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초행, 술 절어 하얗게 남았습니다”

[길거리통신] 개발독재 망령 분단유산 다리 타고 청정 섬 오염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7/07 [12:17]

“완도초행, 술 절어 하얗게 남았습니다”

[길거리통신] 개발독재 망령 분단유산 다리 타고 청정 섬 오염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7/07 [12:17]
해상왕 장보고와 후예들의 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주말 업무여행 길이지만 첫 발걸음이라선지 완도는 여유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과음에 휴양은 그리 못될 성 싶은데, 바다 보양식은 맘껏 먹었나이다. 술·음식 빼곤 머릿속이 하야니, 못된 습성 여전한 거죠. 얼마만의 호사인데, 엎질러버린 겁니다.

일 나가는 미디어의 취재차 떠난 길입니다. 승용차로 6시간 쯤 걸리는 장정이네요. 토요일 정오 좀 덜돼 출발해 그런지 길은 그리 막히지 않습디다. 내비게이션의 최단 경로를 따라갔는데, 광주-나주-영암 쪽 도심을 통과할 때 좀 지체한 것 말고 그리 불만스러운 건 아니었습니다.

호남고속도로가 끝나는 광주에서 섬에 들어서기 전까지 두 번이나 이른바 ‘포스’를 느낄 수 있었죠. 하나는 월출산이고 또 하나는 두륜산. 왕인박사가 왜 거기 살았는지, 서산대사 같은 용기 있는 인물이 어떻게 출세했는지, 그 까닭을 짐작케 합니다.

▲ 완도행 여행길에 이른바 '포스'를 처음 느낀 영암 월출산. 무등에서 땅 끝 두륜까지 이어지는 남도의 지붕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 최방식 기자

▲ 땅끝 마을 우뚝 솟은 두륜산. 남도를 지키던 서산대사의 호령소리가 찌렁찌렁 들리는 듯 합니다.     © 최방식 기자


월출(月出)이 남도의 아버지이자 하늘이라면 땅 끝 마지막 봉우리 두륜(頭輪)은 자애로운 어머니라고 해야 할 겁니다. 차를 멈추어 땅을 딛고 서 ‘기’를 받고 싶었는데 여유롭지 않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답니다. 안타까움에 차창 밖으로 셔터를 눌러댔지만 차는 또 왜 그리 빨리 달리는지, 속이 다 상하더이다.
 
“얼마만의 호산데, 엎질렀으니”
 
완도는 해남 땅 끝자락에서 연육교를 타며 시작됩니다. 완도대교를 넘는 데 왼쪽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다리가 흉물스럽습니다. 지금은 콘크리트 다리가 오른쪽에 생겨 아무도 사용하는 이가 없는 모양인데 한국전쟁 당시 유명한 사진 한 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폭파로 흉물스럽게 떨어져 내리고 기울어진 다리 난간 위로 피난민이 꽉 들어찬 바로 그 장면. 짐작하셨을지 모르겠는데 한강철교 고철을 뜯어다 여기에 재활용했다는 군요. 생김새까지 비슷합니다. 분단의 유산이 완도에 와 우두거니 서 있는 것이지요.

4차선 국도가 완공되면 지금 사용하는 시멘트 다리보도 훨씬 높고 넓은 다리가 들어설 테니 한강철교를 재활용한 완도대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옛 것을 다시 뜯어내려면 또 서글프겠죠? 좋든 싫든. 피와 땀, 그리고 애환이 서렸으니까요.

▲ 완도읍에서 바라본 군내 제일 항구입니다. 신지도로 이어지는 대교가 멀리 보이고, 그 너머 고금도가 보입니다.     ©최방식 기자

▲ 주변 고금도, 보길도, 신지도 등 완도군 내 섬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완도에는 200여개의 크고 작은 유·무인도가 있습니다.     ©최방식 기자


4차선 고속국도와 대규모 다리 공사로 속살을 파헤친 게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섬 안쪽으로 들어서니 아늑한 어머니 품 속 같습니다. 30여분을 더 달리니 청해진 대사의 동상이 보입니다. 왼편으로 유적지가 눈에 띄는데, 장보고의 흔적 쯤 될까요?

그렇게 찾아든 완도읍. 국내 7대 섬의 도심입니다. 왼쪽 멀리 신지대교가 아련하게 동쪽 다도해상국립공원의 관문 같군요. 눈앞엔 항구를 둘러친 신지도·고금도가 층층이 병풍입니다. 오른쪽 머잖은 곳엔 고산의 한숨이 벤 보길도가 있고요.
 
“한강철교 청정지역 유산되어”
 
완도는 2백여개의 섬으로 된 군(郡)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50여개 남짓. 이토록 아름다운 섬 인구가 매년 조금씩 준다니 서글픈 일입니다. 50여 년 전만 해도 14만 여명이 살았다는데, 이젠 5만이 조금 넘으니 땅 끝 팍팍한 섬살이의 고단함을 짐작케 하지요.

어쩜, 아닐 지도 모릅니다. 한강철교의 재활용과 함께 들어온 개발독재의 망령이 한반도 남단의 천국을 황폐화해버렸을 수도 있겠군요? 오염된 섬사람들은 차비를 마련해 앞 다퉈 버스에 올랐을 겁니다. 북으로 북으로 달려 선망하던 죽음의 도시에 안착했을 테고요.

▲ 완도 초행길에 하룻밤 묵은 펜션. 완도읍과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최방식 기자

▲ 멀리 신지도와 고금도가 내려다보이는 펜션. 기자가 묵은 방에서 바라본 완도항구 퐁광.     © 최방식 기자


남은 이들의 터전도 이젠 상처투성입니다. 백운봉·상황봉을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생긴 완도(본섬). 빙 두른 끝자락에 섬주민이 사는 데, 육지를 향한 4차선 고속국도와 섬 일주도 확장공사로 곳곳이 개발의 삽날에 허물어지고 파였습니다.

완도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펜션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날 지경인데, 가슴이 아려옵니다. 항구 뒷산 높은 곳에 자리한 걸 보니 분명 산자락을 파헤쳐 세웠겠죠? 건축 전문가들도 “힘 좀 썼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고소한 냄새가 시장기를 더해 마당으로 내려오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돕니다. 맛난 음식이 가득 쌓였습니다. 손님을 맞은 이들, 그리고 아내들까지 노력 동원한 모양입니다. 전복 회·구이, 토종돼지 구이·바베큐, 소라·해삼·멍게, 젓갈 양념으로 곰삭은 김치까지...
 
“팍팍한 섬살이 고단함 짐작케”
 
오늘 밤은 왠지 성치 않을 성 싶습니다.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시고. 포기해야겠죠. 모든 상념을 걷어내는 덴 취기가 최고니까요. 식도락에 맡기는 것 말고 도리가 없습니다. ‘주지육림’이 좀 과하다면,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완도 여행길 첫날 밤 저녁식탁에 오른 전복. 회와 구이로 맘껏 먹었답니다. 비싼 전복으로 누린 이런 호사는 또 처음입니다.     © 최방식 기자

▲ 펜션에서 즐기는 완도항구 야경. 신지대교의 조명이 멋집니다만 억지스러움을 덧대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거라 생각해봤습니다.     © 최방식 기자

멀리 무지갯빛 조명으로 번쩍이는 신지대교. 아스라이 비쳐오는 어선의 희미한 그림자. 앞마당 가득 차려진 술상과 식탐의 현장. 펜션 거실의 시끌벅적한 2차. 누군지 모를 이들이 벌인 완도읍 이름도 기억 못하는 조개구이집의 취중 술질. 그리고 옮겨 다니기.

기자는 맨 마지막에 깨어났습니다. 펜션을 마지막 나가는 이가 한마디 지른 소리에 놀라서였죠. 다들 해장이 급했던 것일까요? 난 잠이 더 간절했는데... 서둘러 세수하고 재래시장 한 귀퉁이 예약된 식당으로 가니 또 술입니다.

해장술은 5~6차 쯤 되는 겁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거절했습니다. 아름다운 섬, 술 취한 기억밖에 안 남을까 걱정스러워 결단 한 번 해봤죠. 잠깐의 유혹을 이기면 추억을 더 쌓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요.

오전엔 업무로 바빴습니다. 점심. 포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수산물시장 이층 식당에 다시 한상 가득 차려진 회·해삼·멍게·전복... 복도 없습니다. 인터뷰하느라 몇 점 씹지도 않았는데, 나가야 한다는 군요.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늦었지만 예절을 지킨 셈이라 치죠. 뭐.
 
 
▲ 완도읍과 마주한 군내 신지도에 있는 명사십리 해수욕장. 철 이른 바닷가엔 마음이 급한 아이들 몇이 뛰놀고 있습니다.     © 최방식 기자
▲ 완도읍 수산시장 2층 한 음식점에서 바라본 항구와 신지대교.     © 최방식 기자

“상념 걷어내는 덴 취기가 최고”
 
완도읍과 다리로 이어진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에 들렀습니다. 철이 이른지 긴 해수욕장엔 사람이 몇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개장도 하지 않았군요. 점점이 뛰노는 아이들과 텐트. 커피 한잔에 바닷가 낭만을 즐기고 돌아섰습니다.

재래시장을 보려고 들렀는데 파장이라니요. 5일장이라 구경할 만 했을 텐데. 시장 깊숙이 들어가자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상인들이 건어물을 팝니다. 서대·박대·가오리에 돔·우럭·농어까지. 마른 생선들을 좌판에 쌓아 놓고 호객에 한창이군요.

일행 한분이 무슨 돔 마른 걸 찾느라 시장 안을 다 뒤졌지만 못 찾았습니다. 몇 마리 나온 모양인데 다 팔렸다는군요. 또 다른 이가 취기가 올랐는지, 한 좌판의 서대 모두를 사들고 돈을 치릅니다. 우럭 두 광주리도 샀습니다. 또 가오리 몇 마리까지.

한 좌판의 건어물을 다 사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몇이 나눠가질 수 있도록 따로따로 싸달라고 합니다. 열 개 남짓 좌판들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물론 곱지 않은 목소리죠. “우리 껏도 싼디. 워째 거그치만 다 산다냐~ 잉~”

▲ 신라 때 청해진이 있던 이곳 완도에는 가는 곳 마다 해상왕 장보고 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후예들의 삶속에 엿보입니다.     © 최방식 기자

▲ 완도읍 수산시장 앞 포구. 점심 때라 그런지 한적합니다.     © 최방식 기자

그 할머니 우리 땜에 괜히 욕먹게 생겼습니다. 앞쪽 젊은 아낙은 아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사나운 기셉니다. 혀를 차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얼른 빠져나가는 게 그나마 욕을 덜 먹을 성 싶군요. 잘못 아닌 잘못을 한 셈이니까요. 시기질투를 만들어놨으니까요.
 
“워째 거그치만 다 산다냐~”
 
시장을 막 벗어나는 데 국화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눈에 띕니다. 방앗간 앞 참새마냥 그냥 지나칠 수 없죠. 하나씩 물고 나섭니다. 4개에 천원. 일행 한명이 한 개를 더 달라고 하니 쥔장 한마디 합니다. “긍께, 지금도 머리가 쫌 까졌는 디... 공짜 주면 큰 일 나겄어라우.”

귀경 중 일행 중 한명이 부고를 받았습니다. 늘 그렇듯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위로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침묵해야 할지. 예의 갖추느라 절주한 것이 그만 망각의 행운을 누리지 못하게 한 셈이군요. 차라리 해장술이나 해둘 걸 그랬습니다. 삶은 늘 이따위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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