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동네 상인들, “골목을 지켜라”

[기획①] 재래시장·골목상권, 대기업SSM 싹쓸이에 맞짱뜨기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8/06 [00:10]

위기의 동네 상인들, “골목을 지켜라”

[기획①] 재래시장·골목상권, 대기업SSM 싹쓸이에 맞짱뜨기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8/06 [00:10]
벌서 오래 전 이야기다. 남원이 처가다보니 여름철이면 며칠씩 머물던 때 다. 오랜만에 사위·외손을 맞은 장모는 인근 재래시장에 들러 조기나 한우 등을 샀고, 우린 풍성한 여름 저녁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이런 재미도 사라졌다. 곁에 이마트가 들어서고부터는 재래시장도 동네투어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8월 첫 주말판 신문에 골목상권 이야기가 실렸다. 동네상권을 위협하는 대기업 유통체인에 맞서 골목가게 상인들이 분통을 터트린다는 목소리였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쇼핑몰에 8월 중순 교보문고 개점이 예정돼 있는데, 서울시서점조합이 이를 막겠다며 지난 31일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신청을 냈다는 소식과 함께.

서울에만 1천여개가 넘는 중소서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게 고작 2백개 안팎. 교보문고 등 기업형 대형서점에 밀려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 교보의 경우 광화문점 하나의 연매출이 1천억원대 이상이라니... 전국에 13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으니 재래 서점들에게 이들의 존재가 어땠을 지 짐작조차 어렵다.
 
“교보문고 개점을 막아라”
 
요즘 여기저기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에 반발하는 중소상인들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십 년 동네 어귀를 지켜왔던 슈퍼나 가게·점방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면서 말이다. 서울의 도심 곳곳 지역민의 애환이 서린 재래시장도 이제 앙상한 골조만 남긴 채 문을 닫거나 사라지고 있다.

▲ 오랜 세월 동네 가정에 식품과 생필품을 공급해온 재래시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대기업의 백화점, 대형 활인매장에 이은 골목상권 진입에 마지막 남은 동네상가들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최방식 기자


화려하고 고급스런 백화점이 도심을 점령하고 도시민의 시선을 사로잡아 온 건 사실이지만 그 건 그거려니 했다. 재래시장이나 점포들은 동네의 또 다른 업역인 줄 알았다. 하지만 소박한 생각이었을 뿐, 자본은 달랐다. 주·부 도심 상권을 접수한 데 이어, 골목상권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월마트나 까르푸, 그리고 도심 외곽에 킴스클럽, 이마트, 무슨 아울렛 어쩌고 하는 건물이 하나 둘 늘어갈 때는 그냥 싸게 파는 매장이 생겼나 싶었다. 얼마나 싼지, 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눈요기나 좀 해볼 생각에 한 번 두 번 들렀던 게 이렇게 습성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마트의 1호점은 93년 생긴 창동점. 삼성계열사였다가 분리한 신세계그룹이 야심차게 준비한 유통사업. 유통분야에서 롯데에 이어 현대에 밀렸던 신세계가 절대 강자로 등극하는 덴 이마트가 있었다. 신세계 매출에서 이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3/4이나 된다고.

애초 유통업의 핵심은 백화점이었다. 재래시장(또는 골목상권)은 먹잇감으로 여기지도 않았을 터. 백화점 경쟁에서 롯데·현대에 밀린 신세계가 야심차게 들고 나온 게 바로 대형 할인매장 이마트. 15년 여 만에 유통업계 최강자가 됐다. 수도권에 63개, 기타 도시에 58개를 열었다.
 
이마트, 유통업계 공룡 등극
 
바야흐로 유통시장이 고급 백화점과 중저급 할인매장으로 재편된 것이다. 대형 할인매장으로도 생필품·식품 시장을 싹쓸이하며 재래시장과 슈퍼마켓, 그리고 거의 모든 종류의 동네 골목 생필품가게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주·부 도심 거의 대부분 상권을 쓸어갔다.

그래도 동네 재래상권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 마지막 남은 골목에 공룡이 들이닥친 것. 중소형 할인매장인 이른바 슈퍼슈퍼마켓(SSM)이 그 장본인. 이마트가 권역별 대형 할인매장을 석권했다면 SSM은 골목 슈퍼마켓과 각종 생필품·식품 가게를 노리고 있다. 대기업들이 24시편의점으로 슈퍼마켓을 넘어뜨린 것도 모자라 SSM으로 골목상권을 송두리째 접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재래시장이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에 더 이상 버텨날 도리가 없다. 점포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오랜 세월 생계를 유지해왔던 정든 터전을 터나고 있다.     © 최방식 기자


밀리고 밀려 낭떠러지에 다다른 소상인들. 마지막 죽음을 직감했을 성 싶다. 동서고금의 병법이 일러주듯 배수진은 힘을 배가시킨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결심을 하니까. 식품·생필품·의류·완구·서적 뿐 아니다. 주유소·제과점·꽃집·안경점·미용실·차정비소·화장품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 대기업의 음험한 문어발 촉수에 앉아서 당할 순 없었을 테니까.

중소상업인들의 반발은 이렇게 터져 나온 것이다. 이마트도 삼성자본이었는데, 이번에 말썽을 빚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소형 할인매장)도 같은 자본. 2006년 기준 6조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니 놀랍다. 대형 할인점 1백여개에 이어 소형 할인점(익스프레스)을 전국 방방곡곡에 무서운 기세로 늘려가는 중이란다.

지난 달 골목가게들의 반발 소식이 언론에 대서특필 된 건 바로 이 홈플러스에 대항한 슈퍼마켓 소상인들의 단말마 같은 외침 때문이었다. 골목상권을 장악하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상대로 소상인들이 중기중앙회에 12건이나 사업조정을 신청했던 것. 지난 달 16일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이 옥련동에 개점 예정이던 체인점을 상대로 사업조정을 신청 한 것도 그 중 하나.
 
소상인들, 대기업 ‘맞수’로...
 
골목상권 접수에 나선 대기업은 삼성자본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외에도 롯데슈퍼 4건, GS슈퍼 1건, 교부문고 1건이 더 있다. 주유소협회도 5일 대형마트(이마트 등)의 주유소사업자 대상 사업조정을 신청할 계획이란다. 제과협회도 유사한 건을 준비 중이다.

전국의 재래시장과 슈퍼마켓, 그리고 동네 상인들의 연대, 그리고 소비자들의 소상공인 살리기 캠페인이 시작됐다.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제과협회, 화훼협회, 화장품판매업협동조합, 안경사협회 등 30여개 소상공인 단체들도 오는 6일 ‘전국소상공인단체협의회’를 결성, 대책마련에 나선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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