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공시족 무능과 '월급루팡' 부장의 무능

김정웅/ 청년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2/19 [19:45]

노량진 공시족 무능과 '월급루팡' 부장의 무능

김정웅/ 청년 칼럼니스트 | 입력 : 2017/02/19 [19:45]

 

 “... 어느 스터디에 갔더니 장수생이 자기가 공부 좀 많이 했으니까 알려주겠다는 식으로 선배라도 된 마냥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예요. 그 사람 보니까 장수생 진짜 싫더라고. 장수생이 장수생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기가간중 문재인 후보가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 컵밥 포장마차에서 고시생들과 함께 컵밥 및 고시학원 방문,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격려했다    

 

 

전문직 자격증 시험, 7·9급 공무원시험, 고등고시, 대기업·공기업 공채시험, 의전원·치전원·약전원·로스쿨 입학시험에 수능 시험까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험’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경쟁이 극에 달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넘치는 인력에 비해 만족스런 삶을 영위하게 해줄 수 있는 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는 우수한 재능과 필사의 노력 그리고 약간의 행운이 뒤따라준 소수의 인재만이 극한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 경쟁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재수, 삼수의 수험생활을 거쳐 소위 말하는 ‘장수생’이 된다. 일전에 필자가 준비했던 어느 시험도, 이 땅의 시험들이 대체로 그렇듯 응시생에 비해 턱없이 좁은 문으로 인해 장수생이 차고 넘쳐나는 시험이었다. 시험공부를 위해 참여하던 한 스터디에서 비교적 나이가 어렸던 한 수험생은 장수생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사실 그녀가 뒤에 덧붙인 “장수생이 장수생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가 잘못된 행동을 한 건 순전히 개인의 인격과 성품, 타인을 대하는 태도 등에 모자람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녀의 말은 시험을 오랜 기간 통과하지 못하는 그의 ‘능력의 부족’까지 함께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말은 남에게 무익한 설교와 훈계를 일삼는 이에 대한 비판이었을 테고, 뒤의 “장수생이 장수생 된 데는...”이라고 덧붙인 것은 불쾌한 감정으로 인해 나온 다소 과격한 언행이었을 테다. 인격의 부족과 능력의 부족을 혼동한 것도 불쾌감으로 인한 감정의 동요 탓이라고 하면 완전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함께 듣던 스터디원도 “그래, 장수생들이 좀 그렇다니깐”이라고 맞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모인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장수생들에 대해 위와 비슷하게 과격한 견해를 내비치는 글이 게재되는 것을 보며, 이런 식의 혼동이 생각보다 흔히 일어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험’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인력에 비해  자리가 부족한 이 나라에서는 소수의 인재만이 경쟁을 뚫고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재수, 삼수를 거쳐 소위 말하는 ‘장수생’이 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얼마 전부터 한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친구의 말이다. “우리 부장은 일도 하나도 안 하는데 잘난 척 엄청 심하고 애들 잡기만 해. 솔직히 우리 부장이 여기서 나가면 어디 가서도 그 월급 못 받아. 그러니까 회사에 매달려서 월급 도둑질 하는 거야” 사실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푸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흔한 푸념 속에도 개인의 인격적 완성도의 결여와 능력의 부재는 혼동되고 있었다.

 

사실 필자는 그가 실제로 흔히 말하는 ‘월급 루팡’이라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에서 한 달이라도 더 버티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별도의 비판 사유가 될 수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무능한 부장’(그분의 무능력에 대한 증언이 사실이라면)이란 분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 어려운 나이. 현업에서 일하는 마지막 공간이 될지 모를 직장에서 한 해, 한 달이라도 더 버텨보려고 애쓰는 그가 시작하는 하루하루는 어떤 기분일까... 그 무엇보다도, 미래의 나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한 개인이 무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쉽게 단언하기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무능력함에 대한 비판이 금지된다면, 오판과 실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친 지도자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얼마만큼의 무능이, 혹은 어느 위치의 사람의 무능력함까지가 비판의 대상인지를 규정하는 일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능에 대한 비판 중 일부는, 어쩌면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딘가 모르게 서글프다.  

 

 

인권연대 [청춘시대]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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