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면죄부 무능, 무능의 면죄부 선의?"

[칼럼] '모른다''기억나지 않는다' 일관하더니 '선의 피해자' 주장

김양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1/23 [10:30]

"악의 면죄부 무능, 무능의 면죄부 선의?"

[칼럼] '모른다''기억나지 않는다' 일관하더니 '선의 피해자' 주장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7/01/23 [10:30]
▲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간담회...기자들이 손을 앞으로 모으고 대통령의 해명을 듣고 있다. JTBC 뉴스룸 캡쳐    

 

[신문고 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부역자로 지목된 인물들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대표적으로 이화여대 교수들, 그리고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 민정수석을 지낸 우병우, 정무수석과 문체부 장관을 지낸 조윤선 등이 그들이다.

    

특히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등은 대통령과 지근거리인 청와대에 재직했다. 그랬음에도 이들은 최순실을 몰랐다고 말한다. 대통령과 작당하여 국가의 정책과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기업을 상대로 뇌물을 갈취한 최순실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의 국정 파탄 사태를 막을 수 없었다는 논리다 그들은 지금 이를 너무도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김기춘과 조윤선은 그들의 수하 모두가 인정한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도 전혀 모른다는 ‘화끈한 위증’마저 서슴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최순실 부역자들의 법리적 손익계산서 안에서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그들의 최순실 부역이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그들은 ‘대통령이 그 정도도 못 해?’라고 주장할 정도의 확신범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들이 몰랐다를 주장하는 근거...그것은 최순실 부역은 죄란 확고한 인식이다. 때문에 그들 스스로 죄인이 되지 않으려는 자기보호가 몰랐다는 무능의 인정이다.

    

만약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등이 최순실 부역자임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우리의 행위가 실정법을 어긴 행위라면 당당하게 책임지고 벌을 받겠다’ 라고 일갈했다면 수구보수들에게 강력한 선동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단 난동’의 역학 구도는 지금보다 조금 더 복잡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군 박근혜와 자신의 진영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용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비루하게 ‘법꾸라지 지연전’을 전개하며 죽고자 하면 사는 길이 아닌 살려고 버둥대다 죽는 길을 택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의 비겁함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법꾸라지 지연전’의 실체는 법 전문가라는 그들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법을 전혀 모르는 나도 쉽게 예측이 가능한 평범한 수준이다. 그들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 주제에 박근혜와 최순실이 공모한 국정농단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그들은 범죄의 종범(從犯)이 된다. 악당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반면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 임에도 최순실의 존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몰랐다고 하면 그들은 무능한 바보가 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악당이 아닌 무능한 바보는 법으로 처벌하기 쉽지 않다. 처벌한다고 해도 죄목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직무유기, 형량은 집행유예 정도로 싸게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설 수 있다.

    

김근안이 70-80년대 독재 권력이 낳은 고문기술자 괴물이라면,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따위는 21세기 독재 권력이 낳은 법조기술자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권력이 있을 때, 그들은 법을 악용하여 반대자들을 탄압했고, 그들을 향해 법의 올가미가 조여지는 오늘, 그들은 이제 천하디 천한 법꾸라지로 전락하고 만다.

 

불의하고 부패한 권력의 하수인이자 비선 실세의 부역자들이 그들이 자행한 천인공노할 범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자, 그들은 어떡하든 법의 처벌만은 피해 몸이라도 보전해 보겠다며 법꾸라지라는 추한 존재로 돌연변이 했다. 그토록 법에 ‘통달’하신 그들이 택한 최선의 면죄부는 결국 ‘무능’이었다. 그렇다. 부역자들은 이렇게 부르짖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악의 면죄부는 무능!” 이라고.

    

현재 특검이 수사 중인 모든 범죄의 ‘수괴’는 박근혜다.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따위는 하수인이다. 그런데 범죄 혐의에 대한 수괴와 하수인의 진술 뉘앙스가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범죄의 수괴로 지목되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정도로 넘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괴인 박근혜가 미르재단 자체를 모른다고 우기기 시작하면 이건 무능의 범주를 넘어 치매와 같은 정신질환의 영역으로 치닫게 된다. 감옥살이 피하고자 무능한 바보 시늉하는 것까지야 작전이나 전략이 될 수 있지만 감옥살이 피하고자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 된다면 그건 바보 시늉이 아니라 정말 바보가 되는 거다.

    

그래서 수괴의 혐의가 드리워진 박근혜에게는 악의 면죄부 뿐 아니라 ‘무능의 면죄부’가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연쇄담화범’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으며 박근혜가 이른바 대국민 사과에서 지겹도록 반복했던 말은 ‘나는 선량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이다.

 

‘문화 융성이라는 선량한 의도로 재단을 만들었는데 최순실이 그걸 이용해서 나쁜 짓을 저질렀다.’  ‘기술력은 있지만 일감을 얻지 못한 중소기업을 돕고자 하는 선량한 의도를 언론과 사정기관이 뇌물로 엮었다,’ ‘오래 동안 알고 지낸 지인에게 일을 좀 더 잘해보고자 하는 선량한 의도로 도움을 받았을 뿐인데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

 

범죄의 수괴로 지목된 박근혜가 법의 단죄를 피하려면 결국 오랜 세월 인간적인 인연을 이어온 최순실을 믿었는데 그녀가 모든 악행을 저질렀다는, 다시 말해 모든 악의 근원은 착한 대통령을 지극히 교활하고 악랄하게 배신하고 이용한 최순실이라는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하지만 그 그림이 완성되면 박근혜 또한 세상 다시없는 무능한 바보가 된다. 무능은 형사처벌의 대상은 되지 않을지라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탄핵의 사유로는 충분하다. 그래서 구원의 메시아로 등장한 무능의 면죄부는 바로 선량한 의도, 착한 마음, 순수한 의지와 같은, 박근혜를 ‘우리들 누이와 같은 한 송이 국화꽃’으로 치장하는 단어들이 된다.

    

악의 면죄부는 무능, 무능의 면죄부는 선한 의도.......  이것이 최순실 게이트의 수괴와  부역자들이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논리의 골격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여 박근혜 정부의 파멸을 재구성하면 이런 문장이 완성된다,

    

“지극히 선한 의도로 최선을 다해 국정을 운영했지만 능력이 모자라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만약 우리가 범죄자로 지목된 박근혜와 수하들의 이러한 항변을 백보를 양보해서 100% 인정한다면, 그들의 바램대로 우리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도의적, 정치적, 법적 책임 모두를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 이유는 차를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어 죽게 하면 ‘과실치사죄’로 처벌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을 죽일 의도가 전혀 없었더라도, 운전 중 요구되는 최소한의 주의 의무를 태만히 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사람을 죽게 했기 때문에, 당연히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악의 면죄부는 무능이 될 수 없고, 무능의 면죄부 또한 선량한 의도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이러한 명제에 동의한다면, 순수한 동기와 과정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경우엔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서도 동기와 과정이 좋았으니까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주체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다고 강변할 수 있을까.

    

    


원본 기사 보기:신문고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

국정농단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관련기사목록