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 모르는 삽질, 소가 웃을 일”

[광화문단상] 제 아비를 녹이고 어미를 파헤치는 못된 자식놈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1/02 [16:08]

“‘심우’ 모르는 삽질, 소가 웃을 일”

[광화문단상] 제 아비를 녹이고 어미를 파헤치는 못된 자식놈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1/02 [16:08]
백담사 들머리에 아담한 쉼터(일터)가 하나 있습니다. ‘만해마을’이죠. 한용운 선생의 문학과 자유·진보 정신을 기리는 곳이죠.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구도와 휴양의 공간으로 만든 곳입니다. 부속건물인 ‘심우장’(尋牛莊)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저널 법인 설립을 마치고 식구들이 수련회차 떠났습니다. 발행인인 효림 스님이 실천선양회 사무총장이다 보니 영광을 누릴 수 있었죠. 만해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심우장’에서 뒤틀린 밤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스님은 일이 있어 함께 못했습니다.

수련회라는 게 대부분 그렇듯이 여행지 분위기에 취하다보면 애초 뜻대로 잘 안되기 마련이죠. 늦게 도착해 저녁 먹고 피곤하면 제일 먼저 술부터 찾기 일쑤이니까요. ‘심우’(尋牛)를 모르는 인간들이 모였으니 뭐 별수 있었겠습니까?

깊은 산속이다 보니 술 보급이 여의치 않습니다. 수소문과 궁리 끝에 벽장 깊은 곳에 짱박아둔 양주 한 병을 찾았습니다. 언론이 이렇고, 정치가 저렇고 주절대다 결국 술에 빠져들고. 한 잔 더, 한 잔 더. 수련회는 무슨, 어느새 취해 해롱대고 만 것입니다.
 
심우장(尋牛莊)과 엉덩이 뿔날 놈들
 
늦은 아침 두통과 갈증에 깨어났습니다. 쓰린 속을 달래려 집을 나서는 데 어디선가 본 듯한 벽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들어올 땐 못 봤는데, ‘심우장’(尋牛莊)이 선명합니다. 만해가 총독부와 마주하는 게 싫어 북향으로 짓고 살아다는 성북동의 그 집 이름입니다.

 
▲ 소는 생명입니다. 삶의 본성이죠. 소를 속이고 아비어미를 조롱하는 자식놈들에게 소 이야기를 좀 더 들려줘야 할까 봅니다. 불교에선 소를 인간     ©인터넷저널


누구 집이든 그게 대숩니까. 하지만 ‘심우’는 불교 선종(조계종)의 깨달음의 과정 아닙니까? 소를 찾아 득도해가는 심우십도의 안내자인 소와 해탈을 알 리 없는 속물들. 밤새 퍼마시고 냄새를 풍기며 나서다 그 이름을 발견했으니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날 일’이 아니었을까요?

누군가 ‘군도(群島)문화’라고 했을 겁니다. 보수 정권에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권력의 오만에 주눅 들거나 도피하려고 가족이라는 섬에 칩거하는 풍토라나 뭐라나. 촛불정국, 그리고 몰아친 폭력정권의 보복에 지친 이들이 쌓은 단절의 벽이 높기만 한 것일까요?

소의 해는 그렇게 왔습니다. 무자년을 보내는 마음도, 기축년을 맞이하는 심사도 곱지가 않았습니다. 인권을 높이고 민주주의를 쌓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땀 흘려 왔는데 배신감이 컸던 걸까요?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 소통을 끊었으니 보수반동이 성공한 것일까요?

“하품 빼고 모든 것을 준다”는 소.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는 소. 그 책임에 걸맞게 ‘생구’(生口)로 불린 소. 불행은 그 소를 속인 데서 출발합니다. 성실하고 우직한 소, 순박하게 일 온 국민을 우습게보고 돈만 벌겠다는 무리들이 설쳐대다 사고가 난 것입니다.
 
군도(群島)문화, 단절의 벽은 높아가고
 
그들에게 제 땅, 제 가치, 제 문화 따윈 관심 밖입니다. 국민이 광우병에 걸리든 말든, 먹거리 불안에 숨죽이든 말든, 제 뿌리와 근본이 파괴되고 사라지는 덴 상관치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미국산 쇠고기가 좋다고 시식회를 하고 돈 들여 자랑까지 해댔겠습니까?

아버지들은 자식 놈 대학합격 소식에 외양간에 들어가 한참을 울다 눈물을 닦으며 나왔습니다. 못된 자식 놈 등록금 마련하느라 소 팔아치우던 날, 차마 맨 정신으로 집에 들어갈 수 없어 미치도록 마셨을 겁니다. 애꿎은 담배만 하염없이 빨아대며 긴 한숨을 쉬던 날 자식 놈은 스테이크에 양주를 곁들였죠.

자식 놈들은 대학을 나오고 외국 유학을 가고, 마침내는 아비가 그리도 아끼던 소를 모두 팔아치웠습니다. 외양간도 이젠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리곤 제 아비와 이웃을 속이고 쌀 직불금 타먹으며 한껏 조롱했죠. “그깟 돈도 되지 않는 농사짓고 소 키워서 뭐해.”

못된 자식 놈들은 제 어미의 가슴에 삽질까지 해대기 시작합니다. 땅을 파 돈을 더 벌어보겠다는 겁니다. 어미의 가슴이 찢기고 아비의 심장이 터지는 건 아랑곳 하지 않고 말입니다. 이웃이 죽어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죠. 전부 다 갈아엎으려는 심산입니다.

▲ 때가 되면 해는 기울고 또 솟아 오르지만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은 쉽게 닫히고 열리지를 않습니다. 희망찬 새해라지만 소통의 문을 닫은 이들은     ©인터넷저널

 
소는 생명입니다. 삶의 본성이죠. 소를 속이고 아비어미를 조롱하는 자식놈들에게 소 이야기를 좀 더 들려줘야 할까 봅니다. 불교에선 소를 인간의 본성에 비유한다죠?  선종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길을 소를 찾아 길들이고 마침내 무(無)를 터득하는 과정으로 빗대고 있습니다.
 
그깟 쇠고기·쌀직불금 쯤이야...
 
여느 절에든 대웅전 뒤 벽을 살펴보면 심우십도라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만해의 심우장은 그래서 구도의 집인 것입니다. 심우(尋牛)는 사람이 본래 소유한 청정한 마음을 잃고 방종하며 득실시비를 하다 다시 그 마음(소)을 찾는 과정입니다. 심우십도의 첫 번째죠.

석가모니의 이름은 고타마 붓다인데 '최상(타마)의 소(고)'란 뜻이죠. 불교에서 소의 신성도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까요. 석가모니를 우왕(牛王)으로 일컫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웃 종교인 힌두에서도 소를 떠받드는 데, 신성시하는 시바신의 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소를 농사의 신으로 추앙했습니다. 고대 전설속의 삼황(三皇) 중 하나인 신농씨. 농업·의료·악사(樂師)의 제왕인 그의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의 형상이었다죠. 소는 벽사(辟?)와 기복(祈福), 요사스러움을 물리치는 영험(靈驗)의 동물이었습니다.

소는 은하(銀河)와 견우직녀 이야기에서 견우가 끄는 동물로 등장합니다. 소를 끄는 견우(牽牛)와 베를 짜는 직녀(織女)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선조의 신성이었고요. 동이족의 영원한 임금이자 2002월드컵의 주인공인 치우천왕도 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엉덩이에 뿔이 난 자식 놈들은 소를 멸시합니다.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정치적 야욕을 좀 더 챙겨보겠다고 소를 팔아치웠습니다. 구차스럽다고 아예 때려치우라고까지 합니다. 땀 흘려 일하는 건 옛날이야기라며. 자동차를 팔아야 살지 그깟 소는 쓸모가 없다며.
 
잉카 ‘착한 신’은 이제 사라지고...
 
수천년 영화를 뽐내는 잉카문명에 이런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첩첩 산중 높은 산꼭대기를 덮은 빙하와 눈을 ‘착한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파차마마의 대지 위로 삐쭉삐쭉 솟은 악의 신들을 그 착한 신이 누르고 있어 세상이 평화롭답니다. 그 빙하가 사라지면 세상은 끝이고요.

그 땅을 빼앗은 무리들이 지금 잉카의 산꼭대기 빙하를 녹이고 있습니다. 제 배와 제 곳간만 채우면 되는 줄 알고 추악한 탐욕을 키우면서요. 제 자식의 자식을 죽이는 줄도 모르면서요. 그들을 숭배하는 자식 놈들이 이 땅에도 가득해 심우장도, 빙하도, 소도, 아비어미도 이젠 살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지요?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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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사랑 2009/01/03 [10:00] 수정 | 삭제
  • 올해는 뒷걸음 연습을 많이 해라... 남산에서
  • 랍비 2009/01/03 [09:35] 수정 | 삭제
  • 밟히고 나면 잊어버리겠지요.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그게 희망이니까요.
  • 포크레인 2009/01/03 [00:16] 수정 | 삭제
  • 정말 혼 좀 나야되...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는 새해. ^^*
광화문단상, 심우장, 소, 기축년, 못된 놈, 송아지, 엉덩이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