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앓듯이 정신을 놓고 있었나 봐"

[몽골 277일째] "내 자신을 그만 들볶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윤경효 | 기사입력 2008/12/01 [00:02]

"홍역 앓듯이 정신을 놓고 있었나 봐"

[몽골 277일째] "내 자신을 그만 들볶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윤경효 | 입력 : 2008/12/01 [00:02]
▲ 기타치는 필자.     © 윤경효
지난 8월 3일 일기 이후 3개월 만이다. 한창 바쁠 때도 쓰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었는데, 오히려 각 조림장의 일이 안정되니, 내 손에서도 펜이 떠나버렸다.

마음이 참으로 번다했었다. 정신없이 닥친 일들을 해치우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내 안의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치고 올라오는 것을 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뭔가는 적어야겠는데, 도무지 무슨 얘기를 어떻게 시작해서 맺어야 할 지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쯤이 몽골로 온 지 거의 6개월 정도 되었을 때다. 보통 외국생활 6개월 즈음이 제일 외롭고 힘들다하니, 아마도 홍역 앓듯이 그리 정신을 놓고 있었나 보다.

사춘기시절 이후부터 때때로 밀려오던 ‘외로움’을 친구처럼 겪어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 크게 마음이 흔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여기에 왜 왔던가는 잊어버리고, 아니, 무시하고서 그저 내 좋아하는 사람들 옆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강렬했다.

정말이지, 이제는 내 자신을 그만 들볶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삶에 대한 열정도, 사람에 대한 애정도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3개월여의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저, 그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서 기타도 배우고 영어도 가르치고, 최근에는 성긴 조림장 매니저였던 보양씨에게서 미술도 배우고 있다. ‘시간’만한 지혜가 없다고 한 선인들의 말씀은 맞는 말이다.

▲ 11월 8일 바양노르 조림장.     ©윤경효
그렇게 견딘 시간 끝에 이제야 조금씩 앞이 보이는 것 같다. 몇몇 어른들이 날 보고 살풀이를 해야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해서 그땐 그저 웃고 말았는데, 그 살풀이가 무엇인지 이제는 분명해진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 지 정리가 되고 나니, 마음도 이제 편해졌다.

몽골의 조림장은 이제 동면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초 최종 관수를 마지막으로 경비원 외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조림장의 쥐 떼를 쫓기 위해 풀어 놓은 고양이만이 어슬렁거릴 뿐이다.

9월 중순부터 10℃ 정도로 내려가더니 10월 말부터 영하 20도를 넘보고 있다. 바양노르의 땅은 벌써 80cm 깊이까지 얼었고, 집은 난방을 하는 데도 냉장고다. 양말신고 방한조끼 입고 침대에 들어가도 새벽녘엔 너무나 찬 공기에 잠을 깨곤 한다.

얼마 전 지인이 건네준 전기장판덕분에 요즘엔 그나마 나아졌지만, 찬 공기에 코가 시린 것은 여전하다. 창틀에 방풍테이프를 붙여놨는데 어설펐던지 몽골친구들이 와서 보고는 이러다 한 겨울엔 얼어 죽는다며, 다시 꼼꼼히 발라준다.

▲ 한국에서와는 달리 몽골에서 부츠와 털모자는 패션이 아닌 그야말로 자기 목적을 다하기 위해 존재한다. 11월 20일 왼쪽부터 나, 은희씨, 몽골의 어느 모녀.     © 윤경효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간다는 12월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코 안이며 눈썹에 서리가 내려앉을 정도다. 그래도 몽골의 겨울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다. 겨울의 긴 시간을 함께 보낼 따뜻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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