 강요당하고 있는 현재, 라오스가 어떻게 그들 방식대로 그들의 삶을 꾸며갈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처럼 국토의 약 70%가 산으로 덮여있는 라오스.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는데, 그때까지 라오의 역사자료와 과거 왕국의 영토지도가 없어, 프랑스에 의해 현재 라오스의 국명과 영토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한반도 전체 면적과 비슷한 라오스의 땅에 사는 인구는 2009년 현재 약 6백여만 명밖에 안되는데, 1970년대 말까지 진행된 공산당의 급진 개혁으로 인해 많은 라오사람들이 정부 억압을 피해 태국 등지로 떠났고(1970년 대 말 태국에 정착한 인도차이나반도 난민의 85%가 라오사람들이었음) 지금도 나은 삶을 위해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출처 위키피디아, 론리플래닛) 경제, 문화적으로는 태국의 영향을, 정치적으로는 베트남의 영향권에 있는 현재 라오스의 사람들은 평균 하루에 1.5~2달러를 벌며, 20년 동안 세계를 여행한 한 여행자는 라오스를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고요한 나라 중 하나’라고 평했다는데, 동감한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헐~ “지구상 마지막 남은 고요한 나라” 오늘로 약 2주간의 짧았던 라오스 여행을 마무리 한다. 라오스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한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만나면 언제나 환하게 미소 지으며 친절하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관계를 진전시키기 어렵다는 안느와 제프의 말처럼, 말을 건넬수록 난처해하며 대화를 피하는 그들에게 한낱 여행자인 내가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거다. 후~
내일 오전 8시에 썽태우를 타고 씨판돈(Si Phan Don, 4천개의 섬) 인근의 나까상(Nakasang) 마을까지 가서 캄보디아 씨엠리업으로 가는 국제버스를 탈 예정이다. 남은 라오스 낍을 달러로 환전하니, 60불. 이 돈으로 국제버스표도 사고, 비자수수료도 내고 씨엡리업에서 택시비도 내야 되는데, 부족하지 않기를... 변방 시골마을에서 100달러짜리 여행자수표를 든 거지가 되고 싶진 않은데. 헐~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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