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수님, 하는 짓 마음에 쏙 듭니다”

언론통폐합·보도지침 ‘땡전 각하’ 미화하는 공원만들기 ‘씁쓸’

박세열 <뉴스툰>기자 | 기사입력 2007/02/14 [17:54]

“합천군수님, 하는 짓 마음에 쏙 듭니다”

언론통폐합·보도지침 ‘땡전 각하’ 미화하는 공원만들기 ‘씁쓸’

박세열 <뉴스툰>기자 | 입력 : 2007/02/14 [17:54]
고종석씨가 한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오늘날 언론이 누리는 거의 무제한의 자유는 정녕 놀랍다. 언론은 그 자신 크게 기여한 바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다.”(고종석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63쪽) 한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한 일을 둘러싸고 전국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린다. 일해공원 문제를 둘러싸고 세간이 시끄러운데, 그 와중에 귀를 막고 있는 몇몇 정치인과 언론이 있고 간혹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도 섞여 있어 또한 불편하다.

80년 쿠데타와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언론 통폐합을 단행하고 보도지침을 만들었다. 검열관은 신문사에 상주했고, 언론은 그 엄혹한 상황에서 머릿속을 단속하고 입을 굳게 다문 것이다. 신문 만화도 예외일 수 없었는데, ‘풍자’ 속에 숨은 의미마저 통제하려는 신군부의 정책은 다음 문구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신문의 경우 현 보도검열이 내용에만 국한됨을 악용, 편집기술을 발휘한 자극선동보도 확대 (1979년 11월 17일 언론통제정책자료 중)", 그리고 그때 ‘편집기술’을 사용했던 한 악랄한 시사만화가를 구속시킨 사건이 일어난다.
▲<한국일보> 1986년 1월 19일자 안의섭 화백     © 인터넷저널

한국일보에서 네컷 만화 ‘두꺼비’를 그리고 있던 안의섭 화백이 1986년 1월 19일자에 “대통령 각하, 오래 오래 사십쇼! 하는 짓이 마음에 쏙 듭니다. 건강하셔야합니다.”는 만화를 그렸다. 물론 이 편지의 수신자가 마지막 컷에 레이건으로 밝혀지지만(당시 레이건은 종양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특유의 빈정대는 표현은 ‘땡전’을 우롱하는 것 같다 하여 결국 안 화백은 연행되었고 신문연재도 중단되고 만다. 가택연금까지 당했던 안의섭 화백은 6월 항쟁 이후인 1987년 8월 25일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국일보>에 다시 연재를 재개할 수 있었다.
▲<경남도민일보> 2007년 1월20일자 권범철 화백     © 인터넷저널

‘전두환 각하 오래 사십쇼’ 필화사건을 회상하던 중 요즘 시사만화에 유달리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는 전두환씨를 보니 감회가 새로운 것은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 알량한 보도지침, 그리고 ‘풍자’를 ‘편집기술악용’이라는 단어조합으로 단순화시킨 후 몽둥이를 휘두르던 그 보도지침이 역사 속에 코미디처럼 남아있지만 권범철 화백의 만화에 나타난 신(합천)군부의 모습은 슬프게도 그리 웃기지만은 않는다.

얼마 전 '일해'라는 이름의 공모자가 응모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등 일해공원 명칭 공모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한겨레는 "경남 합천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 '일해'를 딴 공원 이름을 선정하면서 벌인 주민 설문조사에서 지역유지 등 특정 계층만 표본으로 삼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지만 합천군수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확인하고 있다 한다.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제신문> 2007년 2월 6일자 서상균 화백     © 인터넷저널

하지만 조중동 등 보수신문은 지금 전두환의 아호를 딴 공원이 전두환의 고향에 생기게 된 ‘사태’를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시사만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기개가 충만해야 할 유력정치인들의 소심한 태도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언론의 자유, 그 이상을 구가하는 보수 신문들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그 자유를 그들이 스스로 쟁취했던가?

아니다. 그들 역시 전두환이 저지른 범죄를 충분히 알고, 또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이번 사안에서 침묵하는 것은 스스로 이 나라 민주화 역사에 있어서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다름 아닌 것이다. 만약 작은 지역의 공원이름 하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 한다면, 인천의 맥아더 동상 철거문제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는지 묻고 싶다. 자유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특히 ‘그 자신 크게 기여한 바 없는’ 자유라면 더 그렇다는 말이다.
▲ <경향신문> 2007년 11월 31일자 김용민 화백     ©인터넷저널

유신정권의 ‘향수’가 여전히 코를 찌르고, 나아가 대권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씁쓸한 상황, 그리고 긴급조치 시대에 비양심적 판결로 선량한 시민들을 우롱한 법관명단 공개에 비협조적인 법조인, 나아가 ‘정치공세’ 로 치부해버리는 몇몇 사람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이 아득하기만 한 걸 느낀다. 경향신문 만평처럼 이 모든 것이 전두환을 ‘가마 태우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백주 대낮에 골프를 치러 다니고 수억원 들인 일해공원이 생길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 것이고 따라서 일해공원 문제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인 것이다.

언론탄압 뿐 아니라 차마 형언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추앙받는 사회. 그리고 그 자신 탄압의 대상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탄압’을 이용해 시대를 왜곡한, ‘스톡홀롬 증후군’ 내지 ‘피학증’에 빠진 언론의 모습은 ‘일해공원은 군민의 뜻이며 군민의 뜻을 누가 저버릴 수 있느냐’는 심의조 합천군수(한나라당)의 말과 뒤섞여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래, 뭉뚱그려진 이들 수구세력의 뜻이 한데 모여 이루어지도록 ‘두꺼비’ 만화의 말풍선을 빌어 마음껏 조롱해 주자.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로 마음껏. 

“하는 짓이 마음에 쏙 듭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인터넷언론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