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구한말 말고 '조선말기'라 쓴다

화순투데이 | 기사입력 2017/08/07 [10:16]

한말·구한말 말고 '조선말기'라 쓴다

화순투데이 | 입력 : 2017/08/07 [10:16]

  2017년 8월 10일, 그러니까 다음 주 목요일 규장각 특별전 개막식이 있다.

한국은행 소장 고문헌의 규장각 위탁 관리를 기념하는 전시회이다. 이기지(李器之)의 연행록 『일암연기(一菴燕記)』, 홍대용의 필담 『간정필담(乾淨筆譚)』 등 가치있는 고문헌이 적지 않은데, 이 중에는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정성스럽게 필사한 『한말비록(韓末秘錄)』이란 책도 눈에 띈다.

『한말비록』은 『한국통사』에 첨부된 정오표를 반영하여 완전한 본문을 만들고 중국인 서발을 삭제해 온전히 박은식의 목소리만 남긴 『한국통사』의 독특한 이본이다. 

 

불가사의한 ‘한말’, 개탄스러운 ‘구한말’

   이채로운 것은 제목의 변화이다. 『한말비록』의 필사자는 왜 원저의 제목을 고쳤을까? 여기서 ‘통사’를 ‘비록’으로 고친 것은 필사자의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해되는 면도 있다.

사실 ‘통사’라는 단어 그 자체는 전통적으로 용례가 보기 드문 말인데, 청말 민국초기 중국에서 히트친 오견인(吳趼人)의 역사소설 『통사(痛史)』의 영향 없이 ‘한국통사’라는 제목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한말비록』의 필사자는 ‘통사’라는 생경한 말 대신 ‘비록’이라는 친근한 말을 선택했을 수 있다. 이상한 것은 그가 원저의 ‘한국’ 대신 ‘한말’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박은식의 『한국통사』가 조선말기 고종·순종 시기의 역사인데 이를 굳이 ‘한말’이라 표현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한말(韓末)’이라는 단어는 불가사의하다. ‘한말’이란 말은 있어도 ‘한초(韓初)’라는 말은 없다. ‘한말’이란 말은 있어도 ‘선말(鮮末)’이란 말은 없다. 언제나 ‘한말’의 일방통행이다. 역사학계에서 신라말기와 고려초기를 하나의 시기로 묶어 ‘나말여초’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고, 고려말기와 조선초기를 하나의 시기로 묶어 ‘여말선초’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말기에 이어 다른 시기를 붙여, 이를테면 대한제국기와 붙여 ‘선말한초’라는 말을 쓰는 일은 없고 일제식민지시기와 붙여 ‘선말식초’(?)라는 말을 쓰는 일은 더욱 없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는 ‘나말’과 ‘여말’도 있고, ‘나말여초’와 ‘여말선초’도 있으나 조선시대의 경우 ‘선말’도 없고 ‘선말한초’나 ‘선말식초’(?)도 없다. 그런 가운데 『한말비록』처럼 조선 말기 고종․순종 시기를 가리키는 말은 ‘선말’이 아닌 ‘한말’이다.

   사실 ‘한말’이란 ‘조선말기’라는 뜻이다. ‘한’이란 ‘조선’을 가리킨다. 조선의 26대 임금 고종이 1897년 제국을 선포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한으로 고친 것이니, 조선 이외에 별도의 한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을 창업한 임금은 태조이고 중흥한 임금은 고종이라는 사실은 학부의 교과서나 언론 매체에서 항상 언급되던 사회적 상식이었다.

대한제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두 기념일이 다름 아닌 개국기원절(태조의 건국)과 계천기원절(고종의 제국 선포)이었다. 따라서 ‘한’의 시작은 조선 태조이며 ‘한’의 중흥은 고종인데 결과적으로 국망의 결과 ‘한’의 종말이 고종․순종의 시기로 낙착되어 식민지 조선에서 ‘한말’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제국 사람이 아닌 현재 한국 사람이 조선을 ‘한’이라 부를 이유는 없으며 똑같은 이유에서 식민지 조선 사람이 아닌 현재 한국 사람이 조선 말기를 ‘한말’이라 부를 이유는 없다.

   ‘한말’의 자매어 ‘구한말’은 개탄스러운 단어이다. 우선 ‘구한국’이라는 말부터가 공식적으로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하면서 직전의 대한제국을 호명했던 식민지적 언어이다.

조선 총독부의 신정에 대비되는 구체제라는 감각에서 타자화된 ‘구한국’을 정작 식민지 조선 바깥의 해외 한국인은 선호하지 않았다. 노령 동포가 만들었던 ‘신한촌’, 그리고 미주 동포가 만들었던 ‘신한민보’, 그리고 상해의 독립운동가가 만들었던 ‘신한청년당’을 보라.

바야흐로 ‘구한’과 ‘신한’의 개념 투쟁이 벌어지던 역사의 불기둥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금도 입버릇처럼 ‘구한말’을 발화하는 것은 식민지적 언어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부끄러운 일면이다.

 

‘대한제국기’ 또는 ‘조선말기’라면 될 것을

   이런 식으로 ‘한말’이라는 낡은 언어, ‘구한말’이라는 병든 언어를 대체할 말은 단연 ‘조선말기’이다. 조선 왕조에서 광무·융희로 존속했던 기간(1897~1910)은 대한제국기라 불러주고 그보다 넓은 고종·순종 시기(1863~1910)는 조선말기라 불러주면 된다.

   앞서 가설적으로 ‘선말한초’니 ‘선말식초’니 하는 말을 꺼냈지만 설마 조선말기를 정말 ‘선말’이라 부를 이는 없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선(鮮)’이라는 이름의 식민지적 함의는 생각보다 민감하다.

‘내선일체’를 위시하여 요즘 같으면 ‘한중일’의 뜻을 갖는 ‘일선지(日鮮支)’(=일본, 조선, 지나)라는 단어도 있었다. 다보하시 기요시(田保橋潔)가 지은 『근대 한일관계의 연구(近代日鮮關係の硏究)』에서 보듯 식민지시기 일본인 학자가 한일관계를 ‘일선(日鮮)’관계라 표시했다면 일본 역사학연구회가 엮은 『한일관계사를 생각한다(日朝關係史を考える)』에서 보듯 현대 일본인 학자들은 한일관계를 ‘일조(日朝)’관계라 표시한다.

‘선’이라는 약칭이 부과하는 식민지적 감각을 의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역사학계에서 관성적으로 사용하는 ‘여말선초’에 대해서도 이 용어의 개념사를 유심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선’에 관한 탈식민적 성찰이 반드시 ‘내선’, ‘일선’, ‘만선(滿鮮)’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광복절이 머지 않았다. 광복 70년을 이미 넘겼지만 우리는 과연 식민지적 언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는가? 청산되지 못한 식민 잔재들은 여전히 적폐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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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노관범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부교수

· 논저
〈기억의 역전〉소명출판, 2016
〈고전통변〉김영사, 2014
〈대한제국기 실학 개념의 역사적 이해〉한국실학연구 제25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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