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이 기부천사 문근영 때린건?

[하재근 칼럼] 색깔론 아닌 역사적 비주류에 대한 경고메시지

하재근 | 기사입력 2008/11/23 [22:38]

지만원이 기부천사 문근영 때린건?

[하재근 칼럼] 색깔론 아닌 역사적 비주류에 대한 경고메시지

하재근 | 입력 : 2008/11/23 [22:38]
용의주도한 지만원의 천라지망
 
지만원 씨의 주장이 철 지난 반공주의, 색깔론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문제가 크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연좌제로 연결된다는 데 있다. 지만원 씨 본인은 연좌제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분명히 연좌제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연좌제는 본인이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친지나 남이 한 일 때문에 불이익 당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의 독자성을 부정했던 봉건시대의 악습이다. 당시엔 ‘시민’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도 없었고, 집단만 있었다.
 
민주공화국에서 우리 모두는 시민으로서 개인이다. 그러므로 연좌제는 있을 수 없다. 난 나의 잘못으로만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만원 씨는 문근영에게 철저히 본인과 상관없는 문제를 걸고 있다.
 
그렇게 건 이유가 꼭 색깔론이나 반공주의가 아니라 해도, 연좌제 자체가 이미 문제다. 왜 문근영이 연좌를 당해야 하나?
 
지만원 씨는 자신이 연좌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근영 본인에겐 나쁜 감정이 없으며, 그의 선행도 칭송받을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문근영이 ‘빨갱이 집안’인 것이 문제다. 문근영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좋은 일을 했어도 그가 빨갱이 자손인 이상, 그의 좋은 이미지는 반드시 빨갱이에 대한 좋은 이미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문근영의 선행이 선전되는 것만큼 빨치산 집안은 좋은 집안이라는 선전도 동시에 확산되는 것‘
 
그러므로 문근영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선 안 되고, 언론도 그를 띄워줘선 안 된다. 빨갱이 집안 자손은 절대로 잘 되선 안 된다. 문근영 본인은 좋지만 조상이 나쁘다는 건데, 이런 게 연좌제가 아니면 뭐가 연좌제인가?
 
좌파의 자손은 이제 선행도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살 테니까. 세상에 이렇게 엄혹한 연좌제가 어디 있나? 공직으로의 출세를 막는 연좌제는 있었어도, 착한 일도 하지 말라는 연좌제는 듣다 듣다 처음이다. 빨갱이 자손은 숨만 쉬고 살아라?
 
아무 것도 하지 말란 소리다. 착한 일조차 해선 안 되는 그들, 언론이 관심 끊어야 하는 그들에게 연좌의 천라지망을 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범위가 넓다.

일단 ‘빨치산-4.3-5.18‘을 문제 삼고 있으므로 과거 좌익-민주화 운동 관련자 모두가 걸린다. 이제 이들의 자손과 관계인들은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신윤복을 조명하는 것마저 국가를 전복하려는 4.3, 5.18 정신의 발로라고 했다. 그렇다면 트집 안 잡힐 일이 세상에 어딨나? 아무 것도 못한다.
 
그 다음으론 호남이 걸린다. 지만원 씨는 ‘김대중‘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문근영을 띄우는 것이 결국 ’호남에 대한 호의적 정서를 이끌어 내려는 다목적 심리전‘이라고 한다. 전라도가 통째로 그물에 걸렸다. 이제 호남 출신은 나대면 안 된다. 호남 출신 중 누가 튀어도 언론은 보도하면 안 된다. 심리전에 놀아나는 것이니까.
 
그 다음으로 ‘노무현‘이 걸린다. 노무현은 영남 출신이다. 친노세력 중엔 영남민주화 세력, 혹은 영남비주류가 있다. 여기서 그물은 호남을 벗어난다. 영남인이면서 감히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배신자라면, 선행도 하지 말고 죽은 듯이 살아야 마땅하다.
 
그 다음으로 반이명박이 걸린다. 지만원씨는 문근영과 김민선을 엮어 ‘이상한 배우들’이라고 했다. 문근영은 조상이 그렇다고 치고, 김민선은 뭐가 문제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쇠고기 개방 시책에 협조하지 않은 죄다. 그런 배우의 영화가 조중동의 극찬 속에 흥행하는 것은 안 된다. 반이명박 진영이 나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역사사관과 드라마가 통째로 걸린다. 신윤복 정도의 인물을 조명하는 것조차 반국가 심리전이니, 앞으로 역사나 드라마는 모두 승자, 부자, 강자를 찬양하는 것으로만 채워야 한다. 사극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우려먹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어긋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언론은 무시해야 한다.

지만원의 노림수는 역사적 비주류에 대한 배제
 
종합하면 ‘좌파-민주화-호남-영남비주류-반이명박’이 모두 걸리며, 역사상의 모든 비주류 인물이 걸린다. 이렇게 넓게 펼쳐진 천라지망이다. 이들은 이제부터 나대선 안 되며, 설사 이들이 선행을 하더라도 언론은 주목해선 안 된다.
 
보수언론에게 정신 차리라는 메시지다. 문화면 기사를 쓸 때 아무 생각 없이 쓰지 말고, 해당 연예인의 출신성분과 작품의 이야기구조를 철저히 분석해 전략적으로 보도하라는 지침이다.
 
그것을 설득하기 위해, 문근영이 좋은 사람이고 아름다운 선행을 했지만, 그로 인해 결국 빨갱이에 대한 호감도가 커진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일성의 교시를 인용해 문화전선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문화연예면 기사라고 무심코 쓰면 절대로 안 되며, 결코 부각되어선 안 될 사람들이 부각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천라지망을 눌러두는 작업인 셈이다.
 
지만원 개인이 욕먹는 것과 별개로, 이런 메시지를 수신한 사람은 분명히 있을 걸로 생각된다. 색깔론은 당연히 나쁘지만, 난 개인적으로 호남 사람을 물고 들어가는 것이 더 지긋지긋하다. 호남출신 연예인이면 선행으로 보도돼서도 안 된다? 그저 숨만 쉬고 살아라? 단지 한 명의 네티즌도 아니고 한국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주류인 우파의 유명 지식인에게서 이런 논리가 나오니,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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