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돛단배로 항해, 실감나지 않는다

수피아 여행작가 | 기사입력 2017/01/23 [09:41]

인도네시아 돛단배로 항해, 실감나지 않는다

수피아 여행작가 | 입력 : 2017/01/23 [09:41]

“바다를 항해하다가 상어를 만나면 어떻게 해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바다를 보며 문득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탈 요트는 나무로 만든 인도네시아 전통 무동력 배이다. 망망대해에서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바닷속으로 입수를 해야 하는데 만약 그때 상어가 나타난다면? 어릴 때 봤던 영화 죠스도 나의 상상력에 한몫했다. 어쨌든 나의 걱정 반 호기심 반 질문에 브라더 쏭은 대답했다.

 

 

“반갑죠”

    

3초 정도가 지났을까, 나는 멍했다. 그의 대답은 날카롭고도 재빨랐다.

 

인도네시아 평화 항해 훈련을 10년간 이끌어 오고 있는 ‘개척자’ 리더인 송강호 박사님. 우리가 브라더 쏭이라고 부르는 그는 미소를 띠며 우리가 항해하는 술라웨시 섬 인근에는 상어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3주 뒤에 갈 지역인 반다아체(Banda Aceh)는 말레이시아, 인도가 근접해있는 곳으로 상어 출몰이 빈번하지만 우리가 항해할 곳은 거기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그러면서도 상어에 물려서 상체 반 정도로 상어 이빨자국이 나 있는 어부를 본 적이 있다고 하는 쏭. 안심을 시키는 건지 겁을 더 주는 건지 모르겠다. 그 어부는 몸에 상처를 만든 그곳에 또 일을 나갈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바다로 나설까. 사고 이후 상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몸에 상처를 남긴 존재와 어떤 자세로 공존하는가. 이름도 모르는 인도네시아 어부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 인도네시아는 크게 수마트라(Sumatra), 칼리만탄(Kalimantan, 보르네오), 자바(Java), 술라웨시(Sulawesi), 이리안자야(Irian Jaja)의 5개 지역으로 돼 있다.  <지도 출처: 구글>

 

6시간 반 정도가 지나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 다음날 아침 일찍 인도네시아행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공항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3시간 반 정도를 더 날아가서야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였다. 인도네시아에는 1만 3천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큰 섬은 5개로 나눈다. 우리가 처음으로 도착한 마카사르(Makassar)는 한반도 크기 정도의 술라웨시 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다시 우리의 배가 있는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차로 다시 6시간 이상을 가야한다.

 

▲ <마카사르 공항에 있는 벽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마카사르는 16~17 세기 동안 향료를 싣고 세계 곳곳의 바다를 누비며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여러 명이 움직일 때는 모빌(mobil)이라고 부르는 승용차를 빌려서 움직이는 게 편하다. 6인승 차량에 한국에서 온 4명과 인도네시아 현지인 2명과 운전자 이렇게 총 7명이 타고 각자가 가져온 큰 배낭들과 항해를 위해 가져온 큰 짐 가방까지. 그렇게 서로 끼어서는 마카사르에서 오후 4시쯤 출발하였다. 2차선 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들과 오토바이. 문자와 통화까지 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요리조리 비켜가는 인도네시아 운전사를 보며 이들이 레이싱 선수로 키워진다면 정말 잘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 도로가에 있는 뷔페 식당. 음식 외에 간단한 간식과 커피, 차 등을 판다.

 

1시간 반 정도 달렸을까. 가다가 말고 운전사가 내린다. 우리나라 기사식당처럼 보이는데 우리에게 묻지 않고 식사를 한다. 아저씨 성격이 그런 건지, 인도네시아 사람들 성격이 그런 건지 아직 가늠이 안 된다. 우리도 고민하다가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한다. 뷔페처럼 다양한 메뉴의 음식이 있어서 골라서 맘껏 먹을 수 있다.

 

▲ 뷔페 음식 위에 물이 놓여있어서 마실 뻔 했는데 알고 보니 손을 씻는 물이었다.

 

생선 요리와 채소 요리가 대부분이다. 좀 짜다 싶기도 하지만 먹을 만하다. 특히 토마토와 고추를 함께 볶아 만든 양념 쌈발(Sambal)은 인도네시아 여행 내내 유용하게 먹었다. 고추장을 못 챙겨온 것이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 아직 손으로 먹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은 나

 

여기 사람들은 왼손과 오른손 구분이 확실하다. 밥을 먹을 때는 오른손을 쓰고, 화장실에서 휴지 없이 물과 왼손을 사용한다. 악수를 하거나 손으로 설명할 일이 있을 때 등등 사람들과 관계된 일은 모두 오른손을 쓴다. 평소에 얘기하거나 방향을 가리키거나 음식을 건네줄 때 양손을 다 쓰던 나로서는 몇 번의 실수 끝에 적응을 좀 하게 됐다. 막 밥을 먹으려고 할 때 식당 옆 모스크에서 아잔(하루에 5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를 환영하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 해질녘 아잔 소리를 듣고, 산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는 한참을 더 달렸다.

 

바깥은 깜깜하다. 이렇게 까만 밤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보일까. 요즘에는 이런 칠흑 같은 곳을 찾기가 힘들다. 나의 외할머니는 강원도 산골짜기에 계신다. 밤이 되어 집 앞에만 나가도 하늘에 가득 수 놓아있던 별들을 봤던 어릴 적 기억이 있다. 이제는 별빛 대신 가로등 빛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하물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더욱이 힘들다. 이 어둠속을 질주하는 지금, 무서움보다는 설렌다. 이런 어두움이 그리웠다.

    

총 6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마제네 도시를 지나 드디어 루아오르 마을(Luaor)에 도착하였다. 아마 밤 12시가 됐을 것이다. 손목시계가 없으니 불편하다. 그러나 숫자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두워지면 자고 날 밝으면 일어나 활동하며 자연에 의지해서 사는 삶. 브라더 쏭은 2005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세바틱 섬 주변에 일어난 해역 분쟁에 주목했다. 이후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국가들끼리의 수많은 분쟁을 보며 해상 평화 운동을 생각하였고, 10년 동안 1년에 한번 씩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해상 훈련을 하며 세계평화 활동을 위한 항해 팀을 준비하고 있다.

 

 

루아오르 마을에 있는 개척자의 집 ‘루마 산덱 레이스’는 대나무를 이용하여 마을 주민들과 1년 전 3일간 함께 만들었다. 1층에는 개척자 배가 있고, 2층은 평상시에 마을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휴식처 겸 도서관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랜턴으로 불을 밝혀 모기장을 치기 시작했다. 천장에는 종이학으로 만든 모빌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책들도 많다.

    

2층 평상에서는 바로 바다가 보인다는데 서쪽이라 석양이 질 때는 그 풍경이 아주 끝내준다고 한다. 지금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내일 아침이면 바다가 나를 반겨줄 것이다. 이곳에 와보니 비로소 제주도에서 본 쏭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2016년 여름 평화 항해로서 7명(육지팀 1명 포함)이 카약으로 4일 동안 제주도를 3분의 1 조금 넘게 항해를 하였다. 그때 쏭은 마을회관에 있는 편한 잠자리를 두고 비바람이 부는데도 해변 앞에 있는 정자에 텐트를 쳤었다. 그때의 쏭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대나무로 만든 평상위에 모기장을 쳐놓고 랜턴 하나에 의지해 기록을 하는 맛이 꽤 쏠쏠하다. 살짝 배가 고팠는데 신기하게도 글을 쓰니 허기짐도 좀 채워지는 듯하다. 도착해서는 아기 염소 울음소리가 요란하더니 지금은 귀뚜라미 비슷한 벌레소리가 들린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리의 주인공은 도마뱀이었다.

 

▲ 인도네시아 집안 곳곳에서 벽이나 천장에 붙어있는 도마뱀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수무르(우물)에서 몸을 씻기도 하고 빨래도 한다. 물론 집 안에 씻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수무르를 애용하는 것 같다. 씻으러 가려면 꽤 걸어가야 했고 물을 길러서 써야했기에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집안에 있는 좁은 욕실보다 더 편했다. 뭔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수무르는 항해를 하면서 섬에 도착할 때 맨 먼저 찾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물도 얻어 쓰는 입장에서 물을 아끼기 위해 되도록 세정제를 쓰지 않고 씻는 것, 이곳 사람들에게는 화장실도 되는 집 앞 해변에서 작은 볼일을 보는 것도 낯설지만 기분 좋은 일이다. 앞으로 3일 정도는 배 수리를 하고, 이 마을에서 공항이 있던 마카사르 도시 근처 랑카이 섬(Pulau Langkai)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루아오르 마을에서 랑카이까지 항해하는 길은 제주 한 바퀴 하고도 더 가야할 정도이다. 무동력 배에 바람만을 이용하여 그 거리를 항해하다니.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 ‘개척자’는 2000년 동티모르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아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일본, 아이티에서 월드서비스, 평화캠프, 긴급구호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나는 개척자 소속은 아니지만 평화, 바다, 여행 그리고 제주에서 만난 개척자 사람들이 좋아서 이번 여정에 따라나섰다.

 


원본 기사 보기: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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