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이지만 박근혜를 키운 건 노무현이다"

이진우 소장 | 기사입력 2017/01/30 [11:23]

"역설이지만 박근혜를 키운 건 노무현이다"

이진우 소장 | 입력 : 2017/01/30 [11:23]

[신문고 뉴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 = 박근혜는 어떻게 정치 지도자 반열에 올랐을까?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그의 신분은 전직 대통령의 딸 초선의원, 그런데도 그녀는 1997년 대선에서 실패했으나 실질적 신한국당 대주주인 이회창 대표의 독선적 당 운영을 비판하며 탈당, 자신의 신당인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그러나 미래연합은 군소정당도 아닌 말 그대로 박근혜 1인정당이었다. 하지만 이회창은 박정의 향수가 짙은 TK의 전폭적 지지가 필요했으므로, 다시 합당이라는 절차를 통해 2선이지만 의원경력 3년 남짓인 박근혜를 부총재로 예우, 대선에서 활용했다. 그리고 이회창은 대선에서 졌다. 졌으되 차떼기대선자금을 들켜 당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후퇴했다.

 

이후 한나라당이 당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박정희 향수...박근혜는 그렇게하여 거대정당 한나라당을 아버지의 후광으로 접수했다. 그러나 접수 후 실질적으로 박근혜를 키운 것은 노무현이다. 따라서 박근혜는 자신의 실력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정치지도자 반열에 오른다. 그러면 노무현은 박근혜를 어떻게 키웠을까? 아래 그 사례를 간략하게 5가지로 요약한다.

 

 

 

 1.

한나라당 대표로서의 박근혜의 화려한 등장은 노무현 탄핵 때문에 가능했다. 노무현이 무리하게 탄핵되어 탄핵역풍이 불지 않았다면 박근혜가 거대 보수정당의 대표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회창 체제 하에서 끝내 그녀가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2.

노무현 집권기간 중 치러진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참패를 거듭했고, 그것이 박근혜의 선거 불패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것은 박근혜가 잘해서가 아니라 노무현과 여당이 너무 못해서다.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송두율 사건 등으로 지지세력은 사분오열되었다.

    

3.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도 박근혜의 몸값을 올리는데 단단히 한몫했다. 비록 야당대표이긴 했으나 장관직도 총리직도 수행해보지 못한 그녀에게 대연정 체제하에서의 책임총리를 제안했다는 것은 현직 대통령이 그녀의 실력을 인정해줬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과정에서 "참 나쁜 대통령"이 나왔다.

    

4.

노무현이 추진한 행정수도 이전의 최대 수혜자가 박근혜라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TK출신이라는 핸디캡과 강경보수라는 그녀의 이미지를 퇴색시키는 데에 행정수도 이전 이상의 호재가 없다. 충청권의 기대에 부응하고 정파가 다르더라도 합리적 정책은 수용한다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5.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국면에 노무현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도 박근혜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45%대 25%로 지지율 격차가 상당히 크게 났던 상황에서 손학규를 빼내고 BBK사건의 핵심 김경준을 국내로 송환한 것은 경선 국면을 초접전으로 몰고가는 계기가 되었다.

    

뱀발.

노무현과 박근혜 사이에는 평행이론도 존재한다. 노무현은 2004년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었고 박근혜는 2016년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의 야당은 너무 오만하여 탄핵역풍을 자초했고, 현재의 야당은 이를 교훈삼아 매우 조심하며 탄핵역풍의 여지를 만들지 않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노무현을 자살로 몰고가는 데에 앞장섰던 우병우와 최재경이 박근혜 정부에서 연이어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된 것이다. 이는 어쩌면 박근혜가 자신에게 도전하는 문재인의 견제용을 아니었을까? 즉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그리고 측근들의 비리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검사들이므로 이들로 직간접적 문재인과 친노들을 행보를 제약하려고 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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