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나는 사막의 서바이버다"

김경수 오지레이서 | 기사입력 2017/04/22 [08:10]

[오지] "나는 사막의 서바이버다"

김경수 오지레이서 | 입력 : 2017/04/22 [08:10]

고뇌하는 털 없는 두발짐승들은 정체성을 찾아서 혹은 극한의 체험을 위해 사막을 달린다. 하지만 모래 언덕을 만나면 속수무책이다. 대가는 가혹하다.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터지는 게 다반사다.

 

 

나는 갈라진 두 갈래 발가락을 편편하게 펴서 모래에 빠지지 않고 사뿐히 걸을 수 있다. 고온에서 그들은 시간당 1ℓ의 수분을 필요로 하지만 나는 41℃까지 체온이 올라가도 신진대사가 정상 작동한다. 일주일간 물을 마시지 않고도 견딜 수 있다.

 

 

털 없는 두발짐승은 내가 못생겼다고 한다. 사실 못생겼다기보다는 사막에 최적화된 얼굴이다. 벌렁거리는 낮은 코, 튀어나온 입술, 눈 주위의 다크 서클, 이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었다. 다리와 발목이 긴 나는 몸통이 지표보다 10℃ 정도 서늘한 곳에 위치해서 지열을 피할 수 있다.

 

 

등의 혹에는 대용량 파워 젤(지방)을 지니고 있다. 목을 굽히고 있어 그렇지 쭉 피면 기린만큼 길다. 나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머리는 늘 태양을 향한다. 머리로 그늘을 만들고 몸에 그늘을 제공한다. 털 없는 두발짐승은 인간이고 나는 낙타다.

 

 

원래 내 머리에는 멋진 왕관이 있었다. 옛날에 부처님은 나에게 가장 작은 고환을 준 대신 가장 아름다운 뿔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슴이 찾아와 서역에서 동물잔치가 있다며 내 뿔을 빌려갔다. 잔치에서 만난 동물들이 사슴의 뿔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자 사슴의 마음이 변했다.

 

 

다음 날 돌려주기로 했던 강가에서 매일 기다렸지만 사슴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사슴은 멋진 내 뿔을 갖게 되었고, 뿔을 잃은 나는 지금도 물을 한번 마시고 먼 산을 쳐다보기도 하고,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는 습성이 생겼다.

 

 

아주 옛날 내가 사는 사막은 공룡들의 놀이터였다. 잽싸게 달려 다니는 설치류나 갑옷으로 무장한 느릿한 갑각류에 비하면 나는 사막의 공룡이다. 공룡은 멸종 했지만 난 이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은 최고의 서바이버다.

 

 

이 척박한 땅에서 나는 생존을 위해 가시덤불과 씨앗 그리고 동물의 뼈와 가죽까지 생명체의 흔적은 모두 먹어치운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해진 것이다. 비록 내 멋진 왕관을 잃었지만 말이다.

 

 

나는 전투에 임하면 시속 2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지만 좀처럼 달리지 않는다. 사막에서 만큼은 체온 상승과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히려 코끼리처럼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말이 빠르기는 하지만 나처럼 멀리까지 가지는 못한다. 가끔 주인을 등에 태우기도 하고 수백 kg의 짐을 싣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주인을 태우고 2006년 아타카마사막과 2009년 나미브사막을 건넜다. 발톱이 죽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긴 것 외에 심한 부상은 없었다. 내 주인은 털 없는 두발짐승에 앞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다.

 

 

나는 콧물과 눈물도 재활용한다. 콧김으로는 거의 수분을 방출하지 않는다. 모래 바람이 불면 코를 닫으면 되고, 진한 눈썹으로 눈을 덮고도 멀리까지 볼 수 있다. 작은 귀엔 많은 털이 있어 모래바람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나는 낮에 열을 저장했다가 밤에 기온이 내려갈 때 수분을 아껴서 열을 식힌다. 몸이 일종의 지속가능한 신재생 에너지 판이다. 추운 사막에서 새벽이 열리면 항온 동물인 주인은 뼈 속까지 한기를 느끼지만 나는 체온이 34℃까지 떨어져도 견딜 수 있다.

 

 

나도 몸 안의 수분이 20~25% 빠지면 위험해진다. 그런데 털 없는 두발짐승의 탈수율 한계는 10~12%이고 한 번의 수분섭취량도 나에 비해 1/50밖에 안 된다. 땡볕 아래 모래언덕에 오래 서 있으면 조난을 당하거나 쓰러질 확률이 높다. 2005년에 주인을 태우고 고비사막을 건너다 길을 잃고 몇 시간을 헤맬 때는 물 없이 5시간을 버텼다.

 

 

주인과 2013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정글을 달릴 때에는 녹색 전갈을 봤다. 사막에 사는 전갈을 정글에서 본 순간 혹시 녹색 낙타도 있을까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정글에서 녹색 낙타는 발견하지 못했다.

 

 

나도 때론 버거울 때가 있다. 주인을 태우고 사막과 오지를 건널 땐 말하기도 힘들다. 모래언덕을 오를 땐 가쁜 숨을 몰아쉰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여기서 끝인가?’, ‘이제는 자신이 없었다!’고 되뇌지만 차마 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더 억울한 건 내가 메르스균을 인간에게 옮기는 원흉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메르스균의 숙주에 불과하다. 나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놈은 박쥐인데 말이다. 평소에는 온순해보여도 나를 귀찮게 하면 가끔 침을 찍찍 뱉거나 발로 차고 무는 건 사실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주인을 태우고 사막과 오지를 횡단하는 꿈을 꾼다. 네 다리를 공손히 꿇고 주인을 등에 태우고 춤을 추고 싶다. 그곳에는 문명세계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진귀한 자연의 선물이 너무 많다.

 

 

공룡화석이나 멋진 수석 하나를 발견하면 그걸 주인에게 선물 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든 나를 찾을 리도 없고 모든 것이 편해진 요즘 세상에 시간과 돈과 위험 부담까지 감수하며 사막을 찾아 나서는 두발짐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남들이 갖지 않은 두 가지 습성이 있다. 석양이 지는 황혼이 되면 내가 걸어온 길을 잠시 뒤돌아보고, 새벽녘에는 오늘 걸어가야 할 곳을 바라본다. 나의 이런 습성은 행복을 좇아 살아가는 고뇌하는 털 없는 두발짐승의 모습일 수도 있다.

 

 

지나온 길을 잠시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피는 것은 그들의 인생에도 꼭 필요한 자세이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방향을 분간할 수 없고, 허둥대며 뒤만 돌아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하루에 새벽과 밤이 있는 건 앞을 내다보고 뒤를 돌아보라는 자연의 섭리인 게 분명하다.

 


원본 기사 보기:모르니까타임즈

  • 도배방지 이미지

오지기록 사마 서바이벌 게임 관련기사목록
포토·만평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