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세상, 곧 돌려놓겠다는 눈부신 약속

[길거리통신] 설국 한계령은 지친 내 어깨 다독이며 내려가라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2/05 [14:50]

눈꽃세상, 곧 돌려놓겠다는 눈부신 약속

[길거리통신] 설국 한계령은 지친 내 어깨 다독이며 내려가라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2/05 [14:50]
눈꽃 세상에 푹 빠졌습니다. 주말 뜻하지 않은 여행이 안긴 횡재였죠. 한계령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색시의 품이었습니다. 누나 시집갈 때 줄려고 타놓은 하얀 이불솜처럼 포근한 꿈의 나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도입부가 생각나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악 준령은 곧 지친 내 어깨를 다독이며 어서 돌아가라고 손짓합니다.

여행은 설렘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눈꽃세상 구경은 느닷없이 찾아왔습니다. 미친소 촛불집회에 갔다 20년만에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주말 양평의 한 콘도에 술자리가 생겼습니다. 밤늦도록 마시고 이튿날 중미산 자락을 어슬렁대다 돌아오는데 속초엘 간답니다. 김밥을 싸들고서요. 이런 땐 말이 길면 잔소리라 하더이다.
 
"짜증, 눈 녹듯 내려않을 걸요"
 
철지난 바닷가를 간다며 고민도 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갈림길에 다다라 잠시 걸음을 멈추는 게 예의죠. 하지만, 그럴 여유도 없나봅니다. 휴대폰 문자 한 줄 받고 그냥 따라가야 했으니까요. "좀 밀리거나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짜증내지 마셔요. 눈을 보면 갑갑한 마음이 눈 녹듯 내려앉을 거니까요."

▲ 여행은 설렘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눈꽃세상 구경은 느닷없이 찾아왔습니다.     © 최방식 기자

▲ 내설악 능선을 넘고 남설악으로 돌아드는데, 벌써부터 하얀 세상이 펼쳐집니다.     © 최방식 기자


눈이 좀 덜 녹았거니 여겼습니다. 한계삼거리를 지나 고갯길로 접어드는 데 날씨가 돌변합니다. 10분여 더 오르니 눈발이 희끗희끗합니다. 내설악 능선을 넘고 남설악으로 돌아드는데, 벌써부터 하얀 세상이 펼쳐집니다. 앞자리의 주인공들은 노면걱정인데, 전 카메라부터 챙겨들었습니다.

장수대를 돌아 대승, 소승폭을 넘어 한계령에 막 멈춰서니, 아! 이런 하얀세상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같은 여정이 한두 번이 아니건만 이토록 아름다운 눈꽃 세상은 또 처음입니다. 눈 덮인 익숙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 낯설어서 아름답다고 해두죠. 미시감(자메뷰)을 떨치며 눈송이 사이로 슬쩍 고개를 내민 설악은 늘 같은 인사말을 건네옵니다.

준령 험한 여정 때면 언제나 이 노랫말을 떠올렸습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한계령에 막 멈춰서니, 아! 이런 하얀세상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같은 여정이 한두 번이 아니건만 이토록 아름다운 눈꽃 세상은 또 처음입니다.     © 최방식 기자

▲ 눈 덮인 익숙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 낯설어서 아름답다고 해두죠. 마냥 좋아 주차장 바닥에서 눈놀이를 하는 꼬마 숙녀는 추위를 잊었습니다.     © 최방식 기자


'시인과 촌장' 멤버 하덕규 씨가 26년전 어느 날 삶의 용기를 찾고 완성한 곡이라죠. 전 양희은 노래로만 익숙하지만요. 실은 원작 시인이 따로 있다는 군요. 아마, 시인은 설악의 소리를 들은 듯합니다. 마음을 열기 전에는 느낄 수 없던 그 외침을요.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우지마라, 우지말라 하고..."
 
한계령은 실낱같은 목소리로 전해옵니다. 그만 좀, 비우라고요. 세상을 하얗게 감싸 안았다가도 미련 없이 물러서는 순백의 눈처럼... 눈꽃 너머 하얀 설악은 티베트인들이 평생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던져 껴안는(오체투지) 수미산입니다. 흰색의 깨달음을 주는, 지혜의 너른 품을 내어주는 연인이거나?

하얀색은 사실 빛의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색도 아닌 것이 모든 색을 감추는 마법을 부린다고나 할까요? 하얗게 지새우며 쌓아놓은 납덩이같은 고통도 흔적 없이 지워버리는... 상주(喪主)의 하얀 옷이 이승의 소멸과 저승의 생성을 기원하듯이... 신부의 하얀 드레스가 금생에서 새로운 삶을 상징하듯이요.

▲ 미시감(자메뷰)을 떨치며 눈송이 사이로 슬쩍 고개를 내민 설악준력은 늘 같은 인사말을 건네옵니다.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최방식 기자

▲ 시인은 설악의 소리를 들은 듯합니다. 마음을 열기 전에는 느낄 수 없던 그 외침을요.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최방식 기자


그러고 보니 하얀색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군요. 그리스신화 속 제우스는 하얀 황소였고 천사의 모습은 언제나 하얗듯... 우리에겐 백마, 백록, 백두로 밝음에서 신성으로 다가옵니다. 빨강의 유한성에 갇힌 인간은 하양을 죽음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근대의 화가들은 하얀 영혼의 색깔을 얻으려고 목숨 바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죠. 눈부시게 하얀 도료를 얻으려고 '연납'(탄산납) 가루를 만들었다죠? 미국의 화가 휘슬러는 150여 년 전 납중독으로 사망했답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어느 박물관에서 마주하는 하얀색의 중·근세 그림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은 화가들의 걸작인 셈이죠?

흰색은 빵이고 권위였습니다. 근대 민주주의 상징이었고, 평화이자 삶이었죠. 아실 테지만 화이트는 밀(wheat)에서 왔죠? 백서(화이트페이퍼)는 권위(정부)를, 흰 건축물은 지도자를 상징했죠. '하얀 거짓말'은 싫은 소리가 아닌 것이죠? 여인들의 예쁜 이름 비얀카(Bianca), 블랑슈(Blanche), 제니퍼(Jennifer) 역시 흰색에서 유래했다죠?

▲ 순백의 나라, 설국을 지나 마침내 하얀 포말이 세상을 감싸는 바닷가에 당도했습니다. 납덩이 같던 번민과 고통도 파돗소리에 싹 가셨습니다.     © 최방식 기자

 
▲ 흰색은 미덕은 텅 비우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죠. 순백의 한계령이 곧 나무와 풀, 바위와 흙, 그리고 쪽빛 하늘과 바다를 껴안고 제 모습으로 돌아가듯이. 덧칠의 욕심일랑 이젠 제발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 최방식 기자


"텅 비워라, 아무것도 아니어라"
 
제가 흰색을 좋아하는 건 평화롭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참화 속 하얀 깃발은 생명이니까요.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채색의 세계엔 이미 그 진리가 살아 있습니다. 모든 색은 섞으면 변신하지만 바뀌지 않는 색이 둘 있죠? 검정과 하양. 검정은 자기중심적이죠. 모든 색을 제 색으로 바꾸려하니까요. 하지만 하얀색은 그 반대입니다. 자신을 버리니까요.

흰색은 미덕은 텅 비우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죠. 순백의 한계령이 곧 나무와 풀, 바위와 흙, 그리고 쪽빛 하늘과 바다를 껴안고 제 모습으로 돌아가듯이. 덧칠의 욕심일랑 이젠 제발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시퍼렇게, 샛노랗게, 혹은 시커멓게 바꿔놓으면 본디 모습을 잃고 마는 것이니까요. 곧 돌려놓겠다는 하얀 눈의 약속을 본받아서요.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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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시령 2009/02/05 [18:04] 수정 | 삭제
  • 설악이 참 아름답습니다. 눈이 아름답고. 되돌려주는 하얀 세상이 아름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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