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땅 몽골서 난 사람을 봤다"

[몽골리포트] 초원·사막을 떠나지만 또 남은 경주를 딴 데서...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1/30 [17:47]

"칭기즈칸 땅 몽골서 난 사람을 봤다"

[몽골리포트] 초원·사막을 떠나지만 또 남은 경주를 딴 데서...

윤경효 | 입력 : 2009/01/30 [17:47]
지난 1년간의 활동 정리가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45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쓰고 나니 진이 다 빠진다. 보고서를 쓰기 전에는 머리가 멍하더니,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니, 차곡차곡 내 가슴 속에 쌓였던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조림 준비작업시 우물공사 때문에 애태웠던 것, 성긴 조림장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했던 것을 제외하면 이재권 위원, 박은희 간사, 세케 간사, 성긴 매니저였던 보양씨와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올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올해 몽골지부의 최대 과제가 조림사업에 관한 모든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기에, 참고할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일일이 발품 팔아 정보를 찾고 정리하고를 반복하고, 가끔은 똥개 훈련시키듯 두 번, 세 번씩 조사와 보고를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별 불만 없이 힘을 모아준 우리 팀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 바가노르 조림장. 2m이상 자란 조림(2004년 일군) 나무(왼쪽)와 2008년 5월 심은 조림지(오른쪽).     © 윤경효

▲ 2008년 성긴 조림장. 조림 전후 모습.     © 윤경효


활동가들에게 올 한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보고서 쓰는 것이었다라고 말할 정도이니... 헐~ 장장 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조림사업보고서와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교육홍보사업 보고서는, 한 건의 일을 처리하는데 한나절이 걸리는 이 몽골에서 우리 활동가들의 끝없는 인내와 열정이 없었더라면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열정과 순수가 통했던 것일까. 나에게 올해 활동의 가장 큰 수확은 나무를 70% 가까이 생존시켰다는 것보다 지역주민과 몽골정부의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고, 많은 몽골대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등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에 대해서 거의 정보가 없었던 젊은 청년들에게 몽골의 사막화 문제와 기후변화문제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한 두 번의 교육으로 바로 실천에 옮기는 몽골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들이 칭기즈칸의 후예들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 2008년 바양노르 조림장. 5월 나무 식재 모습(오른쪽)과 7/12 조림장 모습(왼쪽).     © 윤경효

▲ 2008년 8월~10월, 3차례에 걸쳐 3개 조림장의 생존율을 조사했다. 생존여부뿐만 아니라 기후와 나무의 생장관계도 분석하기 위하여 올해부터 나무의 키와 두께도 함께 측정하기 시작했다.     © 윤경효


처음 내가 몽골에 오기 전에 세웠던 비전과 목표는 ‘몽골인의, 몽골인에 의한, 몽골인 및 지구인을 위한 <푸른아시아‐몽골>’ 을 만드는 것이었다. 5개년 계획으로 조림사업을 체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체 재정기반 마련과 교육홍보사업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다. 내가 아닌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막화 방지운동, 궁극적으로 그들이 나와 대등한 파트너가 되기를 원했기에 처음부터 내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 사람과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신뢰’를 얼마나 쌓을 수 있느냐 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할 것이다. 그러나 숙소와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한 몽골에서의 나의 첫발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의심’과 함께였다. 겉으로는 예를 갖추었으나, 그것을 어찌 느끼지 못했을 수 있겠는가.
 
인맥으로 이루어지는 불투명한 일 처리, 한나절도 모자라 때론 일주일 넘게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일... 이런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단계적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몽골친구들의 말이 처음에는 참 못 미더웠더랬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한국적 사고방식의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 약 100여명의 몽골 대학생 환경동아리 ‘마이클럽’ 친구들이 5월~9월까지 3차례에 걸쳐 자원봉사활동을 왔다. 지난 5월, 조림도구가 부족하다 보니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페트병과 책받침 등을 이용해 나무구덩이를 파고 있다.(왼쪽) 인천시민들과 함께 나무를 심고 있는 바양노르 중고등학생들(가운데)과 바가노르학교의 환경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바가노르 조림장에서 지난 3월, 선생님의 지도 아래 바가노르 조림장에 있는 나무들에 눈을 덮어 주고 있는 바가노르 초등학생(오른쪽).     © 윤경효

▲ 2008년 9월 26일 열린 바양노르 환경축제. 환경그림‐글짓기전, 환경영상상영, 환경운동회 등 아이들과 주민들이 환경문제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더불어 한국에서 기증한 의류, 가방류 등을 마을의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하여 그 판매금으로 바양노르 학교에 도서기증을 하였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돈이 다시 마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된다 하니 좋은 옷을 얻을 수 있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자신도 마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얻었다. 이런 것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라고 하나... 마을 사람들의 뿌듯해 하는 얼굴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 윤경효


지난 1년...나는 몽골에서 ‘사람’을 얻었는가...
 
어느새 몽골문화에 익숙해진 나에게 보이는 것은 몽골사람들의 자존심과 독립심이었다. 상대방이 신뢰를 보여주고 예를 갖출 때 그에 상응하는 신뢰와 예를 갖추는 몽골인들. 한 번도 도움을 거저 받은 적이 없다.
 
지금은 어려워 가족과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도 한 치의 비굴함도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배로 그것을 갚을 것이기에...에코바자회를 준비하면서 바양노르 주민들이 보여준 적극적인 참여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 어떤 외세에 의한 착취로부터 자신과 자국을 스스로 지켜낼 것이다.
 
1년이 다 되어 떠나야 할 지금에서야 나는 몽골에서 ‘사람’을 보았다. 지난 연말 송년모임에 먼 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울란바타르까지 와서 함께 열정과 자부심을 나눈 몽골의 동지들...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 큰 선물을 주었다.
 
▲ 2009년 1월 2일, 도르노고비(Dornogov)의 생샨드시 인근에 있는 데친초인호린 사원에서. 겨우 5분을 걷는데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의 강추위와 끝없이 펼쳐진 자갈사막이 나를 맞이했다. 내가 디딜 곳은 이곳처럼 비록 척박하지만 광활할 것이다.     © 윤경효

몽골에서 활동한 지 겨우 1년. 이제 겨우 ‘사람’을 보았을 뿐인데 현장을 뒤로 하고 짐을 꾸려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09년 1월 14일 수요일. 몽골에 온 지 329일째 나는 몽골을 떠난다. 나의 몽골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여기서 끝내지 못한 나의 남은 경주는 아마도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 것이다.
  

 
<2008년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주요 활동성과>

○ 조림 사업장: 총 3곳
  ‐도시형 모델: 바가노르(Baganuur), 성긴(Songino)
  ‐초원형 모델: 바양노르(Bayannuur)
○ 2008년 총 조림규모: 49,807그루(40ha)(1,245그루/ha)
○ 누적 조림규모: 88,351그루(51ha)(2000~2008)
○ 주요 조림수종: 포플러, 버드나무, 느릅, 아카시, 차차르강, 살구 등 10여 종
○ 양묘장 획득 묘목수: 189,000여 본(1, 2년생)
○ 조림 생존율: 평균 약 70%
○ 2008년 조림사업 참여인원: 약 1,000명(한국인 400여명, 몽골인 600여명)
○ 연 평균 고용인원: 58명(1.2명/ha)
○ 2008년 몽골인 환경교육인원: 540여명(대학생 180여명, 초·중등생: 360여 명)
○ 2008년 몽골인 자원봉사자 수: 300여 명
  ‐대학생 100여 명(조림활동, 통/번역), 지역주민 200여명(바양노르, 바가노르)
○ 2008년 소식지 발행: 9회, 총 1,800부(한/몽/영, 3개 국어 온/오프라인 발행)
○ 2008년 몽골내 언론보도 횟수: 20회
‐ 사업활동 보도: 총 7건(한인신문, 교민신문)
‐ 기획연재: 교민신문(8회), 우느드르(몽골 최대 일간지)(5회)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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