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오늘도…???? 이 알코홀릭들~!! 고만 좀 마셔라이~" 술 잘 안 마시는 것을 이제는 알만도 한데, 오늘도 어김없이 술을 권하는 누이와 덩. 오늘도 어김없이 일을 마치고 술상을 차린다. 싸구려 위스키, 소다수, 얼음, 약간의 안주거리, 그리고 통기타. 술친구들은 보통 누이, 덩, 그리고 대학 빈민촌연구동아리 동기 2명 등 4명인데, 술과 기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저녁나절을 보낸다. 오늘은 대학 동아리 후배 2명이 동참했다. 너덜너덜해진 기타 악보를 보니, 오늘 부르는 이 노래가 어제도, 그제도 불렀던 노래인 듯싶다. 매일 저녁 얼굴 보는 친구들인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겠는가. 저녁 내내 기타와 노래 소리로 사무실 곳곳이 채워진다. ‘매일 똑같은 사람, 똑같은 노래, 똑같은 술, 니들은 지겹지도 않냐? 나가서 연애 좀 혀~~!!’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하니, 그냥 ‘헐~’하고 웃고 만다. 헐~ 왜 모르겠는가. 누군들 연애를 안 하고 싶을까. 박봉의 활동비에 집도 없이 사무실을 집 삼아 사는데. 요즘 세상에 이런 조건의 사람과 연애할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지... ‘누이·덩, 맨날 술이야~♫~’ 시민단체에는 유독 노총각, 노처녀들이 많은데, 남자들은 돈이 없어서, 여자들은 사회의식이 강해서 연애든, 배우자든 부담스러운 조건이란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요즘 남녀가 선호하는 파트너감이 대략 짐작돼 좀 씁쓸하지만. 어쩌랴, 이게 현실인 것을... 사실, 남 얘기도 아니고. 헐~ ^.^;; 11월 1일 일요일 오전. COPA(시민행동: Community Organization for People’s Action) 활동가들과 함께 방콕 변두리에 있는 온눗 14구역의 철거민 재정착촌을 방문했다. 1995년에 마을부지가 마련되고, 철거민들은 각자의 재정형편에 따라 집을 짓고 정착했다.
당시 전국빈민조직연대(FRSN)와 함께 주민들이 힘을 합쳐 정부에 철거민 재정착촌 정책 수립을 이끌어 낸 후 최초로 건설된 마을인데, 이후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유야무야되면서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마을부지는 마을주민들이 정부로부터 토지를 임대하는 형식이다. 총 140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현재 이 토지임대료 때문에 골치를 썩는 중이란다. 마을건설 당시 정부와 협상할 때 토지임대료 납부를 개개인별로 정부에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료를 모은 뒤 마을 이름으로 납부하기로 했었는데, 일부 가구가 납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사실, 1995년 철거민들이 재정착촌에 들어온 뒤 조직적인 활동이 많이 느슨해졌다가 2004년 마을 삶의 질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한 주민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다시 조직하기 시작해 마을센터를 만들었고, 현재 마을의 절반인 70가구가 활발하게 동참하고 있다.
“처녀총각, 연애나 좀 하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가구들은 아직 마을센터에 참여하지 않는 가구들이라 한다. 토지 임대료는 내야 하는데, 이 문제로 자칫 마을 내 공동체분위기를 해칠까봐 우려하는 눈치다. COPA 활동가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보지만, 결국 ‘배제’의 칼을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다들 안타까운 표정이다. 이게 현실인 게지. 그저, 그것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을센터는 회원들의 사랑방이자 품앗이 공부방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생협의 수익금 일부는 아이들의 교육지원금으로 쓰인다. 생협 가게 옆으로 재활용쓰레기 수거장이 있는데, 아이들이 재활용쓰레기를 모아오면 그 양만큼 돈으로 적립해 주고, 나중에 학용품 구매 시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재활용은행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11월 2일 월요일. 오늘은 태국의 2대 명절 중 하나인 ‘러이 끄라통’ 축제일이다. 매년 태국력 12월 보름에 열리는데, 연꽃모양의 바나나 잎 배(끄라통)에 초, 향, 꽃, 동전 등을 담아 강이나 호수 등에 띄우며 물의 신에게 지난 한 해동안의 잘못을 속죄하고 소원을 빔과 동시에 액운을 띄워 보낸다는 의미를 갖는단다. ‘러이 끄라통’, 소원을 빌며 명절을 즐길 겸, 노숙자들도 찾으러 다닐 겸해서 덩, 누이, 그리고 방콕노이 노숙자센터 사람들과 함께 방콕 인근에 있는 나콘빠똠(Nakon Pathom)시에 갔다. 방콕노이 간이역(방콕 서쪽)에서 오후 5시부터 기차를 기다리기를 2시간여. 공짜 통근열차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 긴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불평 한마디 없다. 하루 4번 운행되는 방콕과 인근 외곽 도시 간 통근열차는 모두 공짜인데, 도심에 살기 어려운 저소득 도시근로자에게는 아주 유용할 듯싶다. 자연히 도심 내 인구집중도 줄일 수 있을 터.
북적대는 사람들을 뚫고 도착한 곳은 영화상영 광장. 스크린 바로 앞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새벽 1시까지 2~3차례 주변을 돌아다니며 노숙자를 찾으려 다녔지만, 누가 노숙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새벽녘에는 이미 잠든 사람들이 많아 결국 큰 성과 없이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나저나 오늘 밤 잠자리는 길바닥인데, 하필 오늘따라 유난히 날씨가 쌀쌀하다. 배낭을 베게 삼아 몸을 웅크리고 옆으로 누었는데, 스물 스물 몸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에 뼈가 오그라드는 것 같다. 몸을 펴고 싶어도 사람들 오가는 길바닥인지라 대자로 누울 수도 없고... 길바닥 누우니 한기에 뼈가... 그런데도 졸리니 그렇게 춥고 불편해도 계속 누워있게 되고, 이래서 노숙자들이 많이들 동사(凍死)하는구나 싶다. 생애 처음 경험한 노숙. 지붕과 벽이 있는 ‘집’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방콕으로 돌아와 사무실에 도착하니, 오전 9시다. 어제 씻지도 못했는데, 그 상태 그대로 방에 들어와 이불 깔고 누웠다. 아~~~ 천국이다. 이 얇은 요가 이렇게 푹신하게 느껴질 줄이야... 남들 눈 신경 안 쓰고 대자로 뻗고 잘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하하, 하~~아암, 음냐~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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