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밝히려다, 술취해 후회막급”

[포토에세이] ‘부처님 오신날’ 비 내리는 오후 봉국사 풍광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5/04 [00:30]

“마음 밝히려다, 술취해 후회막급”

[포토에세이] ‘부처님 오신날’ 비 내리는 오후 봉국사 풍광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5/04 [00:30]
‘부처님 오신날’인 지난 2일 봉국사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도 많은 이들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기자의 발걸음은 조금 늦었습니다. 휴일 늦잠을 즐기는데 잠을 깨우는 문자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오늘 봉국사에 와서 마음을 밝히세요.”

효림 스님의 사자후입니다. “늘 자는 잠 오늘도 자느냐. 그만 일어나 참회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이죠. 바보새 규철 형에게 전화하니 봉국사에 있답니다. 몇몇이 함께서요.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때가 잔뜩 낀 가슴을 닦아내야겠다고 다지면서요.

 
▲ 부처님 오신날 봉국사 마당에 걸린 연등.     © 최방식 기자
▲ 형형색색 연등은 캄캄한 내 마음에 밝은 등불입니다.     © 최방식 기자
▲ 힘 든 세상사 모두 태우고 맑고 깨끗한 마음만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 최방식 기자

 
이른 점심 뒤 봉국사로 발걸음을 옮기니 꽤 흥겨운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창을 하시는 분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도심 산사의 적막을 깨고 있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인지 예년 같지는 않습니다. 카메라에 풍광을 담고 있는데 스님 얼굴이 보입니다.
 
“봉국사 와 참회 하세요”
 
종루에 올라서 행사를 구경하고 계십니다. 곁에는 아는 분들 얼굴이 보이는군요. 스님이 느닷없이 종을 칩니다. 명창이 노래하고 있는데 방해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한마디 하려는데 이러십니다. “종소리로 베이스를 넣어줘야 저 노래들이 더 빛나는 거야.”

얼굴들이 하나같이 밝습니다. 마음속에 묵은 때를 닦아내는 것이니 그렇겠죠? 맑고 깨끗해지는 것이니까요. 경제난의 고통도, 실업과 비정규직의 아픔도, 삶의 무게도, 속속들이 알길 없는 애증도 희로애락도 다 비우고 불심으로 채우는 것일 테니까요.

 
▲ 봉국사 종루에 서서 행사장을 구경하고 있는 효림 스님과 건달들.     © 최방식 기자
▲ 불당에 앉은 꼬마. 뒤 부처보다 불당 밖 소란스런 곳이 더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 최방식 기자
▲ 부처님 오신날 손녀를 데리고 봉국사를 찾은 할아버지.     © 최방식 기자

봉국사에 달라진 게 하나 있더군요. 연못이 하나 생겼습니다. 수구암에서 봤던 그 작은 못이 이곳으로 옮겨온 듯합니다. ‘생명의 자궁’이라고 했습니다. 개구리, 도롱뇽 등 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곳이죠. 몇 개월 만에 찾았는데 그 사이 만든 모양입니다.

막 공사가 끝났는지 아직 생명체가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법 예쁘게 가꾼 흔적이 가득합니다. 못 주변엔 여러 색깔의 철쭉들이 화사합니다. 흐릿한 연못에서 곧 아름다운 생명이 깨어나겠죠? 영장산에 또 하나의 ‘생명의 보고’가 생기는 것일 테고요.

만영 스님이 그랬을 겁니다. 확성기와 사물놀이 소리에 하루 종일 머리가 띵하다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사람이 많이 찾는 날이니 고요한 산사를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확성기 노랫소리는 역시 산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노인 신도들은 흥겨워하더군요.
 
 
▲ 정성을 쓰고 있습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담아 세상을 덮으려는 것이지요.     © 최방식 기자
▲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여한 불자들.     © 최방식 기자
▲ 봉국사에 새롭게 자리잡은 '생명의 자궁'. 영장산의 생명을 잉태하고 축이는 연못이 될 겁니다.     © 최방식 기자
 
“베이스 넣줘야 노래 빛나”
 
오후 네시를 넘기는 데 풍물소리가 그치지를 않습니다. 아마 인근에 사시는 노인들 외로움을 덜어드리고 하루라도 흥겹게 하려는 배려같습니다. 하여 우리 일행은 그만 산사를 나서려고 하는데 스님이 주지 방으로 부르신다고 합니다.

가니 음료수며 과일을 준비해놓고 좀 들라고 권합니다. 인사하시는 것이지요. 시와 문단이야기, 그리고 세상만사가 화제였을 겁니다. 자원봉사자로 오신 몇 분들도 그만 돌아가야 한다며 스님께 인사하러 들릅니다. 저희도 그만 가겠다고 인사하고 절을 나섰습니다.

탄천 가에 있는 순댓국집에 들렀습니다. 당연히 곡차 한 잔 하려고요. 그런데 이소리 시인 카메라 이야기가 화젭니다. 글쎄 하루 전 인사동을 오가며 술을 좀 많이 마신듯 한데 글쎄 디지털카메라를 잃어버렸다는군요. 글 쓰려면 취재수첩만큼이나 중요한 도군데...

 
▲ 아기 부처를 씻기고 있습니다. 그 처럼 맑고 깨끗해지기를 기원하며.     © 최방식 기자
▲ 염원들이 빨강, 파랑, 노랑 글씨가 돼 영장산 봉국사 앞마당에 달렸습니다.     © 최방식 기자
▲ 물이 한 껏 오른 영장산 숲생과 아름다운 봉국사 종루.     © 최방식 기자
 
잊을 만하면 카메라 이야기를 해가며 놀렸죠. 그런데 또 술들을 좀 마시니 목소리가 커지고 건달 태도가 쏟아져 나옵니다. X팔X팔 해가며 남 흉보고 험담하는 게 그리 좋은 모양입니다. 부처님 오신날 마음을 밝히려 나왔는데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 것도 모자라 일행은 또 어딘가에 갔습니다. 뻔 하지요. 송파 어딘가 유종순 시인 술 먹으면 기억하는 술집도 많습니다. 그 집 주인이 스님을 좋아한다나 어쩐다나... 하여튼 이유 없는 무덤은 없습니다. 그게 다, 술 한 잔 더 하자는 것이지요. 다 취해가지고.
 
“이유 없는 무덤은 없어요”
 
전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튿날 어딘가 가야하는데 술이 깨지를 않아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내가 왜 이리 퍼마셨을까’ 후회하며. 마음의 때를 닦아내겠다고 나선 날인데, 그리 못한 하루였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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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흔 2009/05/07 [12:44] 수정 | 삭제
  • 퍼 마시지 않으면 落이 있겠습니까?
    말이 아주 꼬부러졌던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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